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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평생 100만원이 나은가, 한 번에 1억이 나은가?

굴요긔2017.04.13 17:57조회 수 889추천 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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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복권 알지? 매달마다 500만 원씩 돈이 나오는 거 말이야. 너도 다른 의미의 연금복권에 당첨됐다고 생각해. 매달마다 내가 네게 100만 원을 지급할게! "
 
사내의 친절한 말에도, 청년의 얼굴은 그다지~ 
 
" 음~ 글쎄요? "
 
사내는 답답한 모양새로 톤을 높였다.
 
" 너 그렇게 정의로운 사람이야? 어? 네가 날 신고한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어? 포상금이 나와 뭐가 나와? 매달 100만 원씩 현금이 들어오는 게 더 낫지 않겠냔 말이야!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야 연금이 100만 원이라고! 네가 양학선이야?! 박상영이야?! "
" 음~~ "
" 아 정말! "
 
사내는 답답했지만, 저자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재수 없게도, 사내가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을 청년이 동영상으로 찍어버렸기 때문이었다.
 
" 어휴-! "
 
생각할수록 사내는 열불이 터졌다. 자신이 전 부인을 살해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던가?
몇 개월이나 기회를 엿보며 그년의 등산 스케줄을 미행하고, 등산 중에 자연스럽게 일행과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 공작하고, 그러고도 몇 번이나 확실한 기회를 찾다가, 드디어 완벽한 타이밍을 잡고 실족사를 연출해냈는데! 절대 드러나지 않을 알리바이 공작까지 준비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산에서 몰래 똥 싸던 청년한테 들킬 줄이야? 
게다가 요즘 핸드폰 카메라는 왜 이렇게 화질이 좋은지, 빼도 박도 못하고 자신이 살인범이었다.
 
일을 치르고 얼른 산에서 내려와 숨겨둔 자전거에 올라타려던 그때, 얼마나 깜짝 놀랐던가?
 
" 아저씨! 사람 죽이셨죠? "
" 허억?! "
" 저 동영상 찍었거든요? "
" 허억!! "
 
이후로 결국 카페까지 동행해서, 이 모양 이 꼴로 빌고 있는 것이었다.
 
" 아니~이! 그러니까, 그년은 정말 죽을만했던 년이라니까?! 바람은 지가 피워놓고 가정폭력 조작해서 위자료 받아가고, 재산 빼돌리고! "
"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죽을만한 사람은 없죠. "
" 이익! "
 
사내는 참다 참다 폭발했다.
 
" 얌마! 너 내가 살인범인 거 몰라?! 너 그러다 내가 너까지 죽이면 어쩔래?! 어?! "
 
그러나 청년은 시종일관 여유롭게,
 
" 에이~ 내가 죽으면 이 동영상이 온 인터넷에 퍼지게 해놓을 텐데, 그럴 수 있겠어요? '실제 상황! 이혼한 전 부인을 살해한 사내의 모습!' 조회수가 얼마나 나올까요? "
" 너 이 새끼 정말! "
 
사내는 부들부들 떨었지만, 청년에게 달려들 순 없었다. 
청년은 빙긋 웃으며 원하는 바를 꺼냈다.
 
" 1억. 1억만 주시면 깨끗이 지워드릴게요. "
" 크윽! "
 
사내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그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 그냥 100만 원씩 평생 받으라니까?!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1억을 한 번에 받는 것보다 100만 원씩 평생 받는 게 훨씬 이익이라고! 어?! "
" 아저씨 말대로면 아저씨한텐 1억만 내는 게 더 이익이잖아요? 그냥 1억 받을게요. "
" 아 진짜! "
 
사내는 테이블을 '퍽!' 내려치며 벌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 나도 1억으로 땡칠 수 있으면 그게 편해! 그게 안 되니까 그러지 임마! "
" 네? "
" 처음엔 1억이겠지! 그걸로 끝이라고 약속하겠지! 하지만 돈이 다 떨어지면? 흥청망청 막 쓰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결국 다시 또 나를 찾아올 것 아냐 임마! "
" 에이~ 저 그렇게 양아치 아니에요~ "
" 내가 널 어떻게 믿어 임마! "
" 음... "
" 아 그러니까, 건실하게 매달 100만 원씩 받아가라는 거 아니야! 한 번에 일확천금을 노리기보단, 꾸준한 수입원을 확보하는 게 네 인생에서 더 현명한 거라고! "
" 에이~ 한 달에 100만 원으로 뭘 해요? 그냥 1억 받을래요. "
" 아니 그래도 이 자식이 진짜?! "
 
사내는 답답한지 가슴을 치다가 버럭!
 
" 좋아! 그럼 내가 널 어떻게 믿는데? 어?! 1억 원으로 끝이라는 보장을 어떻게 해줄 거냐고! "
" 음... "
 
청년은 먼 곳을 바라보며 골몰하다가,
 
" 아! 그러면 아저씨가 1억 원을 주시면, 저도 제 약점을 아저씨에게 넘겨드릴게요. 세상에 밝혀지면 안 되는 거로다가. "
" ...흠! "
 
눈썹을 꿈틀하는 사내. 팔짱을 끼고 물었다.
 
" 그 약점이란 게 뭔데? "
 
청년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은밀히 속삭였다.
 
" 사실 저는...게이예요! "
" 뭣?! "
" 제가 게이라는 사실이 주변에 밝혀진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아시잖아요? 우리나라에서 게이를 어떻게 보는지. 거기다 저희 부모님이 아시기라도 하면, 뒷목 잡고 쓰러지실 걸요? 어휴~ "
" 흐음... "
 
사내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 그걸로는 약하지 않아? 그리고 그걸 어떤 식으로 약점을 쥐여준다는 건데? "
" 동영상이 있어요. "
" 뭐? "
" 제 남자친구하고 발가벗고 섹스한 동영상이요. "
" 뭐얏?! 이런 더러운! "
 
질색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내!
청년도 기분 나쁜 얼굴로 투덜댔다.
 
" 아저씨는 살인범인 주제에 지금 누굴 더럽다는 거예요? "
" 으음... "
 
할 말이 없어 입맛을 다시는 사내. 따지고 보면 청년의 말이 맞지 않는가?
연인끼리 그런 동영상 찍는 거야 자기들 맘이지만, 자신은 살인 범죄자니까.
 
" 그 정도면 충분히 약점이죠? 단순히 커밍아웃만이 아닌, 그런 동영상까지 풀린다면...어휴~! "
" 흠... "
 
사내는 장시간 골몰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 좋아. 1억을 주도록 하지. 하지만 넌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거다! 평생 가는 100만 원짜리 연금을 버리고 1억 원을 선택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그때 가선 후회해도 늦어! "
" 에이~ 아무렴 뭐 어때요? 어차피 꽁돈인데. "
" 끄응.. "
 
처참하게 얼굴이 일그러지는 사내. 하기야, 청년 입장에서는 산에서 똥 싸다가 1억 원을 주운 셈이니, 청년의 말도 옳았다.
 
" 1억을 마련하면 연락해줄 테니까! 그때까지 그 동영상 가지고 이상한 짓거리 절대 하지 마! 어?! "
" 네~네~ 연락해주세요~ "
 
청년을 노려보다 벌떡 일어나 가게를 떠나는 사내. 가슴이 답답했지만, 전부인 목숨값이 1억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카페를 나가기 직전, 한소리를 해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긴 했다.
 
" 너 분명히 후회할 거다! "
 
청년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
.
.
 
인적 없는 은밀한 숲에서 다시 마주한 사내와 청년.
사내는 가방을 열어 5만 원권 다발을 보여준 뒤,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
 
" 확인됐지?! 이제 동영상 보내! "
" 네네~ 잠시만요~ "
 
핸드폰을 들고 영상을 전송하는 청년. 
얼마 뒤, 사내는 도착한 영상을 확인했다.
 
" 윽! "
 
시작부터 등장한 벌거벗은 두 남자의 몸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내. 
한데,
 
" 응? 뭐야? 이거 얼굴이 다르잖-?
 
' 퍽!! '
 
청년이 휘두른 바위에 뒤통수를 맞고 그대로 기절해버리는 사내!
 
" 휘유~ "
 
청년은 크게 숨을 한 번 내쉬며, 준비해온 칼을 꺼냈다.
 
" 이봐요 아저씨! 아저씨 남은 수명이 얼마인지 제가 뻔히 아는데, 한 달에 100만 원씩 받겠어요? 한 번에 1억 받고 말지! 하하하 "
 
사실 청년의 정체는, 전 부인과 외도남이 고용했던 살인청부업자였다.
그 살인 동영상도, 청년이 기회를 엿보며 사내를 감시하고 있었기에 찍어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 저도 매달 100만 원이 매력적인 건 아는데요~ 아저씨를 죽여야 잔금이 들어오거든요. 혹시라도 나 말고 다른 놈이 아저씨 죽이면 100만 원이고 뭐고 말짱 꽝이고 뭐... 미안하게 됐습니다~ "
 
청년은 사내를 돌려 눕히고, 칼을 높이 쳐들었다.
 
" 돈을 받았으니 약속은 지킬게요! 절대 동영상이 유출될 일은 없을 거예요~ "
 
청년의 농담처럼 가벼운 칼날이 사내의 목으로 떨어져 내렸다.
 
.
.
.
.
.
.
 
" ... "
 
청년은 똥 씹은 얼굴로 카페에 마주 앉은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는 유려한 말솜씨로, 넉살 좋게 주절거렸다.
 
" 아~ 이거이거 흥신소 일도 영~ 할 게 못 된다니까요? 이렇게 의뢰인이 갑자기 살해당해버리면, 잔금도 못 받고 말입니다~ 하하하. 그래도 뭐, 그분은 참 현명하셨네요. 거래 현장을 찍어놓겠다는 그 발상 덕택에, 그나마 이렇게 덜 억울하게 눈을 감으시게 됐으니! "
" ... "
 
청년은 얼굴을 싸늘히 하며 물었다.
 
" 원하는 게 뭐예요? 제가 뭐 하는 사람인 줄은 알고 이러시는 거죠? "
" 암요~ 알죠 알죠! 만약에라도 제가 죽게 되면, 실제 살인청부업자가 작업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쫙~ 풀리게 되겠죠! 아시죠? 저희 바닥도 그리 만만한 것들이 구르는 곳은 아니라는 거! 보니까 어머님께서 예전에 심장 수술도 한번 하셨던데~ "
" 이익...! "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가는 청년.
남자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 현금 1억! 1억만 주시면 동영상은 깔끔히! 삭제해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다! "
" ... "
 
청년은 복잡해진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전혀 믿음이 안 가는 그 얼굴을. 
곧, 청년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 매달 100만 원씩 평생 드릴게요. 그게 더 현명한 선택이에요. 올림픽 금메달 연금이 100만 원인 거 아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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