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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필리핀에서 있었던 일

title: 메딕오디2019.06.08 21:02조회 수 119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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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안녕하세요... 오유는 항상 눈팅만 해서 이렇게 글을 쓰려니까 어째 쫌 어색하네요.

 

오늘 오유 돌아다니다가 공게 괴담 읽으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래서 

 

어릴 때 있었던 일 중에 가장 무서웠던 일을 한 번 쓰러왔습니다.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닌데다가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무섭지도 않은 일이라서 재미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ㅎㅎ...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의 일입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학캠프? 같은 게 있어서 언니랑 유치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 A(女)랑 

 

같이 이렇게 셋이서 필리핀에 갔었습니다. 기간은 한 1~3개월정도? 

 

벌써 10년 가까이 된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언니와 사이가 좋은 편도 아니었고 어머니와 장기간 떨어지는 건 그 때가 처음이라 가기 싫다고 징징거렸던 게 기억나네요.

 

 

정확하게 필리핀의 어느 지역에서 지냈는 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숙소는 알파벳 하우스? 라는 이름의 필리핀 현지 사람들보다 동서양인의 비율이 조금 더 많은 

 

하우스 단지의 조금 깊숙한 곳에 있는 2층 집이었습니다. 

 

1층에는 부엌과 거실과 방, 2층에는 방만 두 개 있었는데 

 

짧은 나선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면 계단 바로 앞에 성인 한 명이 간신히 서있을 만한 공간만 있고 양 옆에 문이 있었습니다.

 

2층 구조는 위에서 보면 넙쩍하고 길쭉한 두 개의 디귿자 모양의 방 두 개가 마주보는 

 

간단히 말해 콩팥 모양에 가까운 구조였습니다. 

 

디귿자 모양의 방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문이 나 있고 

 

방 안에는 문 맞은 편과 남향 쪽에 커텐하나 없이 썰렁한 창문이 하나씩 나 있었고 

 

문 맞은 편에 있는 창문 옆에는 붙박이형 소형 에어컨이, 

 

남향쪽 창문에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책상 두 개가 좌우로 붙어 있었습니다. 

 

덕분에 햇살이 잘 안 들어오는 방 안 쪽 부분에 애들에게는 조금 크지만 어른이 자기에는 상당히 작은 검은색 파이프 침대가 

 

약간의 간격을 두고 11자 모양으로 나란히 놓여있는 살풍경한 방이었습니다.

 

두 침대 중 하나가 남는 공간 꼭 들어맞지 않아서… 

 

그러니까 방 모양이 凹이런 모양이었는데 침대가 저 볼록 튀어나온 공간보다 커서

 

 침대 하나는 머리맡 왼쪽에 애 하나가 쪼그리고 누울 수 있을 만한 여유 공간이 비어 있었습니다.

 

 친구가 자기는 벽에 딱 달라붙어 자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길래 저는 머리맡 옆에 공간이 남는 침대에서 잤는데...

 

ㅎㅎㅎ...... 양보 괜히 했어...

 

 

아무튼, 집에는 인솔 선생님, 저, 친구A, 한 살 어린 두 남자아이 B, C 이렇게 다섯 명이서 지냈습니다. 

 

작은 집이라서 어린애들밖에 없었는데도 조금 비좁다는 느낌을 받고는 했었죠. 

 

처음에는 집에 돌아가는 날을 매일매일 꼽아볼 정도로 많이 우울해했지만 같이 지내던 애들이랑도 친해지고 

 

가끔씩 언니랑 언니 친구들이 놀러오기도 해서 걱정했던 향수병도 없이 시끌벅쩍 왁자하게 잘 지냈습니다.

 

 

필리핀에서 있던 동안 여러 일이 일어났었는데… 

 

첫 번째 사건은 한 3주째 되던 날 밤에 일어났던 것 같네요. 

 

학원에 다녀와서 라면 끓여먹고 인솔선생님이랑 애들이랑 같이 SM이라고 근처 대형마트에서 생필품 사오고

 

남자애들이랑 누가 더 큰 도마뱀붙이를 잡나 시합도 하고 뭐 평범한 하루였습니다,만.

 

 

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필리핀은 열대기후지만 해가 지면 꽤 서늘합니다. 

 

하지만 그 날 밤은 자다가 깰 정도로 정말 유달리 추웠습니다.

 

찬바람이 느껴지길래 혹시나 에어컨이 켜져있나 싶어서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나 에어컨을 확인했지만 

 

에어컨의 코드는 뽑혀있었습니다. 창문도 다 닫혀있었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지만 그때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하고 졸린 기운에 

 

그냥 도로 침대로 기어들어가 이불을 코 밑까지 끌어 올리고 도로 잠을 청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감고 있는데 팔부터 목까지 스윽-하고 냉기가 기어 올라왔습니다. 

 

뭐라고 해야하나… 알코올을 몸에 뿌리면 화악 시원해지는 느낌 아시죠? 

 

그런 부류의 건조한 냉기였습니다. 

 

잠결에 팔을 쓰다듬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군요.

 

 

  빠각, 까각. 하는….

 

 

귀를 간지럽히는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귀에 거슬리더군요. 

 

눈을 뜨고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귀를 기울여보니, 빠각, 까가각, 가가가각. 드그그극, 하는 그 이상한 소리는 

 

그 빈 공간 쪽의 벽 쪽에서 났습니다. 

 

처음에는 쥐가 벽이라도 긁는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쥐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어요. 

 

도마뱀붙이의 울음소리도 아니었습니다. 

 

같이 방을 쓰는 A가 이를 가는 소리를 잘못 짚은건가? 

 

이를 가는 초등학생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있다고 하더라도 A는 아니었습니다. 

 

자주 같이 자곤 했으니까 그건 확실했습니다. 

 

소리의 원인을 모르니 저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도 벽에서 나는 의문의 소리는 점점 더 커졌습니다.

 

 

  드드그그극. 쁘그그극, 뿌드, 뿌드드드득. 칵칵칵카각.

 

 

벽을 쾅 쳐서 소리를 내는 원인을 쫓아낸다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냥 빨리 이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서 안심하고 싶었습니다. 

 

밤에 들으니 낯설긴 하지만 분명히 들어 본 기억이 있는 소리였기 때문에 저는 벽과 마주보며 

 

지금까지 들어왔던 온갖 소리들과 지금 벽에서 들리는 괴기한 소리를 머릿속으로 비교했습니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손톱으로 벽을 긁을 때 나는 소리와 완전히 똑같았거든요.

 

 

너무 놀란 저는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벽을 긁어대는 소리는 그칠 기미가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벽을 긁으며 장난 칠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소리가 지금은 너무나도 소름끼치고 섬뜩했습니다. 

 

겁을 잔뜩 먹은 저는 귀를 양손으로 꽉 틀어막고 벽을 긁는 무언가에게 속삭였습니다.

 

 

  하지마무서워하지마하지마하지마무서워그만해하지마하지마그만해그만해… 뭐 이런 식으로요.

 

 

알아들을 리도 없는데 염불을 외는 것처럼 입 밖으로 작게 소리내어 중얼거리니까 정말로 어느샌가 긁는 소리는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귀를 막은 채로 말하던 것을 멈추고 오감을 귀기울였지만 조용했습니다.

 

한시름 놓은 저는 귀에서 손을 떼었습니다.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고 눈가도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습니다. 

 

이불을 덮은 채로 손으로 얼굴을 닦아내며 A한테 같이 자자고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했습니다. 

 

나는 귀신따윈 무섭지 않다고 평소에 A에게 노래를 불렀거든요.

 

 

 

 쾅쾅쾅쾅쾅쾅

 

 

몸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 잘못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제 눈 앞에 있는 벽을 주먹으로. 아니면 발로 차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헤집었지만 곧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벽을 칠 수 있는 건 사람 뿐이잖아. 

 

실체가 없는 귀신이 이렇게까지 박력있게 벽을 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B와 C가 떠올랐습니다. 

 

그 둘은 장난기가 많아 아이들에게 도마뱀을 던지는 등 짖궃은 장난을 평소에 자주 쳤고, 

 

피해를 입은 애들을 대신해서 몇 대 쥐어박는 저한테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테니 동기도 있음직했습니다.

 

무섭지만 이불을 살짝 들어 문가를 보았습니다. 

 

문 밑에는 노오란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싶은 마음에 무서웠던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 밖으로 튀어나갔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애들이 한 장난이라는 사실에 조금 기뻤습니다. 

 

귀신이 아니라 단순한 장난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방 밖은 깜깜했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B와 C가 지내는 방 문도 닫혀있었고 조용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몰래 방안에 들어가봤지만 둘은 곤히 잠들어 있었구요.

 

 

이상한 소리가 나는 벽 쪽은 계단이 있어서 저희 방과 건넛방은 떨어져있습니다. 

 

그래서 B와 C가 쓰는 방에서 소리를 낼 수 없고 저희 방 벽을 긁거나 치려면 계단 위에 서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몇 초가 채 안되는 그 순간에 둘, 또는 한명이 내가 나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소리 없이 계단에서 뛰어올라와 불을 끄고 문을 닫고 침대 위에서 자는 시늉을 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저는 체면이고 나발이고 잠자던 A를 깨워 억지로 그 애 침대에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안 깨어나는 A를 보고 설마 죽은 거냐면서 징징 울었던 게 기억나네요ㅋㅋㅋㅋ 

 

싫어하는 A를 꽉 잡고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샌 뒤에야 겨우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을 먹으면서 알게 된 건데 간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더라구요. 

 

벽을 치는 소리는 몸에 진동이 올 정도로 크고 길었는데도요…. 

 

 

꿈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꿈은 정말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가위도 아니었구요.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하고 가위라기엔 몸이 너무 가벼웠습니다. 

 

그 뒤로 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일'은' 없었지만 너무 무서웠던 저는 인솔선생님과 한동안 같이 자게되고

 

->A가 혼자 자기 무섭다면서 같이 자게되고->B와 C도 같이 자고 싶다고 하게 되어서 

 

몇 주 정도 1층에서 다같이 한 방에서 시끌시끌 지냈던 기억이 나네요ㅋㅋㅋ

 

 

그 뒤로도 이런 저런 무서운 경험(시험에 떨어진다던가…)을 하긴 했지만 그 때 그 경험이 제일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 소리는 뭐였을까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오유. 적도펭귄



웡 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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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골통한 ( 刻骨痛恨 ) (by 오디) 부모님께서 해주신 이야기 (by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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