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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나를 왜 만나는가?

굴요긔2017.04.13 17:54조회 수 914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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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하고 못생긴 사내가 병원 침대에서 깨어났다.
아주 아름다운 외모의 여인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 오빠! 정신이 들어? "
 
신음을 흘리던 사내는, 인상을 찌푸리며 여인을 향해 물었다.
 
" 저를...아세요? "
 
사내는, 기억상실이었다.
 
.
.
.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게 되었다던 사내는, 다리가 나을 때까지 2인실 신세를 지기로 했다.
사내에게 가족이 없었던지라, 여인이 모든 일 처리를 대신해주었다. 
한데, 아름다운 여인은 그의 곁에 오래 있어 주진 않았다.
 
" ...시간 날 때 들를게. "
" 어어...그래... "
 
사내는 아직도 그녀가 낯설어, 소심하게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했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의 여자친구였다고?? 믿을 수 없었다. 이렇게 뚱뚱하고 못생긴 자신이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여자친구가 있었을까?
같은 병실 옆 침대의 치매 할머니도 사내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 아가씨가 진짜 곱네! 고와~! 분명 맘씨도 착할 거야~! "
" 아 네에... "
 
마음씨가 착하다는 말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쩌면 외모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착한 여자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니, 사내는 기뻤다. 저렇게 아름답고 착한 여자친구가 있는 자신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사고를 당한 환자인데도 사내는 싱글벙글하였다. 
한데, 아가씨의 방문은 드물었다. 다음 날에 들렀을 때도 금방 떠나갔다.
 
" 좀 어때? 괜찮아? 기억은 나? "
" 아? 아니, 아무것도 아직... "
" 으응..그래. 또 올게. "
 
사내는 그녀를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여자친구의 태도치고는 살갑지가 않았다. 자신을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긴 했지만, 그리 크진 않았다.
걱정됐다. 혹시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은 몹시 나쁜 남자친구였을까? 아니면 이미 사랑이 식은 오래된 연인이었을까?
사내가 심각하게 고민할 때, 옆 침대의 할머니가 뜬금없이 벌떡 일어나 부르르 떨더니, 불안한 말을 꺼냈다.
 
" 에잉! 보인다 보여! 내 눈엔 다 보여! "
" 네? "
" 바람을 피우고 있구나! 저년이 지금 바람을 피우고 있어! "
" ?! "
 
사내는 기분이 나빠져 소리쳤다.
 
" 무슨 말씀이십니까?! "
" 쯧쯧쯧! 너 말고 다른 남자랑 발가벗고 뒹구는데, 그걸 너만 모르는구나! "
" 뭐라고요?! 무슨 그런! 아무리 치매라지만, 할 말 못할 말이 있습니다! "
 
사내는 성질을 내며, 할머니와 말도 섞지 않고 돌아누웠다. 하지만 이미 사내의 머릿속은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날 오후에, 할머니가 원래 무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엔 더 그랬다.
정말로 여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을까? 그래서 그렇게 무덤덤하게 자신을 대하는 것일까? 죄책감 때문에 억지로 나를 챙겨주는 것일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고아에다가 직업도 변변찮다던 나 같은 놈을 만나주는 착한 여자가 바람을 피울 리가 없어.
" ... "
 
아니지. 저렇게 예쁜 여자가 나 같은 놈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어. 더 잘생기고 멋진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게 당연할지도 몰라. 
" ... "
 
아니야. 그럴 여자였으면 병원에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야. 모른 척 해버리면 그만이라고. 
" ... "
 
아니지. 정말로 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 곁에 오래 있어 주었겠지. 지금도 다른 잘생긴 남자에게 가 있을 거라고.
" ... "
 
사내는 마치 정신불안 환자처럼 온종일 왔다갔다 했다.
바람에 대한 아무 증거도 없는데 의심하는 자신이 우스웠지만, 뚱뚱하고 못생긴 사내의 자존감이 그 마음을 부추기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끙끙대며 잠이 든 그 날, 사내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침대 위에서 뒤엉키고 있었다. 사내는 천장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지만, 아무 영향도 행사할 수 없었다. 
이불 속에서 그녀가 그놈과 꿈틀대는 모습이 점점 빠르게 천둥같이 커지다가-, 사내는 잠에서 깨어났다.
 
" 하아 하아.. "
 
사내는 그 꿈을 개꿈이라고 생각했다. 애써 개꿈이라고 믿으려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 왜... 왜 그놈 얼굴이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나지? "
 
꿈이라기엔, 너무나도 선명했다. 마치 실제로 그 장면을 본 적이 있었던 것처럼.
 
그것이 시작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녀와 그놈에 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녀와 그놈이 카페에 앉아있는 모습,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 몰래 키스하는 모습, 모텔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어느새 사내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게 맞았다!
 
" 이, 이 연놈들을...! "
 
사내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지만, 금세 맥이 풀렸다.
 
" ... "
 
그녀가 괜히 바람을 피웠겠는가? 이렇게 뚱뚱하고 못생기고, 소심하기까지 한 사람이 남자친구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놈은 잘생겼고, 외제자도 몰고 있었다. 그녀처럼 아름다운 여자에게 어울리는 건 자신 같은 놈이 아닌 그였다.
 
" 하아... "
 
분노, 체념, 미움, 수긍, 슬픔이 번갈아가며 사내를 종일 괴롭혔고, 어렵게 결론 내렸다.
 
그녀를 위해서 놓아주자. 자신 같은 못생기고 능력 없는 남자보다, 더 어울리는 사람에게 보내주는 게 그녀를 위하는 길이다.
사내는 실천했다. 여인이 다시 찾아왔을 때, 사내는 처음으로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 너에 대한 기억이 돌아왔어. 하지만 너는 좋은 여자친구가 아니었어. 그만 헤어지자. 다시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
" 뭐? 갑자기 그게 무슨...? "
" 네가 예쁘다고 얼굴값 하고 다니는 거, 더는 못 보겠다. 내가 비록 이렇게 못난 놈이지만, 너 같은 애한테 무시당하면서까지 사귀고 싶진 않다. "
" 아... "
 
사내는 단호한 얼굴과는 달리, 떨리는 마음으로 여인의 반응을 살폈다. 그래도 혹시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개 숙인 여인의 입에서는 기대 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 알겠어.. 오빠가 그렇게까지 생각한다면..그렇게 하자.. 미안해..이제 다신 찾아오지 않을게. "
 
사내는 고개를 돌렸지만 속으로 탄식했다. 너무나도 쉽게 헤어져 주는구나. 언제든지 떠날 마음이 있었구나.
 
여인이 떠나간 뒤, 사내는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괜한 후회도 해봤지만,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그놈에게로 떠나 있는데, 자신이 잡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 그래..잘한거야.. "
 
사내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예쁘면 뭐하는가? 바람 피운 여자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 지금도 그녀는 모텔에서 그놈과 뒹굴고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잊자.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들어왔다. 
공책을 들고 사내에게로 향한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저기...원래 이러면 안 되는 줄 아는데... "
" ? "
 
간호사는 겸연쩍은 얼굴로 공책을 내밀며 말했다.
 
" 홍혜화씨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 네? "
" 그분 홍혜화씨 맞죠? 그쵸? 제가 홍혜화씨 너무 팬이라서요! 그분 나오는 건 다 챙겨봤거든요! "
" 무슨...? "
" 저번 영화에서 공치열이랑 모텔 베드씬에서 어찌나 섹시하던지~ 어머! 남자친구분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닌데 호호호! 아참, 비밀 열애죠? 비밀은 꼭 지킬게요! "
 
사내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영화? 영화배우 홍혜화? 영화배우 공치열?
 
" 아..아아-! "
 
왜 그렇게 그녀가 바빴는지! 왜 그렇게 사람들 몰래 잠깐씩만 왔다 갔는지! 왜 자신의 기억 속에 그녀의 베드신이 선명하게 들어있었는지!
그녀는 바람을 피운 게 아니라, 영화를 찍었던 것이다!
 
사내는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의심만으로 그녀를 잃은 것이었다.
왜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병실에 누워 한참을 생각하던 그는, 드디어 깨달았다. 
 
바람을 착각해서가 아니었다. 진짜 원인은 자신의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다.
뚱뚱하고 못생기고 능력 없는 자신이, 그런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낮은 자존감 때문에 말이다.
애초에 홍혜화가 자신을 사랑할 리 없다는 마음을 담아두고 있었기 때문에, 작은 의심도 확대해석해서 그녀를 잃게 된 것이었다.
 
사내는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다. 
자존감의 편견에 갇혀, 그녀의 순수한 마음을 삐뚤어본 자신을 후회했다.
세상은 그의 생각만큼 다 그렇고 그런 곳이 아니었다.
 
" 혜화야...! "
 
사내는 어쩌면,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다. 이번에는 이 낮은 자존감을 모두 떨쳐버린 상태로!
 
.
.
.
.
.
.
 
밴 차량을 타고 이동중인 홍혜화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매니저는 걱정하듯, 나무라듯, 말했다.
 
" 너 이번엔 운이 좋았지만, 제발 적당히 좀 해라! 아무리 메소드 연기도 좋다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니? 뚱뚱하고 못생긴 남자의 여자친구 역할을 위해서, 실제로 그렇게 해보는 사람이 어딨니?! "
 
" 아무렴 어때! 연기만 잘 나오면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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