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게시물 단축키 : [F2]유머랜덤 [F4]공포랜덤 [F8]전체랜덤 [F9]찐한짤랜덤

실화

장문주의) 논산 훈련소에서 무언가를 본 이야기.sull

title: 잉여킹가지볶음2020.04.15 02:48조회 수 1193댓글 0

    • 글자 크기


(장문주의) 논산 훈련소에서 무언가를 본 이야기.sull

 

 

 

 

 

안녕 웃대형누나들. 

 

초딩 때부터 웃대한 진성 웃창인데 각 잡고 글 써보는 건 정말 처음인 것 같아.

 

 

짤은 리얼리티를 올리기 위해... 어우, 보기만 해도 토 쏠린다. 

 

아무튼 예전에 단편 소설 어딘가에 올린 적 있긴 한데, 그건 여기 올리려던 게 아니고 혼자 써둔 거 복붙한 거라... 

 

거두절미하고 이야기 시작함. 편의상 반말로 할게.

 

------------------------------------------------------------------------------------------------------

 

0.들어가며.

 

 

난 17년 6월 군번이야. 사실 전역한지도 그렇게 오래 안됐지. 이제 한 5개월 정도? 

 

개인 사정이 있어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간 거라 좀 늦게 간 편이었지. 

 

군대를 미루고 미뤄본 형들은 알겠지만, 대학교 4학년 쯤 되면 이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인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로 입대하시면 됩니다~"라고 병무청에서 입영 문자가 날아와. 

 

나는 복수전공 때문에 대학교를 5학년까지 다녔기 때문에 한 번 미뤘지. 

 

그래서 최초에는 21사단으로 배정됐던 훈련소를 논산으로 가게 됐어. 

 

지금 생각해보면 천만다행인 일이지.

 

 

뭐 그래서, 습식 사우나 속을 걷는 것 같은 더운 여름날에 난 생전 가본 적도 없는 논산으로 가게 됐어. 

 

다들 그렇듯이 부모님이랑 밥 먹고, 줄담배 몇 대 태우고, 입영심사대로 향했어. 

 

군필들은 다 알겠지만, 입영심사대는 임시로 훈련병들을 수용하는 곳이고 

 

거기서 결격 사유가 없으면 이제 군생활 튜토리얼인 훈련소 내부로 입소하게 돼. 

 

나는 그 수십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논산 훈련소에서도 정말 후진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26연대로 배정이 됐지. 

 

지금은 좀 나아졌으려나 모르겠다.

 

 

우리 연대는 정말 시설이 구렸어. 

 

아버지도 26연대 나오셨는데, 나중에 수료식 때 겉으로만 한 번 쭉 보면서 "그 때랑 똑같구만..."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생활관에 가끔씩 쥐가 나온다는 말이 돌기도 했고, 세면장에 따뜻한 물은 바랄 수도 없었고, 

 

생활관 바닥은 걸을 때 마다 나무판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지.

 

 

그 특유의 올드한 건물 느낌. 뭔지 알지? 

 

게다가 복도의 형광등도 깜빡거리는 게 보일 정도였고, 몇 십년 묵은 남정네 냄새인지 모를 퀴퀴한 냄새가 여름의 습기에 섞여서 났지. 

 

그리고 벌레는... 뭐, 팅커벨 수준은 없었다만 건물이 낡아서 그런지 불침번을 설 때면 형광등에 빼곡히 달라붙어 있는 모기들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1. 4소대, 그리고 화장실.

 

 

그래도 나름 재미는 있었어. 

 

훈련소 동기 중에는 성격 안 좋은 놈도 없었고, 덥다고 짜증내는 놈도 하나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동기 운은 좋았던 것 같아. 

 

그렇게 동기들이랑 정신교육주간, 화생방주간, 기타 등등 하나씩 클리어를 해나가면서 수료 이후 자대 배치 받기만을 기다릴 무렵이었고, 

 

이틀 걸러 한 번 씩 있는 불침번 근무에도 슬슬 몸이 적응을 해나갈 무렵이었지. 

 

사건의 당일은 내 기억으로는 아마 행군이 있던 주간이었던 것 같아.

 

 

근데 형들은 알 거야. 

 

야간근무 투입되면 내가 자고 있는 건지, 깨있는 건지 모를 몽롱함. 

 

특히나 훈련소 때는 더 그렇지. 

 

게다가 열악한 시설에, 사회물이 덜 빠져 아직 체력이 떨어지는 데다가, 이런 피로누적이 겹쳐서 우리 중대에는 유행처럼 감기가 한 번 싹 돌았어. 

 

더워 뒤지는 와중에도 자발적으로 마스크 쓰고 다니던 애들이 4분의 1은 됐으니까. 

 

개중에서도 심한 애들은 당직부사관 근무 서는 훈련소 조교한테 보고하고 그 날 불침번은 열외하는 경우가 있었지. 

 

있었지, 라기 보다 많았어. 

 

조교도 귀찮은 건지 아량 좋은 조교가 당직 서는 날이면 반 이상이 근무를 안 서는 진풍경도 꽤 자주 있었고. 

 

사고 터지면 귀찮아지니 그랬겠지.

 

 

여기서 불침번 근무 형태에 대해서 한 번 설명해야겠다. 

 

논산 나온 형들은 알 거야. 대강 구조를 설명하자면 이래. 

 

복도 끝에는 훈련소 조교 중에 짬 높은 애들이 당직부사관 근무를 하고 있는 테이블이 있고, 그 맞은 편으로 쭉 걸어가면 밖으로 나가는 문이 나와. 

 

물론 무단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밤에는 문을 걸어잠그지. 

 

그 복도를 쭉 걷다보면, 왼쪽으로 꺾어지는 복도가 하나 더 있는데, 원래는 그쪽까지 모두 생활관이야. 

 

그렇지만 말했듯이, 밤에는 모두 소등을 하기도 하고, 시설 자체가 낙후돼서 불빛은 하나도 없었어.

 

 

'원래는 그 쪽까지 모두 생활관이야'라는 말을 설명을 한 번 해야겠다. 

 

나는 나이가 차서 군대를 가게 됐다고 했잖아. 그래서 나는 징집병이었어. 

 

대개 논산 훈련소는 모집병(예를 들면 취사병, 운전병, 기타 등등..)이 대부분이라 모든 중대의 소대들이 풀 TO를 유지하지. 

 

그런데 우리 중대는 3소대까지 밖에 없었어. 

 

중대장(훈련부사관이라 상사)의 말로는 "이번 기수에는 징집병이 별로 없었어!" 하길래, 다들 납득했지. 

 

훈련병이 뭘 알겠어?

 

 

그러니까 4소대의 4개 분대. 다시 말해, 생활관 네 곳이 비는 셈이지. 

 

그게 아까 말한 복도의 왼쪽으로 꺾어지는 부분, 그러니까 밤에 보면 어두컴컴한 그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었어. 

 

원래대로였으면 생활관이어야 했을 그 곳을 조교들은 남는 물자들을 관리하는 임시 창고로 썼고, 

 

사람 하나 없이 휑한 생활관은 좀 기묘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했어. 

 

그리고 원래 생활관은 두개가 하나로 이어져 있지만, 설계를 잘못한 건지 단독으로 있는 생활관이 하나 있었어. 

 

마침 인원도 없는 터라 조교들은 가끔 거기에 짱박히거나 회의 장소로 쓰기도 했지.

 

 

그리고 그 4소대 생활관과 나머지 소대 생활관의 중간에는 샤워장과 화장실이 있었는데, 

 

특히나 훈련소 때에는 밤중에 화장실 가는 사람들한테 엄청 민감하지. 

 

몇 분 간격으로 체크를 하라고 하질 않나 , 대소변 중 어느 걸 보는지 화장실 앞에 비치해둔 명부에 기록하고 들어가라고 하지 않나. 

 

심지어는 화장실 안에 사람이 있으면 사람이 있다고 표시해주는 등까지 붙어있어. 

 

아무튼 난 그 날 화장실 앞에서 출입 인원을 통제하는 불침번을 새벽 두시부터 네시까지 서게 됐고, 그 날 따라 무척 피곤하긴 했어.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내 왼쪽, 그러니까 어두컴컴한 복도 쪽 불침번들은 그 날 따라 죄다 감기에 걸려서 근무를 열외했지. 

 

그러니까 나 혼자 어둠을 등지고 근무를 서고 있었던 셈이야. 당연히 무서웠지.

 

 

그리고 정말 적으면서도 이건 뻔하다 싶어 빼려고 했는데, 내 눈으로 본 사실이라 그대로 적기로 할게. 

 

내가 근무를 서는 동안, 4번칸의 불이 계속 들어와 있었어. 그리고 난 솔직히 좀 무서웠지. 

 

화장실 앞의 명부를 보는데 아직 안 나온 사람은 없었거든. 

 

혼자서 보러가자니 뭔가 느낌이 쎄하고, 확인 안하자니 '혹시나'하는 일이 있을 것 같았어. 

 

그때 마침 타이밍도 좋게 같은 생활관 동기가 요의가 일어 오줌을 싸러 나오더라. 

 

그래서 난 "승원아, 저기 4번칸에 불 계속 들어와 있는데 사람 아무도 없는 것 같거든? 나랑 같이 한 번 보러 가주라."라고 했고, 

 

걔는 "아, 왜 그래 형...개무섭네..."라고 투덜대면서도 같이 가줬어.

 

그리고 아무도 없었지. 다시 확인해보니 불은 꺼졌더라.

 

 

 

2. "아니? 그런 거 없었는데?"

 

 

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동기가 다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계속 근무를 섰지. 

 

그리고 당직부사관의 감시를 피해 복도 벽에 기대어 반쯤은 자는 둥, 반쯤은 깨있는 둥 하면서 근무 시간을 보냈어. 

 

15분쯤 지났을까?

 

 

끼이익....

 

아까 얘기한 단독형 생활관. 그 문이 열렸어. 

 

난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그 쪽을 돌아봤지. 

 

사실 그 때는 귀신이라든가 이런 것보다, 근무태만이라고 나를 쏘아댈 조교들이 더 무서워서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말하는 게 맞을 거야.

 

 

그리고 돌아보니, 키가 190cm는 가볍게 되어보이는 군인 하나가 당직부사관 테이블의 반대쪽, 그러니까 잠겨있는 쪽문 쪽으로 걸어가더라. 

 

그것도 완전군장 차림새로. 

 

이 때의 난 뭐가 뭔지 몰랐으니, 초소 투입이 완전군장 상태로 하는 건 줄 알았어. 

 

그래서 "아, 저게 초소 근무인가 보다...." 했어. 

 

그러다가 왼쪽으로 꺾어지는 복도를 지날 무렵, 갑자기 그 군인은 사라졌어. 난 내 눈을 의심했지.

 

 

'아니, 쪽문 잠겨있다고 하지 않았나? 저거 탈영병이면 어떻게 되는 거지?'

 

'씨발, 나 영창가는 건가?' 

 

'아니 초소근무자 아닌가? 그럼 밖으로 나가는 열쇠 가지고 있겠지?'

 

 

뭐,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그냥 난 입을 다물기로 했어. 

 

그리고 다음 번 근무자를 깨우고 난 다시 잠이 들었고, 다음 날은 아무 일도 없었지. 

 

그래서 난 혼자 결론을 내렸어. 정신승리였지.

 

 

'그래, 조교들이 새벽까지 자기들끼리 모여서 회의든 마피아든 한 거다. 

 

그러다가 근무 투입할 시간이 돼서 한 명은 바로 간 거고.' 라고.

 

 

그래서 난 확인사살을 위해 우리 분대 분대장 조교한테 물어봤지.

 

 

 "오OO 분대장님? 어제 새벽까지 회의하셨습니까?"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이 문단의 제목에 쓰여있지.

 

 

 

3.쪽창.

 

 

난 친한 몇몇 동기들한테 이 얘기를 했고, 그 중 하나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 자기가 조교한테 들은 이야기라면서.

 

 

조교 중에는 이등병 조교가 있어. 훈련병 떼자마자 조교 하는 애들이지. 

 

약장은 일병을 달고 있지만. 그건 훈련병들이 이등병이라고 놀릴까봐 그런다더라. 

 

우리 소대에도 하나 있었는데, 외질을 닮고 피부는 까무잡잡한, 되게 이국적으로 잘생긴 조교였어. 

 

사회에서 배우 지망생이었다더라.

 

 

아무튼 조교 중의 막내겠지? 

 

안그래도 훈련소 조교는 할 일이 많은데, 그 중에 막내였던지라 그 조교는 새벽까지 잡무를 하는 건 기본이었어. 

 

TO도 지금 생각해보면... 보급계원이었던 것 같아. 군생활 힘들었을 거야. 그 친구.

 

 

그래서 그 날도 새벽까지 일을 하는 와중에, 아까 말했던 4소대 생활관으로 남는 물자를 혼자서 낑낑대며 옮기고 있었대. 

 

그 와중에, 불이 다 꺼진 복도를 걷다가 그 단독 생활관 앞을 걸어갈 때 쯤이었대.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그 생활관을 돌아보니...

 

 

난생 처음 보는 기묘한 얼굴의 사람이 생활관 쪽창으로 그 조교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거야. 

 

그 조교는 놀라서 다리가 풀려 넘어지고, 그러자 그 귀신(?)은 재미있다는 듯이 씨익 미소 지으며 생활관 침상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녔대.

 

동기들끼리 이 이야기를 하면서 대다수는 "에이~ 그런 게 어딨냐 ㅋㅋㅋㅋ" 하는 반응을 보였고, 

 

나도 '훈련병 놀리기'의 일환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 다음에 동기가 했던 말 중에 내 머리를 강하게 때린 건...

 

 

"아, 근데 키가 엄청 컸대. 2미터는 돼보였댄다."

 

 

 

4. 공병학교.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훈련소에는 일일이 저런 '루머의 루머의 루머' 같은 걸 믿기에는 너무나도 정신없지. 

 

그래서 나도 한동안은 저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어.

 

 

그리고 수료식 날도 지나고, 우리 모두는 자대 배치를 받았지. 

 

이 때, 특기가 없던 우리 징집병 대다수는 전라도 장성에 있는 공병학교로 가게 됐어. 

 

그러니까 공병 특기를 일괄적으로 부여한 셈이지. 참고로 난 폭파였다.

 

 

공병가면 망한다고는 하지만, 후반기교육대인 공병학교로 가서 담배를 피울 수 있고 PX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 행복해 죽을 것 같았지.

 

그러면서 훈련소 다른 연대에서 온 후반기교육 동기들끼리 안면도 트고, 삼삼오오 같이 모여서 담배도 태우러 갔지. 

 

그 중 나랑 친한 동생 하나가 있었어. 

 

황보씨를 가진 동생이었는데, 툭 튀어나온 턱이 '포레스트 검프'의 버바처럼 인상적인 애였어.

 

아무튼 그 날도 교육을 받고 와서 남는 개인정비 시간 동안 쉬다가, 같이 담배를 피우러 갔는데 얘가 뜬금없이 그러는 거야.

 

 

"형. 형 26연대 나왔댔지?" 

 

 

사실 훈련병들끼리 서로가 몇 연대 출신인지 묻는 건 새로울 것도 없어서 그러려니 했어. 

 

그리고 뭐 아무생각 없이 그랬다고 대답했지.

 

그리고 얘가 담담하게, 진짜 너무도 담담하게 그러는 거야.

 

 

"거기 자살자 많아서 4소대 아예 편성 안하는 중대 있잖아."라고.

 

 

난 아무 말도 못했어.

 

 

 

5.마치며.

 

 

그래서 내가 본 건 뭐였을까? 자살한 귀신? 아니면 피로로 인한 환상? 

 

뭐가 됐든 인간이 아니라는 건 분명해보여. 

 

인간이라면 그 시간에 아무런 소음도 없이 완전군장 차림에 자물쇠를 끊고 쪽문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 하니까.

 

아니면, 아직 거기서 안나갔었던 걸지도 모르지.

 

 

---------------------------------------------------------------------------------------------------------

 

 

긴 이야기 읽어줘서 고마워, 형들!

 

후임들이 야간근무가서 무서운 이야기 해달라고 조를 때마다 풀어줬던 썰인데, 막상 글로 옮겨보려니까 힘드네. 

 

재밌게 읽었다면 고맙고, 나중에 다른 썰들도 풀 날이 있겠지, 뭐.

 

 

 

출처:웃대...  조르조아감벤



맛있당

    • 글자 크기
경계근무 (by 가지볶음) "거 가지 마라." (by 가지볶음)
댓글 0

댓글 달기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