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휴.. 한강을 흙으로 다 파묻던가 해야지."
".. 일단 피해자 주변인들 모으고.. 조서 쓰고.. 그러면 되겠네."
"차 준비 할까요?"
"어, 곧 나갈테니까 잠깐 밖에서 잠깐 기다려."
어지러이 늘어진 책상 위 서류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치워가며 난 라이터를 찾고 있었어.
'분명 여기에 하나 있었는데..'
서랍을 확 열었는데, 그곳에 다행히도 라이터가 하나 눈에 들어 왔어.
라이터를 잡고, 책상 서랍을 닫으려고 하는데 뭔가 내 눈에 들어 왔어.
낡은 편지봉투 한 장.
눈에 확 띄는 봉투 한 장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서랍에 넣어져 있었어.
봉투는 낡아서 바랬지만, 참 반듯한 모양 이였어.
구김하나 없는 봉투.
난 무심히 그 봉투를 열어 봤어.
그때 문자가 왔어..
12년 전 햇살이 눈부시던 그 날.
배구하는 여학생들 사이에 내가 좋아하던 여자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어.
그러다 베드민턴 공 하나가 내 머리를 툭 첬지.
난 공이 날아온 그 곳을 바라 봤어.
그곳엔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범생이,
치기도 잘 치는 싸움군이,
날 보고 서 있었어.
나한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말야.
난 대체 저런 멋진 애가 왜 나같은 찌질한 애랑 말을 섞고 있는지 알 수 없었어.
근데도,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됐어.
내가 가는 곳엔 언제나 녀석이 있었고, 내가 기집애들을 쫓을 떈, 녀석도 내 뒤에 항상 있어 줬어.
덕분에 난 내가 좋아하던 여자애를 그녀석에게 뺏기고 말았지만 말야.
난 결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었어.
왜냐면 걘 엄청 무서운 녀석이였으니깐 말야.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도, 난 녀석과 함께 다녔어.
하지만 그런 외모와 지식 때문에, 난 언제나 녀석과의 비교 대상이 됐어.
또 어렸기에,
그런 녀석을, 난 뒤에서 몰래 험담 하곤 했었지.
그렇게 내 스스로가 성숙해질 무렵.
난 우연히 그녀를 만났어.
그녀는 너무나도 착했고, 그런 그녀를 난 마음에 품었어.
그녀가 가는 곳은 언제나 내가 있었어.
때문에 그녀가 가입하고 있던 동아리도 들었었지.
헌데, 내 친구 녀석도 날 따라 동아리에 가입하는 바람에,
그곳의 주목은 언제나 녀석의 몫이 되고 말았어.
난 분통스러웠어.
날 엿먹이려고 그러나?
대체 뭔 꿍꿍인지 난 이자식이 그때부터 미워졌던게 아닐까 싶어.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 졸업을 앞둔 그때까지도 난 그녀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했어.
하지만 마침내 졸업 당일이 되자, 난 고백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
아침 일찍이,
난 그녀가 있는 교실로 조심조심 걸어 갔어.
발을 들어 그녀의 교실에 그녀가 있는지 확인해보니,
그녀의 자리에, 그녀의 모습을 가리고, 어떤 남자가 있었어.
그녀는 그 남자를 보면서 웃었어.
그 웃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남자는 그녀의 귀에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어.
난 그 모습을 보자마자, 소리없이 몸을 돌렸어.
그리고 내가 원래 있었던.
그 공간 속으로 돌아가고 말았어.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 든 나는 딱히 할 것이 없어서 경찰 시험을 치루게 됐어.
몇년간의 공백이 있고 나서야 난 경찰이 됐고, 말단의 업무부터 시작해서 겨우 지금에까지 이를 수 있었어.
그러던 어느날 내 잘났던 친구 녀석이 날 찾아왔어.
얼굴은 좋아 보였어.
늘 그렇듯.
난 녀석에게 왜 찾아 왔냐는 투로 말을 했어.
녀석은 오랫만에 내 얼굴도 볼 겸 해서 왔다고 대답했어.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꺼내자, 난 곧바로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어.
"왜 둘이 결혼이라도 하게? 뭐.. 내 5만원이 필요하다 이거야?"
"너 무슨소리야 그게.."
"아니.. 난 또 니들이 잘 됐나 싶어서 그런거지. 아니야?"
"지연이. 아직도 너 많이 생각해."
"풋, 걔가? 나를? 웃기시네.."
"진짜야. 그 날 졸업식때.."
"..그 얘기는.. 하지 말자. 괜히 기분만 상하고. 그찮아?"
"그건 니가 오해하고 있는거야.."
"오해? 뭐, 오해 그럴수도 있겠지. 그래서 뭐?"
"..기억 하냐? 그때.. 졸업 선물.."
"무슨 선물?"
"내가 그렇게 화 내는 바람에, 직접 전해주진 못했지만 내가 너한테 선물을 남겼어."
"그래? 난 모르겠는데?"
"네 동생한테 꼭 전해주라고 했었는데.."
"알잖아. 그 새끼 좀 덜떨어진 놈이라는거."
"어. 아,아니.. 그렇구나.."
그렇게 쓸대없는 말을 끝으로 녀석은 돌아갔어.
내가 졸업식 아침.
지연이를 만나러 간 교실 안에는,
이 녀석과 지연이가 단둘이 함께 있었어.
사랑하는 눈빛으로 속삭이던 두 사람을 그땐,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
난 화가 났어.
그녀에게 줄 내 선물도, 결국 그때문에 전해주지 못했으니까 말야.
내가 몇년동안 그렇게 눈치를 줬음에도, 그녀는 내 마음을 몰랐었나 봐.
아니, 알았을 수도.
하지만 내 친구 녀석이 워낙 잘나서,
나같은게 보였을리가 있었겠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 녀석이 또 날 찾아왔어.
이번엔 옆에 지연이도 데리고 왔지.
난 오랫만에 보는 그녀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고 말았어.
고백 한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속앓이만 했었던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민망할 정도더라고.
그렇게 오랫만에 셋이 밥을 먹었어.
난 그들을 잊은지 오래였지만, 그들은 날 잊지 않았었어.
밥을 먹고,
술을 먹었어.
난 바람 좀 쏘일 겸 밖으로 나왔지.
그때, 지연이도 날 따라 밖으로 나와 내게 말을 건냈어.
"잘 지냈어?"
"뭐, 아까 다 한 얘기잖아. 잘 지냈다니까."
"그래?"
"지연아, 사실말야. 나 너.. 그땐.. 정말 좋아 했었다. 근데 그땐.. 용기가 없었어."
"나 알고 있었어.."
"그래.. 알고 있었겠지.."
"근데 그때 왜 말하지 않았니?"
"뭘?"
"좋아 한다고 말야."
"응? 그걸 왜?"
"너 바보니..? 나도 널 좋아, 하.. 하긴.. 생각해보니까 네 고백 받아줄 순 없었겠다."
"너 해태랑 사귀고 있었던거 아니야?"
"아니?"
"그,그럼 내가 고백하면 사귀었을거야?"
"아니."
"뭐야 그게.."
"비밀이야."
난 그 말을 듣자, 어이가 없었어.
그 시절에 지연이도 날 좋아했었다니..
난 멍청이였어...
이런 멍청이는 또 없을 거야.
근데 좋아 한다면서 고백을 받을 수 없었다니, 이건 대체 무슨 소리지?
첫사랑의 아픔이 있은 뒤로,
일도 일이라, 내겐 사람 좋아할 시간이 없을줄만 알았어.
하지만 사랑은 찾아 오더라고.
그렇게 난 그 사람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어.
그래서 고백을 하기로 마음 먹었는데도, 빌어먹을.
또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어.
난 인근 커피숍에서 매일같이 커피를 사먹었어.
내가 좋아하는 여자도 그곳에서 매일같이 커피를 샀지.
그러던 어느날 이였어.
난 커피를 고르는 척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녀가 걸어 오는데, 그녀의 등 뒤로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어.
해태였어.
해태는 날 보자 웃으면서 걸어 왔어.
그 웃는 얼굴이 얼마나 빌어먹을만큼 멋있는지.
주변 사람들은 전부 해태만 바라 봤어.
물론 그녀도 말이지.
내겐 단 한번도 보이지 않던 웃음을.
해태가 들어온 이후로 단 몇초도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웃고 있었어.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고, 자연스럽게 웃었어.
넌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그래서 내가 널 싫어하는 거야.
이 개같은 자식아.
난 그날의 악몽이 다시 떠올라, 커피 값을 계산하곤 그곳을 빠져 나왔어.
해태도 곧 따라 나왔지.
난 짜증이 났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건 없었어.
너무나도 잘난 녀석과 그 녀석의 뒤로 초라한 내 모습.
이런 비겁한 자식.
날 들러리로 쓰고 있었던 거냐?
내가 그렇게 우스워?
내 잘못이겠지만,
기억하기 싫은 추억이였고,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하는 해태 녀석을,
난 확실하게 정리하고 싶었어.
그래서 대놓고 말했지.
앞으로 연락같은거 하지 말라고 말이야.
이젠 친구도 뭣도 아니니 남남처럼 살자고 말이야.
그 이후로 그렇게,
해태 이자식은 내게 연락하지 않게 됐어.
물론 지연이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게 됐지.
그 날은 너무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었어.
근 넉달은 계속 하나의 사건에 시달렸던 것 같아.
정신줄을 놓으면, 그대로 잠에 들었을 정도였으니까 말야.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에,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
그럴 수 없으니까. 난 술을 먹었어.
그렇게 먹었어.
정신없이 먹었어.
"제가 바로 민중의 지팡임돠~! 실수한건 실수한건데~! 기사님 그냥 한번만 태워다 주시면 안될까요~!"
"이새끼가 미첬나? 술 먹을거면 곱게 마셨어야지! 아휴~! 냄새! 이 시트 어떻게 할거야! 내려 이새끼야!"
택시 안에서 토를 해버리는 바람에, 결국 난 대교 중간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어.
멀어져 가는 택시의 뒤로 쌍욕을 퍼붓고 나서야 난 그자리에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들었어.
해태 이새끼.
잘난 놈.
부족한거 없는 놈.
나쁜 놈.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난 내 자신이 비참해지기 시작했어.
눈물까지 나더라구.
눈물로 얼룩덜룩한 내 눈앞에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어.
몇번을 눈을 감았다 뜨니까, 그 앞에 있던게 뭔지 보이더라고.
꿈인가?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해태였어.
".. 술 너무 많이 마셨구나?"
"차~! 해태~! 니가 여긴 무슨 일이냐~! 어~!"
"택시 잡아 줄게."
"됐어~! 이새끼야~! 내가 갈거야~!"
내가 몸을 못 가누니까 녀석이 내 팔을 들어 올렸어.
난 녀석이 내 몸에 손을 대자, 갑자기 열이 뻗혔어.
"동정하지마 이새끼야~!~!~! 동정하지마!!!!!!!!!!!!!!!!!!!!!!!!!"
그땐 내가 너무 흥분 했었나 봐.
때마침 녀석의 생각에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었을 때였으니까 말야.
너무 흥분했어.
술에 취했기도 했었고.
너무 흥분했어...
난 뒷짐 짓고 걸어가는 녀석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난간에 손을 얹었어.
더 이상 살아 뭣해.
잘난 놈들은 저렇게 잘 살고, 못난 놈들은 이렇게 밖에 못 사는데 말야.
적어도 그때 그 순간 만큼은 이렇게 생각했어.
지금 생각하면 참 아찔한 일인데도 말야.
거의 반은 고꾸라져 한강에 빠질뻔한 날, 해태가 겨우 붙잡아 줬어.
대충 기억은 나.
난 울고 있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 생떼를 부리고 있었다랄까?
아무튼 죽고 싶다는 말을 계속 했었던것 같아.
그렇게 말을 내뱉다가.
난 한차례 몸부림을 첬어.
그 몸부림이.
말리지 말아 달라는 몸부림이 아니라,
녀석이 싫었기에 나온 몸부림이여서,
결국 해태 녀석은,
나 대신 한강에 떨어지고 말았어.
녀석이 내 옷자락을 잡았음에도,
난 마치 그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녀석의 손을 놔버리고 말았어.
어둠 속.
멀리 사라져 가는 녀석의 얼굴을 보면서,
그 시간엔,
그 순간엔,
정말 너무나도 기뻤어.
드디어 녀석이 내 삶에서 영영 사라져 주는거였으니까 말야.
다음 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너무 늦어 버렸어.
후회는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어.
아마도 해태는,
그렇게 이 세상 사람이 아닌게 됐겠지.
..어지러이 늘어진 책상 위 서류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치워가며 난 라이터를 찾고 있었어.
'분명 여기에 하나 있었는데..'
서랍을 확 열었는데, 그곳에 다행히도 라이터가 하나 눈에 들어 왔어.
라이터를 잡고, 책상 서랍을 닫으려고 하는데 뭔가 내 눈에 들어 왔어.
낡은 편지봉투 한 장.
눈에 확 띄는 봉투 한 장이 나도 모르게 서랍에 넣어져 있었어.
봉투는 낡아서 바랬지만, 참 반듯한 모양 이였어.
구김하나 없는 봉투.
난 무심히 그 봉투를 열어 봤어.
그때 문자가 왔어.
[형, 옛날에 형 고등학교 졸업할 때. 해태 형이 형 주라고 나한테 선물을 줬거든? 근데 그거 먹을거여서 그냥 내가 먹었었나봐. 근데 해태형이 형한테 편지를 남겨 뒀더라고? 형한테 줘야지 줘야지 했었다가 나도 까먹고 이제서야 방 청소하다가 나와 버려서. 형 책상 서랍에 넣어 놓을게. 초록색 봉투니까 눈에 확 띌거야. 미안해 형. 아무튼 수고해!]
한참을 그렇게 서서 편지를 읽었어.
읽고 또 읽었어..
"형사님! 형사님!"
난 잠시 이 세상 사람이 아닌듯 싶었어.
혼란스러웠고, 복잡했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어.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거지? 뭐.. 뭐하는 거지?'
"형사님! 밖에 차 세워 뒀다니까요! 왜 이렇게 안 나오세요!"
난 그 소리를 듣고 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
말단 녀석의 말 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가는데,
앞을 볼 수 없었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혼란스러웠어.
그 앞에,
아른거리게 누군가가.
서 있었어.
"해태가.."
"....."
"해태가..해태가..죽었대.."
"....."
"어떻게 해..어떻게 해...흐윽..어떻게 해.."
"지연아."
"흐윽.. 왜..."
"나 하나만 묻자."
"어.."
"졸업식 날. 해태가 너한테 뭐라고 속삭였었니?"
"그게.."
"빨리 말해 봐."
"그건..."
널.. 좋아한다는 말이였어..
안쓰러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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