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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군대에서 있었던, 밋밋하지만 실제로 겪은 썰

title: 잉여킹아리수드라2015.03.04 07:13조회 수 973추천 수 2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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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등병 때 일이야.
당시 월드컵이 한창이었는데,

우리 대대장은 전 부대원을 낮잠 재우고 전원 연등을 실시하는 패기를 부렸어.


그 때 나는 중대 행정병이었는데 이게 일반소대 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X같은 일이야.


소대 애들 재우는 동안에도 나는 전화통에 붙어서 상황보고 부대일지 적고 위병소다 분리수거장이다 불려 다니느라 한숨도 못 잤거든.
그래서 월드컵이고 나발이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지.
무엇보다 하루 중에 유일하게 스트레스 안 받는 시간이 자는 시간이었는데, 그걸 뺏긴 셈이었거든.


어쨌든 그 날은 탄약고 근무자 두 명 (지지리 운도 없는 놈들)이랑 상황 보느라 행정실에 남은 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새벽까지 축구를 보고 있었어.
내무실에서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는데, 행정실에는 하다못해 당직사관도 없었거든? 나는 그게 오히려 행복하더라.
군대에서는, 특히 이등병한테는 나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게 정말 소중해.


그런데 전반 끝나고 보급 계원이었던 분대장이 오더니 24종 창고에 가서 맛스타랑 건빵 꼬불쳐 놓은 거 있으니까 가져오라고 하더라.
이놈이 나이는 많지 않은데 사람 다루는 방법을 잘 알았거든.
평소에 사소하고 쓸데없는 거 엄청 챙겨주고 나중에 그걸 돌려받는 방법을 알았어.
평소에 차고 넘치는 맛스타를 굳이 이런 날 돌리는 것도 노하우라면 노하우였지.
거기에 보통 고생은 밑에 애들이 하니까 맨 손으로 코푸는 격이랄까?


나는 투덜대면서 후레쉬 하나 챙겨들고 창고로 갔어.
우리 대대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대 막사들이랑 대대 본부가 그 비탈마다 기대어 있었거든.
24종 창고는 막사 뒤편에 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었어.
그 방향으로는 초소도 없고 먼 도시에서 번져 나온 조명 하나 닿지 않는 곳이라서 많이 어두웠어.
그야말로 그냥 산길을 걷는 기분이었지.


발을 더듬거리면서 겨우겨우 24종 창고 앞에 도착했어.
후반전이 시작했는지 막사에서는 막 함성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
그런데 우리 24종 창고가 많이 낡아서, 문이 좀 옛날식이었어.
옛날 장롱에 보면 삐걱거리는 소리 내면서 양쪽으로 열리는 여닫이문이 있는데 창고의 문이 딱 그런 식이었어.
양쪽 문을 동시에 닫지 않으면 아귀가 잘 맞지 않아서 문이 끝까지 닫히지 않는 거야.


어쨌든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요놈의 맛스타 박스가 어디 갔는지 몰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렸지.
조금 오싹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아무렴 분대장보다 더 무섭겠냐.
북한군 표적보고 잠시 동안 멘탈 부서질 위기에 처했으나 창고 구석에서 무사히 맛스타랑 건빵을 찾아서 들고 나왔어.


이제 문을 닫아걸려고 하는데, 문이 잘못 닫힌거야.
한 쪽 문이 다른 쪽 문 위에 겹쳐 있었던 거지.
그래 투덜거리면서 문을 다시 열려고 하는데 잘 안 열려.
그래서 내가 혹시 창고 문 안쪽에 뭘 기대어뒀나 싶어서 가까이 기대서 그 틈 사이를 들여다보는데.
.
.
.
.


눈 하나가 날 내다보고 있더라.
창고의 그 어둠 속에서 눈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시뻘건 눈 하나가 날 내다보고 있었어.
나는 창고 문에 기대어 선 채로 굳어버렸지.
눈과 눈 사이의 거리는 손가락 두 마디가 채 안 됐을 거야.
아래턱이 덜덜 떨리더라.
그럼 몸은 움직이고 있다는 건데 도저히 문에서 머리를 못 떼겠는 거야.
와.
.
그 공포가.
.


비유가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이발하는데 코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떼어내지 못하고 간지러움을 감내해야 하는 순간이 있잖아? 그 간지러움이 극대화 된 만큼을 공포가 채우고 있는 그런 느낌? 손끝 발끝까지 공포에 쩔어 있었어.


그 와중에 막사에서 중대원들이 함성 지르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움직일 수도 없는데 그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거야.
왜 축구 볼 때 함성을 질러도 그게 단말마처럼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잖아? 근데 이게 쉬지 않고 계속 들리는 거야.
 


그렇게 멍하니 그 눈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이 웃더라.
그거 있지?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히는 거.
새빨간 눈이, 눈동자는 오히려 더 커지면서 눈가만 일그러지는데.
.
그 때 정신이 팍 들었어.
그 문을 그대로 놔버리고 정신없이 막사로 토꼈다.
내가 소리 지르면서 들어오는 거 보고 선임이 골 들어간 줄 알았다고 갈구더라.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이등병이 그런 거 말해 봐야 빠졌다는 소리 밖에 더 들어? 다행히 분대장은 정신없이 축구 보다가 그냥 자고, 나는 뜬 눈으로 밤을 보내다가 조회 직후에 몰래 들러서 문을 잠그고 왔어.


그냥 내가 헛것을 본 거라고 믿고 싶었고, 지금도 솔직히 내 상상이 만들어 낸 존재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바로 다음날 작업병이 창고에 농땡이 피우러 갔다가 또 봤다는 거야.
나는 말하지도 않았는데 비슷한 경험을 했더라.
3층짜리 창고 선반 위에 물자들이 가득한데 2층 창고 사이에서 눈 하나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다나.
.


나중에 GOP 올라가면서 그 창고 다시 안 봐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그 때는 GOP는 완전 귀곡 산장 수준이라는 것을 몰랐거든.



맛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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