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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발칸 반도의 살인귀, 우스타샤

title: 연예인13라면먹고갈래?2015.01.03 07:19조회 수 2042추천 수 1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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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유고슬라비아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제가 직접 먹어보겠습니다. 유고슬라비아를 점령한 독일군 기갑사단 소속 장갑차)



1941년, 유고슬라비아는 주변이 추축국으로 둘러싸인 상태에서 추축국 탈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대가로

전략도 이렇다 할 군사도 싸울 의지도 없이 6개국과 개전에 돌입하고

 11일만에 항복하는 역사에 길이 남을 한심함을 보여주게 됩니다(...)


결국 결사항전을 원하는 사람들은 산 속으로 들어가 그 유명한 파르티잔이 되고

남은 유고슬라비아는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의 분할 통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점령국들은 유고슬라비아를 분할 통치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유고슬라비아 점령에 가장 큰 공을 준 한 테러 단체에게

무언가 선물을 하나 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고슬라비아의 크로아티아 지방에

이 테러단체들의 나라, 크로아티아 독립국이 세워집니다.







(사진: 우스타샤의 상징과 안테 파벨리치)


하루 사이에 나라를 선물받은 이 테러단체가 바로 이 글의 주제인 우스타샤(Ustaše)입니다.


우스타샤란 뭐하는 단체인가?

우스타샤는 당시 유고슬라비아에 지배받던 크로아티아를 독립시키자는 취지에서 1929년 안테 파벨리치(Ante Pavelić)에 의해 창설된 단체입니다.

이 우스타샤는 민족주의와 파시즘, 그리고 당시 크로아티아의 종교이던 카톨릭주의가 혼합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고슬라비아에서 크로아티아를 독립시켜, 장차 발칸의 맹주로 만들 것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그저 그런 평범한 독립운동단체로 보이겠지만

설립된 1929년까지만 해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듣보단체였던 이들을 유고슬라비아 '정부'와 정면대결을 할수 있게끔 키워준 장본인이 바로


(사진: 가오베니토 무솔리니)


바로 이탈리아의 무대리 되시겠습니다.

자신과 같은 파시즘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아니면 이들을 이용해 유고슬라비아를 자신의 손에 넣으려는 계획 때문인지,

무솔리니는 이 우스타샤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비를 들여 우스타샤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우스타샤를 이탈리아에 숨겨줘 그들의 활동을 도왔습니다.

이런 이탈리아의 막대한 지원 속에 다른 추축국들인 독일과 헝가리도 우스타샤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 막대한 지원속에 우스타샤는 점점 성장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점점 과감해지고 대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수 파벨리치는 매우 폭력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는데,

그는 점점 더 대담한 테러를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폭탄 테러, 저격, 방화 등 다양한 테러를 기도하다

1934년 유고슬라비아 국왕을 프랑스에서 암살함으로써 일약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이탈리아 등지에서 비행기를 공수하여

크로아티아 지역에 억압받는 크로아티아를 구출하자는 삐라를 뿌려버리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유고슬라비아 경찰들이 지켜보는 대낮에.



그러던 도중, 이들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페타르 2세가 추축국을 탈퇴해버리고

친미, 친영으로 돌아서며 추축국을 농락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제대로 빡친 추축국들은 유고슬라비아를 족치기로 합니다.

이탈리아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유고슬라비아에 군대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이 우스타샤 민병대도 같이 보내기로 합니다.


당연히 우스타샤는 이에 동의했고,

개전일이 되자 그들은 이탈리아군과 함께, 고국으로 금의환향합니다.


유고슬라비아는 폴란드, 프랑스와는 달리 싸우려는 의지도, 이렇다 할 군대도, 그리고 마땅한 전략도 없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동맹국이라고는 영국과 그리스밖에 없었지만, 그들도 제 코가 석자였던 탓에

개전 11일만에 지도에서 사라집니다.


결국 페타르 2세는 망명을 선택하고

유이하게 항전을 요구했던 유고슬라비아 장성 드라자 미하일로비치(Draža Mihailović)와 공산당 지도자 요시프 브로즈(Josip Broz "Tito")는 산 속으로 들어가 각각 민병대 체트니크와 파르티잔을 창설하여 항전에 나섭니다.

권력의 공백이 생긴 유고슬라비아 영토에는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가 입성하여 분할통치를 실시하게 됩니다.


이탈리아는 여기서 우스타샤에게 크로아티아를 줄 것을 제안합니다.

당시 독일은 크로아티아엔 별 관심도 없었고 그리스와 세르비아 뜯어먹기에 여념이 없었기에 혼쾌히 허락하고

같이 발칸을 쉽게 뜯어먹길 원했던 헝가리도 이에 동의함으로써

우스타샤는 자신들의 나라를 갖게 됩니다.

한낱 테러단체가 한 나라의 정부로 변신한 셈이죠.





(사진: 위-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국기

아래 - 여성 우스타샤 대원들)


사실 당시 크로아티아엔 이 우스타샤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에 더해서 이 지역은 제대로 된 행정 통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제대로 훈련받은 군장교도 없었습니다.

당시 군장교라고 하면 유고슬라비아군 소속일텐데

이들 중 대부분이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에게 처형당했고

남은 소수는 산속으로 들어가 파르티잔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르비아계 정부로부터 강한 차별을 받고 있었죠.

이는 크로아티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인데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던 주도국 세르비아와는 문화차가 매우 많이 났기 때문입니다.

우스타샤는 이렇게 개판이었던 크로아티아를 바꿔버리기로 합니다.


우스타샤는 독립국 설립 1달 후 왕국을 선언합니다.

그들은 이탈리아에 살고 있던 아이모네 왕자를 토미슬라프 2세(Tomislav II)로 추대했는데

정작 이 토미슬라프라는 양반은 크로아티아 땅을 밟아본 적도 없었으며 크로아티아가 어딨는지도 몰랐습니다.

당연히 왕은 그냥 허수아비, 모든 실권은 우스타샤 및 그 빽인 독일, 이탈리아와 헝가리에게 갔습니다.


크로아티아 국민들의 반응은 처음엔 무관심했으나

'나쁜 세르비아 놈들을 무찌르고 우리끼리 잘해보자!'는 우스타샤의 민족주의적인 호소에 점점 지지를 보내기 시작하여

나중엔 구국의 영웅, 독립투사, 아이돌의 위상에 오르게 됩니다.

특히 무기를 들고 압제자 세르비아와 싸우는 이미지는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했지요.

당시 크로아티아 농민당의 당수 블라드코 마체크가 말하길, 마치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독립한 때처럼 사람들이 들떠있었다고 합니다.

우스타샤에는 엄청난 지원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우스타샤는 크로아티아 내에 있는 모든 세르비아인들을 살해할 것을 선동하였습니다.



  

(사진: 마체크와 스테피나츠 대주교)


당시 크로아티아 내에서 강력한 정치 세력이었던 농민당과 카톨릭 교회는 이런 잘나가는 우스타샤의 정책에 대해 "아주 좋소"라고 평하고

국민들에게 우스타샤를 지원하도록 부추겼습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의 정신적 지주인 카톨릭 교회와는 다르게 농민당은 우스타샤에겐 그저 걸림돌,

마체크는 이용만 당하고 나중엔 가택연금을 당합니다.


우스타샤는 스테피나츠 대주교와 교회를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였으며,

교회와 파시스트를 제외한, 크로아티아 내에 있는 모든 정당에 대한 숙청을 개시합니다.

결국 크로아티아에는 민족주의, 파시스트 *** 우스타샤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정책은 좋았는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그저 이미지만 좋았을 뿐입니다.

우스타샤 정부는 선동에만 급급하여 국내 정치에는 사실상 무관심했습니다.

이들의 통치기간은 무정부 상태에 가까웠죠.

이들이 선동과 학살에 집중하는 동안

크로아티아 지역의 통치권은 그들의 큰형님 격이었던 이탈리아와 헝가리에게 가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들을 이용하여 크로아티아를 먹겠다는 무솔리니의 속뜻이 실현된 것이었죠.

우스타샤는 사실상 이탈리아와 헝가리의 괴뢰국이었습니다.


결국 기고만장해진 우스타샤는 1941년, 세르비아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을 감행합니다.

같이 세르비아인들에게 탄압을 받았던 보스니아 지역의 무슬림들도 독일의 협조를 받아 보스니아 SS를 구성하여 이에 가담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죠.


당시 크로아티아의 민족 구성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만약 내가 크로아티아인이라면, 옆집엔 세르비아인, 윗집엔 유태인, 아랫집엔 폴란드인,

빵집 주인은 보스니아인, 세탁소 주인은 이탈리아인인 격이었지요.

이처럼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은 좋든 싫든 서로 부대끼며 어울려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스타샤가 들어와 살인을 부추깁니다.

크로아티아인들은 연장을 챙겨들고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이웃이었던 세르비아인들을 거리로 내몰아 마구 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태인들 또한 덤으로 같이 학살당하였고,

독일인과 이탈리아인, 헝가리인 등 추축국 시민들은 사전에 미리 알려주어 대피시켰다고 합니다.




(사진: 위 - 파르티잔 시체를 욕보이는 우스타샤

아래 - 1941년 우스타샤에 의해 살해된 세르비아인 일가족)


이들의 잔혹성은 도를 넘었습니다.

얼마나 잔혹했냐면,

그 독일군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아래에 언급되는 내용은 모두 실화이며

매우 잔혹하니 이런거 싫어하시는 분들은 스크롤을 내리지 마시길.




총살 정도는 잔혹 축에 끼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참수, 생매장 '따위'는 기본 옵션이었고

참수하여 잘린 목을 망치로 내려 쳐서 두개골을 부숴 안을 파버리거나

눈알을 도려내어 그릇에 한가득 담아놓기도 하였습니다.



(사진: 스르보스제크)


또한 이들의 살인에는 스르보제크(Srbosjek)라는 농업용 칼이 많이 쓰였는데

이 칼은 원래 이삭을 자르는 데 쓰이는 칼이지만

쓸데없이 이딴 데에만 창의적이신 우스타샤는 이를 살인무기로 탈바꿈했습니다.


사실 이게 원래 이름이 스르보스제크도 아닙니다.

원랜 이름없는 막칼이지만

우스타샤가 이름을 붙인거지요.

참고로 이 스르보스제크는 크로아티아어로 '세르비아인 절단기'라는 뜻입니다.


주로 목 앞쪽을 이걸로 쓱 그어놓고

과다출혈로 사망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이걸로 참수시켰습니다.


또 만약 임산부 세르비아인을 잡았다,

그러면 이걸로 그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 발로 밟아 죽이거나

내장을 뽑아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임산부 뿐만은 아니고

전쟁 후반으로 가면 그냥 아무 세르비아인이나 붙잡아 이걸로 배를 갈라 내장을 뽑았습니다.

또한 이것은 우스타샤의 선고식이기도 했다네요.


** 또한 필수옵션이었습니다.

남성 우스타샤 대원들은 세르비아인 여성들을 잡으면

그냥 **했습니다. 그리고는 강가에 버렸죠.

이는 어린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여성 우스타샤 대원들도 파르티잔 대원들에 대해 역**을 일삼았습니다.


또한 이들은 야세노바츠(Jasenovac Concentration Camp)라는 강제 수용소를 추축국의 지원금으로 설립하여

세르비아인들과 유태인들을 그야말로 '도축'했습니다.

기관총? 우스타샤는 그런걸 안 썼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냉병기를 더 많이 이용했습니다. 위에 스르보스제크처럼요.

독가스? 기관총도 안 쓰는 마당에 그걸 쓰겠습니까?

그들은 대량 학살보단 고통에 취중한 학살을 중요시했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한 독일군 장교가 지역 우스타샤 본부에 볼 일이 있어 방문했는데,

그 책임자 사무실에 웬 이상한 물질들이 사발에 한가득 놓여있더랍니다.

독일군 장교가 물었습니다.

"이게 뭐죠? 아! 달마티아에서 잡아온 굴인가요?"

그러자 그 책임자가 허허 웃으며 말하길

"아뇨, 달마티아에서 잡아온 건 맞죠. 다만 굴은 아닙니다."

"그럼 뭐죠?"

"달마티아에서 잡아온 세르비아인들의 눈알입니다."

그 독일군 장교는 말을 들은 직후 질겁한 나머지 바로 뛰쳐나가 구토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가 돌 만큼, 우스타샤는 그 독일군 사이에서도 경멸과 경외의 대상이었으며,

많은 독일군들이 우스타샤의 잔혹한 학살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물론 SS나 아인자츠그루펜같은 데에선 우스타샤가 찬양의 대상이자 업무 파트너였죠.

그들은 오히려 우스타샤를 칭찬했고 무기까지 대줬으며 아예 같이 죽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학살 전반에는 스테피나츠 대주교를 비롯한 카톨릭 신부들이 매우 많이 가담하였습니다.

야세노바츠 수용소장도 카톨릭 사제였지요.

그러나 이들은 전후 대부분 처벌받지 않고 바티칸에 의해 수호성인으로 추도됩니다.

이는 바티칸 친나치설을 부흥시키는데 한몫하였지요.


아래는 그들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사진들입니다.



(사진: 세르비아인의 목을 톱으로 써는 우스타샤)


(사진: 세르비아인의 목을 도끼로 자르는 우스타샤. 곁에 SS 단원들이 이를 구경하고 있다.)


(사진: 우스타샤에 의해 망치로 머리가 깨어진 세르비아인)


(사진: 살해된 세르비아인 어린이들)


(사진: 우스타샤에게 살해되는 세르비아인)


(사진: 우스타샤에게 눈이 뽑힌 세르비아인)


앞서 말했듯이, 이탈리아와 헝가리는 이들의 뺵을 대줬지만

독일군은 이들을 별로 좋게 여기진 않았습니다.

하라는 통치는 안하고 허구헌날 학살만 일삼았기 때문이죠.

우스타샤는 학살에만 지나치게 취중하여, 국내 정치는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크로아티아 정부는 사실상 무정부상태였죠.

게다가 기근이 발생하여 크로아티아인이 엄청나게 죽는 불상사가 발생하죠.


결국 독일 점령군이 "야 이 ****들아!"하고 폭발합니다.

독일군은 우스타샤보다 책임감있는 정부가 크로아티아에 들어서길 원했습니다.


(사진: 점령군 사령관 에드문트 폰 글라이제 호르슈테나우)


특히 이들 중 대표격인 인물이 점령군 사령관 호르슈테나우였습니다.

그는 몸소 가택연금되있던 농민당 당수 마체크를 찾아가 절실히 부탁해보았지만,

마체크는 언제 우스타샤가 자신을 죽일 지 모른다는 강박감에 시달린 나머지 이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사진: 지그프리트 카세)


또한 점령군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였죠.

지그프리트 카세는 우스타샤만이 크로아티아를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단체라고 주장하며 이에 반대했고

SS에서 적극 반대하였습니다.


지그프리트 카세는 나치 고관인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와 연줄이 닿아 있었기에 

점령군 내에서도 꽤 실권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호르슈테나우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이후 1943년, 빽 중 하나인 이탈리아가 항복하자, 크로아티아는 이제 적국이 된 이탈리아에 대해 대크로아티아 계획을 실행합니다.

이탈리아가 그동안 점령중이었던 달마티아 해안 지방이 이제 크로아티아의 수중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우스타샤의 광기는 이제 대기권을 뚫어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갔습니다.

그들의 잔학행위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고

파르티잔의 저항이 거세지고 전쟁이 끝을 향해 달려가자 그들은 더욱 거세게 발악하기 시작했습니다.


농민당 당수 마체크가 회고록에서 이야기하길, “나는 우스타샤 요원에게 네가 지은 죄를 보건대 하느님이 두렵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다. 이 친구는 대답하기를, ‘나는 내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 완전히 알고 있다.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지을 죄까지 생각해 보면 나는 분명히 지옥의 불길에 태워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크로아티아를 위해 그 불길을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했다” 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1945년, 제 코가 석자가 된 독일군과 헝가리군이 자신의 지역부터 지키기 위해 유고슬라비아에서 전면 철수했습니다.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우스타샤는, 자신들의 큰 빽들이 없어지자 세르비아인들의 보복이 두려워 도주를 계획했지만, 이미 유고슬라비아 지역엔 영국군이 상륙한 뒤였습니다.



(사진: 학살을 했으면 맞아야지 요시프 브로즈 티토)


그리고 영국군은 티토가 이끄는 파르티잔에 모든 권력을 이양합니다.

그리고 우스타샤는 우스타샤의 명성을 들은 영국군과 티토가 이끄는 파르티잔에 피의 복수를 당하게 됩니다.

많은 우스타샤 대원들이 영국군과 파르티잔이 입성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모두 죽거나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우스타샤가 모두 처벌을 당하여 아주 와해되긴 했다만,

이후 1990년대 유고 내전이 일어나자 잠시 자신들이 우스타샤의 후신이라고 주장하는 단체가 나타나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현재 크로아티아에서는 이 우스타샤를 일종의 독립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고

일부 크로아티아 네오나치들은 서로 앞다투며 자신들이 우스타샤의 후신이라고 자랑하고 다니며

아직까지 그 미친 피바람의 역사를 이어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의 피해자였던 세르비아인들은

이후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일으켜

병림픽과 학살의 역사를 새로 써 나감으로써

발칸의 새 ***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 과정에서 크로아티아의 학살과 우스타샤의 명성이 많이 희석된 편입니다.

당시로써는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를 일방적으로 패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으니까요.

우리나라에도 유고 내전은 잘 알려져 있지만, 우스타샤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편이기도 하고요.

그야말로 학살이 학살을, 탄압이 탄압을 낳은,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발칸의 흑역사 우스타샤,

이들에 의해 살해된 세르비아인은 총 40만여명으로 추산되며 해외추방된 세르비아인은 20만여명으로 추산됩니다.

그들의 행동은 이후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라는 또다른 흑역사를 낳았으며,

유고슬라비아는 2000년대 들어서야 겨우 평화 상태를 찾았습니다.


다시는 이런 흑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만,

아직도 크로아티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우스타샤라고 자칭하며

우스타샤의 이러한 만행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모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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