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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름 모를 섬.

title: 이뻥아이돌공작2015.03.08 18:22조회 수 1092추천 수 1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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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협조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경찰이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김반장은 ‘음.’ 신음성을 내뱉고는 담배를 꼬나 물었다. 불을 붙이려는 김반장의 행동을 저지한 남자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반장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명성이랄게 있겠습니까. 그냥 이일. 저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해결되는거지.”


 


지나가는 투로 말했지만 김반장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사건이든지 기필코 해결하고마는 김반장의 명성은 지극하다. 평범한 사건사고가 아닌 위험하고 악질적인 사건만을 맡아 처리하는 김반장은 세간에 잘 알려진 프로 중에서도 프로였다.


 


“김반장님 다왔습니다.”


 


그 뒤로 20대 후반의 선한 용모를 가진 마른 체격의 남자가 다가오며 말했다.


 


“그런가..”


 


김반장의 조수 이형사다. 김반장은 깊게 담배를 빨고는 바닷가에 꽁초를 던져버렸다.


 


“그럼 가지.”


 


 


 


***


 


 


 


이를 모를 섬에 내린 김반장과 이형사는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며 주위를 살폈다. 쌀쌀한 바닷바람을 피하기 위해 레인코트의 깃을 세우며 이형사가 말했다.


 


“반장님. 이런 섬에 왜 정신병원이 있는거죠?”


“그런건 관심 없어. 사건만 해결하면 되니까.”


“그러시겠죠.”


 


설렁하게 고개를 끄덕인 이형사가 앞으로 걸어갔다. 김반장은 펄럭거리는 그의 레인코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자네. 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나 됐지?”


 


이형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5년째입니다.’ 라고 답했고, 김반장은 입술을 비죽이며 그를 따랐다.


 


항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낙후된 곳이다. 간신히 배를 댈만한 선착장을 제외하고 눈에 보이는 것은 울창한 나무와 단단해 보이는 암벽이 전부였다. 강한 돌풍을 헤쳐가며 나아가는 둘 앞에 낡은 자동차 한 대가 느릿하게 다가왔다.


 


환자를 수송하는 용도가 아닌 관계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승용차였다. 김반장은 자신의 앞에 멈춘 자동차 운전석의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발치에 있는 사물이 안보일 정도는 아니다.


 


김반장과 눈이 마주친 사람은 살짝 목례를 하더니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김반장님 이십니까?”


 


긍정의 표시를 하자 운전자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 정신병원의 책임자 문박사입니다.”


 


형식적인 악수치레를 끝낸 사람들. 이 형사는 힐끗 차를 보더니 문박사에게 물었다.


 


“사람이 많이 부족한가 보죠?”


 


그 말에 문박사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같은 때에 이런 곳에 근무하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타시지요. 병원까지 모시겠습니다.”


 


문박사의 말대로 차에 몸을 싣은 두 사람은 말 없이 바깥의 풍경을 구경했다. 시골이었다. 이런 곳에 정신병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로 촌스러운 동네임은 분명했다. 김반장은 빠르게 지나쳐가는 나무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물었다.


 


“환자들의 수가 어떻게 되죠?”


 


‘60명입니다.’ 라고 답한 문박사의 말에 김반장은 작은 신음성을 내뱉었고, 이형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김반장을 보며 설명을 바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김반장은 무거운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그 중에 환자 한 명이 탈출을.. 했다구요?”


 


무거운 침묵을 깬 이형사의 말에 문박사는 침묵으로 답했다. 이형사는 기분 나쁜 얼굴로 김반장을 바라보았지만 김반장은 말 없이 창문 밖을 응시할 뿐이었다.


 


 


 


***


 


 


정신병원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환자 60명을 제대로 케어할 수 있는 시스템, 설비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관계자들의 수도 모자라지 않아 보였다. 김반장과 이형사는 관계자의 안내로 주위와 병원 내부를 살펴보았고 2시간이 지난 후, 문박사의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똑똑.


 


‘네.’ 문박사의 목소리. 관계자는 ‘들어가시죠.’ 라고 말했고 김반장과 이형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10평은 되어 보이는 깔끔한 공간. 문박사는 김반장과 이형사를 발견하고는 서류를 다른 곳으로 슬쩍 밀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어땠습니까?”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생각이 많은 이형사가 바로 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김반장이 말했다.


 


“평범한.. 환자들은 아닌 것 같군요.”


 


‘평범한.’ 이라는 곳에서 문박사는 고개를 약간 갸웃거렸지만 이내 웃으며 되물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셨지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요. 환자들의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이나.. 아예 두 손을 묶어 놓은 환자들도 보였습니다. 아무리 정신병원이라고 하지만..”


 


김반장의 말에 문박사는 두 손을 저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건지 잘 압니다. 알아요. 하지만 김반장님 말대로 이곳에 있는 환자들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어떤 점이죠?”


 


김반장의 말에 문박사가 바로 답했다.


 


“살인죄로 들어온 환자들이 대부분이죠. ‘상습적으로요.’ ”


 


그 말에 이형사는 벙찐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표정에 변화가 없는 김반장은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박사는 김반장의 얼굴을 살피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우리 병원은 환자들의 뜻을 최대한 반영합니다. 그들의 대부분이 정신적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지요. 예. 살인은 분명 악한 행위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환경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이라고 하셨나요? 만약 두 분이 이곳을 총 책임지고 있는 입장이라면 저 방법 말고 가장 좋은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지요? 전 이곳의 책임자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관계자분들의 안전도 생각해야만 하지요.”


 


문박사의 말에 이형사와 김반장은 답을 하지 못했다. 약간 난처해 하는 이형사와는 다르게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김반장을 보며 문박사가 물었다.


 


“김반장님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으시군요.”


“예.. 뭐. 많은 경험 끝에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탈출한 환자는 누구죠?”


 


화제를 돌리며 다가오는 김반장에게 문박사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종이 서류를 건넸다. 서류라고 해봐야 1장 짜리로 요약된 환자 정보가 다였지만 그것을 받아든 김반장은 눈으로 대강 쓸어내리기 시작했고 문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환자 이름은 김미영. 나이는 32살. 지속적인 가정 폭력으로 인해 정신분열에 걸린 상태였습니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주방용 칼로 수십 차례 찔러죽였고 경찰이 현장에 갔을 때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간단히 브리핑을 들은 이형사는 혼잣말로 ‘정신분열.’ 이라고 중얼거렸고, 김반장은 다시 한 번 검토를 한 뒤 문박사에게 건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환자 방으로 가죠.”


 


 


 


 


***


 


 


 


 


“여깁니다.”


 


문박사의 안내로 환자 방에 도착한 김반장과 이형사. 천천히 방을 살피던 김반장은 생각보다 병실의 정리 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말했다.


 


“탈출한 것치고는.. 상당히 깨끗하군요.”


 


그 말에 문박사가 곤란한 얼굴로 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도 그게 미스테리입니다. 분명 그 날도 당직 근무자들이 순찰을 돌았지만 이렇다 할 점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김반장은 당일 근무를 섰던 근무자들을 모조리 불러들이라고 말했고 문박사는 그러겠다고 한 뒤 환자 방을 나가버렸다. 문박사가 나간 것을 확인한 이형사는 김반장에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이상합니다.”


“뭐가 말이지?”


“여자의 몸으로 탈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이 방을 보십시오. 아무런 흔적도 없지 않습니까.”


“공모자가 있다는건가?”


 


이형사는 보일 듯 말듯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반장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이렇게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마술쇼처럼 탈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창문 하나 없고 단단히 잠긴 쇠문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는 이상 밖으로 통하는 것은 성립자체가 되지 않는다.


 


“공모자가 있을 수 밖에 없죠.”


 


그 말에 김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


 


 


30분 뒤, 김미영이 탈출했던 날 근무를 하던 관계자들이 한 방에 모였다. 그 가운데에는 김반장이 있었고 이형사와 문박사는 문 쪽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 날 근무를 하셨던 분들은 다섯 분이 전부입니까?”


 


김반장에 말에 대강 대답한 사람들은 지루한 얼굴로 김반장을 바라보았다.


 


“여러분.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계십니다. 탈출을 한 여성은 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여자가 두 번. 세 번의 일을 벌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단 말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태평한 얼굴로 앉아 계시는겁니까.”


 


그 말에 조금은 자각이 생겼는지 사람들이 자세를 앞으로 하고는 김반장을 바라보았다. 그 자세를 보며 조금은 만족한 김반장이 말했다.


 


“김미영이 탈출했던 날. 밖으로 통하는 통로를 지키는 분이 있었을 겁니다.”


“....”


 


대답대신 침묵이 돌아왔지만 김반장은 상관없었다.


 


“그게 누구죠?”


 


김반장의 말에 사람들은 대답대신 눈빛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김반장은 사람들이 가리키는 40대로 보이는 퉁퉁한 남자를 보며 물었다.


 


“관계자분. 이건 심각한 얘기입니다. 솔직히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관계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 날. 저는 그곳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구요.”


 


그렇게 말하는 관계자의 동공이 미세하게나마 떨리고 있었다. 김반장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관계자에게 다가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을 하게 되면 공모자로 같이 체포될 수가 있습니다. 부디 제가 그러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압박 섞인 김반장의 말에 관계자는 무거운 한숨을 쉬며 답했다.


 


“1분..”


 


그 말에 문박사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관계자에게 다가가며 언성을 높였다.


 


“제정신인가! 자네.. 자네가 규칙을 어겼다는건가?”


“..면목없습니다.”


“자네 때문에 김미영이 탈출을 했어. 탈출을!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면 어쩌겠다는건가!”


 


문박사의 질책에 관계자는 고개를 푹 숙이며 아무말도 하지 못했고 김반장은 냉철한 얼굴로 문박사를 뒤로 물러나게 한 뒤, 말했다.


 


“그럼 쇠문을 열어준 것도?”


 


관계자는 침묵으로 대답했고, 김반장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갔다. 문박사는 관계자의 어깨를 두드린 후, 그를 따라나서며 물었다.


 


“어쩔.. 생각이십니까.”


 


문박사의 말에 김반장은 굳게 닫혀진 문을 보고는 말했다.


 


“환자에 집중하도록 하죠. 그 이상의 일은 덮어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 문박사는 김반장에게 직원들이 쓰는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편히쉬십시오.”


 


문박사가 나간 것을 확인한 이형사가 담배를 물고 있는 김반장에게 다가오며 불을 건넸다. 담배에 불을 붙인 김반장은 연기를 뿜으면서 눈을 빛냈다. 그것을 읽기 못했을 리가 없는 이형사가 물었다.


 


“뭐가 걸리기라도 하십니까?”


“..이상해.”


“뭐가요?”


“너무 쉽게 풀리잖아.”


 


그 말에 이형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반문했다.


 


“쉽게 풀리면 안되는 겁니까? 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데요.”


 


김반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 병원 사람들.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해.”


“뭘요?”


“그냥.. 감이지.”


 


 


 


***


 


 


 


환한 달이 떠오르는 곳. 김반장은 멍한 얼굴로 달빛에 비춰지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도착했던 이름 모를 섬이 분명했다. 끝 없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기계처럼 걷고 있는 자신의 몸을 보고 있던 김반장은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


 


그리 멀지 않은 곳. 160cm의 신장을 가진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김반장은 망설이지 않고 여자가 있는 곳으로 바람같이 뛰어가 여자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당신.. 김미영이지?”


 


그 말에 고개를 돌린 청순한 외모를 가진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맑은 눈동자를 보며 김반장은 도저히 살인을 한 여자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손으로 여자의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


 


“왜 탈출한거지?”


 


그 말에 김미영은 눈물을 흘렸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김반장은 말 없이 김미영이 말하는 것을 기다렸고, 곧 입술을 뗀 김미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줘요.”


“..뭐?”


“도와주세요.”


 


 


 


***


 


 


 


“김반장님? 김반장님!”


 


‘허억.’ 헛바람을 내쉬며 몸을 일으킨 김반장은 오른 손목에 느껴지는 이물감에 이마를 찌푸렸다. 그 옆에는 이형사와 문박사가 있었는데 둘의 표정이 많이 좋지 않았다.


 


“무슨..”


 


설명을 바라는 김반장의 말에 문박사가 답했다.


 


“영양실조와 피로가 겹친 것 같습니다만..”


“....”


“정신을 잃은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이틀이나..”


 


김반장은 멍한 얼굴로 이형사를 바라보았다.


 


“아직 잡히진 않았지만..”


 


대답 대신 창문 밖을 가리킨 이형사.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무섭고 강렬한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김반장은 깨질듯한 머리를 붙잡으며 일어나려고 했지만 문박사가 저지하며 말했다.


 


“일단은 쉬십시오. 내일이면 태풍이 그칠 겁니다. 그 때 움직이시는게 건강에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문박사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이형사가 품 안에서 잔뜩 구겨진 종이를 꺼내들었다.


 


“뭐지?”


 


김반장의 말에 이형사는 ‘구하느라 힘들었습니다.’ 라고 말한 뒤 종이를 건넸다. 눅눅하다 못해 축축한 종이.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어서 펴질지가 의문이었다. 김반장이 난처한 얼굴로 종이를 바라보자.


 


“줘보십시오.”


 


이형사가 가볍게 종이를 받고는 살살 펼치기 시작했다. 1분이 지나지 않아 완벽히 종이를 펴낸 이형사는 구슬땀을 닦아 내고는 김반장에게 종이를 건넸다.


 


[등대에...]


 


라는 말이 전부인 종이였다. 김반장은 인상을 쓰며 이형사에게 물었다.


 


“언제 이걸 발견했지?”


“김반장님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뒤였죠. 산책을 할겸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는데요. 햐.. 이 섬 장난아니게 넓더라구요. 대한민국 어디에 이런 섬이 있는건지 원.. 하긴 정신병자들을 모아두는 곳이니 평범한 곳은 아니겠죠?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이니까 말이에요.”


 


사족을 붙이는 이형사의 말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낀 김반장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본론만 말해.”


“흠.. 그러죠.”


 


목을 가다듬은 이형사가 말을이었다.


 


“등대 근처에 있는 숲이었습니다.”


“..숲? 이 섬의 반 이상은 숲이라고.”


“아, 그러니까 등대 근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표시까지 해두었다구요.”


“....”


 


머리를 싸매고 종이에 새겨진 글씨를 보고있는 김반장에게 이형사가 살짝 앞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수상한게 뭔지 아십니까?”


“뭔데.”


“등대 근처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죠.”


“사람?”


“예. 그것도 꺼진 등대를요.”


 


김반장은 두 눈을 빛내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종이를 잘게 찢고는 이형사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네.. 조금은 쓸만하군 그래.”


 


이형사는 말 없이 웃었다.


 


 


 


***


 


 


 


“김반장님.. 역시 쉬시는게.”


 


환한 달빛이 떠오르는 밤. 김반장과 이형사는 밖을 둘러보고 오겠다는 빌미로 정신병원을 나온 상태였다. 김반장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이형사의 뒤를 쫓으며 말했다.


 


“내 몸 하나 챙기다가 사건 하나를 놓치게 된다구. 거기다가 이 병원사람들이 영 수상쩍단 말이야.”


 


결연한 의지로 말하는 김반장을 보며 이형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빨리 갈겁니다.’ 라고 말한 그는 이제와는 다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고 김반장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 뒤를 빠르게 따랐다.


 


우르르릉.


 


천둥이 심심찮게 치고 있었다. ‘곧 쏟아지겠는데요.’ 라고 말하는 이형사의 말을 무시하며 김반장이 걸음을 재촉했다.


 


“허억. 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앞으로 나아가는 김반장을 보며 이형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걸음을 다시 옮겼다.


 


후둑. 후두둑.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굵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형사는 얼굴을 찡그리며 ‘거의 다왔습니다.’ 라고 외쳤고 김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5분 정도를 걸었을까.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이형사의 목적지에 도달한 김반장은 어둠 속에서 우뚝 솟은 등대를 발견하고는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이형사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았다.


 


“돌아가기에는.. 헉. 늦었겠죠? 후우..”


“내가 왜.. 허억. 헉. 지금까지 사건들을 다.. 헉. 해결할 수 있었는지 궁금한가?”


“아뇨. 지금은 힘들어서.. 후.. 못 듣겠습니다. 하아.”


 


이형사의 말에 김반장은 조용히 미소 지었지만 두 눈만큼은 맹수의 그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


 


 


 


“김반장님 진짜로 내려가시게요?”


 


이형사가 두려운 얼굴로 묻자 김반장은 한치의 흔들림 없는 얼굴로 답했다.


 


“고지가 앞이야. 이런 곳에서 뒤로 물러나겠다는거야?”


“하지만.. 많이 미끄러울텐데요.”


“발만 잘 디디면 돼. 봐. 암석들 사이사이 패여진 홈이 있잖아. 내가 클라이밍을 좀 해봐서 알아. 조금만 조심하면 돼.”


 


김반장의 말에 이형사는 조금 고민하는 듯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거 뭐.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습니까.”


“내가 내려가는 방향으로만 내려와.”


“김반장님이나 조심하십시오.”


 


이형사의 말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은 김반장이 ‘조심해’ 라고 말한 뒤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파른 암벽은 아니었지만 굵은 빗줄기 때문에 한 없이 위험천만한 곳으로 되어버렸다. 등대로 향하기 위해서는 이곳을 내려가야만 했기에 김반장은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돌아갔을 때에는 그들 모두가 눈치를 챘을 것이고 자신들도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커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이형사 혼자 위에 두고 내려올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 병원 관계자들이 추적을 해 이형사를 잡아간다면 자신의 신변을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었고,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알아버리면 안되는 것을 알려면 그에 맞는 것을 걸어야 한다. 김반장은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었다. 그렇기에 많은 희생을 치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우르릉. 콰광.


 


강렬한 천둥이 고막을 찢는 것 같았다. 김반장은 이를 악물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려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허한 기분이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따라와야할 이형사가 눈에 보이지가 않았다.


 


철렁. 심장이 주저 앉는 듯한 기분에 김반장은 위와 좌우 아래를 살폈다.


 


콰과광.


 


김반장을 돕기라도 하듯 강렬한 천둥이 아래를 비추었고, 절벽 아래에는 이형사의 신형이 대자로 뻗어 있는 것이 보였다. 김반장은 소리 내어 이형사의 안위를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내려가기로 했다.


 


허나 암벽의 높이는 생각보다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20분 정도를 정신 없이 내려온 김반장은 이형사가 있었던 곳으로 달려갔지만 이형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김반장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어둠 속에 고요히 자리잡고 있는 등대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지키고 있더라구요.’


 


그 말을 떠올린 김반장은 두 눈을 빛내며 몸을 숙이고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철벅거리는 옷 소리가 유난히 거슬렸다. 빗소리와 천둥 소리 때문에 들릴리는 없겠지만 등대에 잠입 했을 때에 최소한의 소리를 줄여야했기에 김반장은 불필요한 옷을 벗어버리기로 했다.


 


“누구..”


 


옷을 다 벗은 찰나 절벽 아래쪽에서 자그마한 음성이 들려왔다. 빗소리 때문에 듣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예리한 청력 덕분인지 김반장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


 


소리가 들려온 곳은 절벽 아래쪽이었다. 김반장은 헛소리를 들은 것은 아닌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어둠 속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절벽 아래에는 사람이 들어갈만한 동굴이 있었다. 김반장은 오들오들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통제하며 동굴을 조심스럽게 들어가고 있었다. 이형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라진 김미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이런 일을 오래 해온 그에게는 남과는 다른 감이 발달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6번째 감각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5분 정도를 걷자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반장은 두 눈매를 좁혀 언뜻 보이는 불씨와 거기에 비치는 가녀린 그림자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실마리를 잡았군.’ 이라고 생각한 김반장은 혹시 모를 상대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몸에 적당한 긴장을 해둔 상태였다.


 


타타탓.


 


김반장의 발소리를 들은 걸까. 가녀린 그림자는 크게 움찔거리더니 곧 조심스럽게 몸을 내밀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생김새를 식별할 수 있는 거리다. 김반장은 하얀 천을 걸치고 있는 여자를 보고는 석상처럼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며 중얼거렸다.


 


“..김미영?”


 


똑같았다. 김반장이 꿈에서 보았던 여인과 똑같았다. 김반장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당신을 불렀어요.”


 


김반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김미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난 신기가 있어요.”


“..신기?”


 


김미영은 애처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날 살인자로 몰아가고 있어요. 사람들이요.”


“어째서..”


“여긴 사이비 집단으로만 이루어진 섬이에요.


 


김반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러기엔 너무나..”


“정신병원 같죠?”


“....”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김반장을 바라보며 김미영은 투명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전 서울에서 이름 있는 무당이에요. 어릴적부터 신내림을 받아 남들보다는 다른 미래를 볼 수가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굿을 해달라는 청을 받았어요. 전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가 너무나 아프다고 하기에.”


“....”


“어쩔 수가 없었죠. 제게 이런 힘을 준 것도 다 뜻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가정형편이 어려운 집안이라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준비를 다하고 집을 나서는 순간..”


“잡힌거로군.”


 


김미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반장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그들은 제 힘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제가 있어야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죠.”


“..문박사가 그럼?”


“예. 그 사람이 교주에요.”


 


터엉. 머리에 강한 것으로 가격당한 것처럼 김반장은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이비가 관여되는 일에 어째서 수사 의뢰를 한 것일까. 여자를 찾아내는 즉시 사이비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텐데.. 김반장은 뇌리에 스쳐가는 무언가를 떠올리며 두 눈을 빛냈다.


 


‘그렇군. 정신 병원이라고 설명을 한다면 모든게 해결이 돼. 정상인도 정신병원에 들어가면 아무도 정상신으로 보지 않듯. 이 여자도 그런 걸로 이용할 속셈이었던 거야.’


 


빠르게 결단을 내린 김반장에게 다가온 김미영이 애절한 얼굴로 말했다.


 


“부디 저 등대에는 가지 말아주세요.”


 


그 말은 들어주기가 힘든 청이었다. 김미영의 처지도 딱하지만 같이 일을 하던 이형사의 안위도 생각해야만 했다. 김반장은 오래 생각하지 않고 돌아서며 말했다.


 


“같이 일했던 동료가 저곳에 있어. 미안하지만 기다려줘요. 모든 것을 해결하고 당신을 구하러 올테니까.”


 


그 말에 김미영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동료는 없어요. 당신의 동료는 없다구요. 저 등대에 가면 당신도.. 당신도 병원에 있는 환자들처럼 될거란 말이에요!”


 


그 절박한 목소리에 김반장의 몸이 잠깐이나마 멈췄지만 이형사의 목숨도 걸려있었기에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 빠르게 걸어나가는 그의 뒤로 김미영의 처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회할거에요! 당신은 후회할거라구요!”


 


 


 


 


***


 


 


 


 


김미영의 마지막 목소리를 잊으며 등대 근처에 도달한 김반장은 입구 쪽에 서있는 무장한 경비 한명을 발견하고는 깊숙하게 몸을 숙였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 시작했다. 굵은 빗줄기와 우렁찬 천둥소리는 그의 존재감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


 


어느새 경비 근처로 다가온 김반장은 숨을 잠시 참고는 경비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체격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권총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허리춤에 달려 있어 꺼내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김반장은 천천히 기어가기로 했다.


 


우르릉. 쿠궁!


 


강력한 천둥 소리에 맞춰 몸을 날리며 공격한 김반장의 일격에 그대로 맞아 떨어진 경비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그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든 김반장은 낮은 숨을 쉬며 천천히 문을 열고는 계단 형식으로 되어있는 등대 내부를 살폈다.


 


‘조금만 기다려. 이형사.’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딛으며 총구를 위로 향한다. 만약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한 계단. 두 계단을 오른 끝에 당도한 첫 번째 문. 김반장은 심호흡을 하고는 문을 가볍게 열었다. 다행히 잠겨있지는 않았지만 안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기에 총구를 앞으로 겨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스르륵.


 


가볍게 열리는 문.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내부를 제외하고는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인가..’


 


김반장은 다시 계단을 올랐다. 이번에는 걸음이 조금 빨라졌는데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에서 조급함을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


 


마침내 두 번째 문 앞에 멈춘 김반장은 안에서 느껴지는 뭔가에 고인 침을 삼켰다. 심호흡을 길게 한 김반장은 거세게 문을 차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환한 불빛 아래. 서류 처리를 하고 있던 문박사를 보자 김반장은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죠.”


 


김반장의 말에 문박사는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범인이 잡혔을 때 내는 포기의 숨과는 다른 것이었다.


 


“기어코 여기까지 왔구만..”


 


그렇게 말한 문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반장이 낮고 강하게 말했다.


 


“이형사 어딨어.”


“이보게..”


“이형사 어딨냐고! 이 ♥♥끼야!”


 


김반장의 외침에 문박사는 다시 무거운 숨을 쉬고는 말했다.


 


“이형사는 없네.”


“♥♥♥ 하지마! 너네 정신병원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내가 다 알고 왔어. 저기 동굴에 있는 김미영이. 그 여자 너네가 납치한거라며? 다 듣고 왔으니까 빨리 이형사 내놔. 니 가슴에 구멍뚫기 전에 말야.”


“자네..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나?”


“수작 부리지 말고 어서..”


“난 환자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지. 최대한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며 병원을 운영하다고 했어.”


 


자신의 뜻과는 전혀 반대로 말하는 문박사를 보며 김반장은 가슴 속에서 몰아치는 뜨거운 열기를 ♥♥지 못해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철컥.


 


‘!!’


 


하지만 실린더가 돌아가는 소리만 날뿐. 김반장이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철컥. 철컥. 두어번. 서너번.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이 나아가지는 않았다.


 


“뭐야.. ♥♥.. 뭐야.”


 


김반장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문박사를 노려보았고, 문박사는 책상에 쌓인 서류더미 중 가장 위에 것을 김반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읽어보게.”


“이 사이비 새끼들이.. 어디서 나를.”


 


김반장의 공격적인 태도에 문박사는 차분한 태도로 의자에 앉아 손짓 했다. ‘그것을 읽으면 모든게 해결될거야.’ 라고 말하는 문박사의 말에 김반장은 뭐라고 홀린 듯 그가 시키는대로 하고 있었다.


 


[김문식. 35살. 사이비종교에 빠져 모든 전재산을 쏟아부은 아내 김미영을 살해함. 그 실의의 충격을 ♥♥지 못한 그는 끝없는 자해 끝에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냈으며 그 인격은 ’김반장‘이라는 인격임. 공격적인 성향을 띄고 있지만 사고를 판단하고 냉철한 처리 능력을 가짐. ’이형사‘라는 환각이 보이는 듯함. 사이비라는 단어에 특히 공격적으로 변함. 김반장의 인격이 나올 때에는 주치의가 그 보조를 맡았음.]


 


부들부들 떨리는 손 때문에 종이 조각을 제대로 집고 있을 수가 없었다. 김반장은 ‘이럴수가.’ 라는 말만 반복하며 무릎을 꿇었다. 문박사는 절망에 빠진 김반장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자네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어.”


“....”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획한거지. 롤플레이를 하면 환자의 상태가 조금이나마 나아질거라고 생각했어. 자네 안에 있는 그 인격도 사라질거라고 생각했네.”


“♥♥♥.. ♥♥♥ 집어 치워! 이 사이비 새끼들아!”


 


김반장은 끓어오르는 흥분을 ♥♥지 못해 문박사에게 달려들었지만 어느새 나타났는지 병원 관계자들이 나타나 그의 몸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크.. 큭! 이 ♥♥끼들이! 이 사이비 새끼들이!”


 


발악하는 김반장을 보며 문박사는 처연한 얼굴로 천천히 걸어와 그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김문식. 자네 이름은 김문식이야. 자네가 이곳에 수감된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네. 그리고 롤플레이라는 프로그램에 첫 지원자도 바로 자네였어. 이런 식으로 나를 실망시키다니.. 약속했잖은가. 잘하겠다고. 반드시 다른 인격을 없애겠다고.”


“이 빌어먹을 놈들! 이형사! 이형사 어딨어! 당장 나오란 말이야! 빌어먹을!”


 


고개를 저으며 발악하는 김반장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문박사는 조용히 손짓했고 관계자들은 김반장의 몸을 끌고 나가버렸다. 완전히 닫힌 문을 바라보며 문박사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문박사입니다. 환자를 치료하지 못했습니다. 예. 죄송합니다. 예. 일급 수용소로 옮기겠습니다.”


 


 


 


***


 


 


 


“이 개같은 년..”


 


김문식의 손에는 주방용 칼이 들려져 있었다. 거실에는 그의 아내 김미영이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고 마루를 덮고 있는 피의 양이 상당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쉰 김문식은 곧 허망한 얼굴로 시신과 자신의 손을 번갈아 보고는 칼을 들어 손목을 그어버렸다.


 


 


 


***


 


 


 


사회에 발을 딛고 선을 보고 만난 여자였다. 참했다. 착실했다. 이런 여자 만나기 힘들거라고 주윗 사람들이 말해왔었다. 모든 부러움을 받으며 지내왔던 그의 가정에 ‘사이비’ 라는 것이 개입되면서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유독 약했던 김미영은 역 근처에서 구걸을 핑계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사이비에 넘어갔고, 완전히 세뇌가 되어 모든 재산을 넘겨버리고 말았다.


 


더 좋은 곳으로 이사가기 위해 모아두었던 돈이었다. 술집 생활을 했었던 김미영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한것이었다. 부모가 없이 자란 김문식에게는 김미영이 전부였었고, 그 믿음은 영원할거라고 믿어왔었다.


 


하지만 모든 믿음이 틀어지고 자신의 희망인 돈을 넘겨버리는 일이 생기게 되자 김문식은 그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곧바로 김미영을 살해했고, 공허함을 ♥♥지 못해 자살 시도를 하지만 실패한뒤 정신분열로 인한 살해로 정신병원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매일 자해를 하는 통에 온 몸을 꽁꽁 묶인 채로 생활을 하던 그에게 또 다른 자아가 생겨났고, 그 자아는 처음 자신을 잡아들인 형사와 비슷했다. ‘김반장’ 이라는 자아는 항상 무엇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였고 그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타입의 자아였다.


 


수감생활 1년 째. 김문식은 독방에서 나오게 되는데, 김반장이라는 자아가 그를 완전히 지배하고 나서부터의 일이었다. 물론 같은 정신병이지만 자해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김문식의 자아가 완전히 잠든 것만은 아니었다. 아주 가끔.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번 식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나올 때마다 주치의에게 치료를 원한다고 애원을 해왔었다. 평소 김문식에게 좋은 감정을 지녔었던 주치의는 새롭게 개발한 프로그램에 김문식을 참여시켰다. 주 목적은 김반장의 인격을 없애는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김반장의 인격 때문에 프로그램이 무산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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