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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Flower Dance

금강촹퐈2015.07.03 15:30조회 수 942추천 수 1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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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어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 흰색 가운의 50대 남성은 자신 앞의 다크서클은 이미 볼까지 내려온 30대 남성에게 말을 건넨다.



"할 수 있는 치료는 모두 끝났습니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오셔서 오셔서 상담을 받으시는게 회복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것이 병원 진료실을 나오면서 의사가 남긴 말. 나는 극심한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어째서였을까, 생각하는 것 조차 귀찮은걸까? 아 그래, 그녀가 날 떠나간 그 날 부터였을까?



그래. 맞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날 역시 서로 웃고 떠들며 하루를 마무리 하려던 중...



집에 돌아와, 그 날 입었던 정장을 입고, 그 날 매었던 넥타이를 매고, 그 날 신었던 구두를 신었다. 그녀를 보러가기 위함에.



그녀와 자주 함께 놀던 벚꽃이 흐드러지는 가로수 길. 그 앞 사거리엔 차도 많이 없어, 우리의 스테이지가 되어 주었던 그 길.



낡은 꽃가게를 발견한다. 70대의 할아버지. 그 노인의 머리 위로 보이는 붉은 핏빛의 장미. 아 그래, 내가 고백한 날에도 저 꽃을 주었지. 그녀는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얼굴로 내 품에 파고들었었다.



"사장님, 저 꽃 파시는 건가요?"



"꽃? 이거 말하는겨? 이거 생화가 아니구 조화여 조화." 노인은 졸린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꽃은 꽃이죠." 나는 멋적게 웃으며 대답한다.



"근데 이거, 우리 가게 장식이라 팔면 마누라헌티 혼나." 노인은 손사래쳤다.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생전에 좋아하던 꽃이라서요. 사례하겠습니다." 나는 노인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간절히 부탁한다.



"어이구 총각, 알겠네 알겠어. 어서 일어나! 누가 보면 어쩌려고!" 노인이 나를 일으켜 세워 준다.



조금은 비싼 가격일지 몰라도, 그녀를 위한 선물에 후회는 없다.



해는 이미 떨어져 어두워진 거리, 가로수길을 향해 걷고,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는 그녀와 함께했던 기억들. 한 발짝 걸음을 옮기며 떠오른다.



한 발짝. 놓고 간 물건을 찾으러 간, 연습실 안, 춤을 추고 있던 그녀의 첫 모습.



두 발짝. 그 이후도 연습하던 그녀를 바라보는 나. 마침내 다가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건네던 모습.



세 발짝. 함께 웃고, 함께 먹고, 함께 자고 일어나던 그녀와 나.



네 발짝, 다섯 발짝...... 어느새 가로수 길에 다다랐고. 남은 기억도 마침내 마지막 그녀의 모습.



그 날도. 그 날도 붉은 장미꽃을 건냈었지. 벚꽃이 내리는 여기에서 발레를 하며 웃던 네 얼굴. 그 모습을 보며 함박 웃음을 짓던 나.



떠올리기 싫어도, 비집고 틀어나와 나를 괴롭히는 마지막 모습.



어째서였을까. 하필이면 그 날, 그 시간, 그 곳에 과속하는 음주운전자가 지나간 것은.



그녀는 주떼(발레의 점프 동작)를 하듯 공중으로 튀어 올랐고, 춤을 추듯 공중에서 뒤틀렸다.



눈 앞은 현실로 다시 돌아왔다. 그 날과 같이 벚꽃은 만개하고, 아름답게 휘날렸다.



갑작스러운, 비현실적인 일이였다. 이게 무슨 일일까, 꿈인걸까. 볼을 꼬집어봐도 변함 없는 앞의 모습. 모든 것이 새하얗게 변했다. 명암으로 알아 볼 수 있지만, 믿을 수 없는 모습.



갑작스레 가로수길 중앙, 내 정면에 서있는 저 실루엣. 점차 다가오는 것 같다. 천천히 그리운 연인을 찾았다는 듯 다가오는 그녀.



어째서일까, 나는 그녀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래, 저 길고 찰랑이는 머리, 마지막으로 입었던 원피스.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마침내 내게 도달했고, 두 팔로 나의 머리를 감싸 안아주었다. 그와 함께 떨어지는 눈물.



"기억하니." 그녀는 묻는다.



무엇일까. 대답하기 전에 내 눈앞은 암전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도중, 영화 필름처럼 스쳐가는 그녀와 나의 모습들.



어째서일까, 나는 그녀와 싸우고 있었다. 울음을 터트린 그녀였지만, 화를 낸채 떠나버리는 나의 모습.



그녀는 내게서 떨어지며 손짓한다. "아니야..." 한 발짝 나아간다.



또 다시 나타나는 모습. 무슨 일이였을까, 나는 그녀를 때리고 있었다. 코피를 흘리며 비는 그녀. 그럼에도 손찌검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보였던 아름다운 미소를 그리며 또 손짓한다. "그럴리가...그럴리가...아니야..." 충격으로 얼어붙은 표정과 함께 한 발짝 나아간다.



이번엔 소리까지 들리는 것이다. 그녀가 바람을 피웠다고 의심하고 윽박지르는 나. 그녀는 울며 해명하고, 모든 증거를 보인다. 하지만, 이미 사실 확인은 눈에 뵈지 않던 나는 그녀를 다시 구석에서 벌벌 떠는 토끼, 공포에 떠는 어린아이로 만들기 시작했다.



나를 유혹하는 듯, 장난치는 듯 한 바퀴 돌며 나를 보채는 그녀. "아니야 그랬을리 없어! 아니야...아니야...! 제발 믿어줘!" 충격에 빠진 얼굴과 누군가를 잡으려는 듯 손을 뻗어 허공에 허우적 거리는 나는, 또 다시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간다.



눈 앞에 나타난 나와 그녀의, 끔찍하고도 추악한 모습. 아니 정확히는 '나'의 모습. 이번엔 마지막 그녀와 있었던 모습이다.

나는 그녀에게 차가운 눈빛을 하며, 핏빛 장미꽃다발을 건넨다. 웃는 것이 아니였다.

그녀는 오열하고, 눈물을 쏟고, 필사적으로 내게 매달렸다.

나는 어째서였을까, 그녀에게 질린 것이였을까, 그녀에게 폭언을 퍼붇고, 밀쳐낸다.



"그만둬..." 나는 저 암전의 필름 속 '나'를 향해 애원한다.



'나'는 마침내 화가 머리 끝까지 난거 같았다. 품속에 파고드는 그녀를 거세게, 온 힘을 다해 밀쳐버렸다.



밀려나가는 그녀. 다다른 곳은 가로수 길 끝의 사거리. 빠르게 다가오는 헤드라이트.



그리고 그녀가 공중에서 춤을 추는, 떨어지는 것이 눈물인지 피인지 알 수 없는 슬픈 춤사위.



"그랬던거야...? 나는....?" 



나를 따라 오라며 손짓하던 그녀의 실루엣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그곳에 있던건, 사거리 홀로 서있는 나의 모습.



그리고 빠르게 다가오는, 마치 데자뷰 같은, 나를 집어삼키려는 단죄의 불빛.



이 상황은 우연일까. 나 역시 그녀를 따라가는.



"미안해."



내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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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비보잉을 하는 소년의 모습처럼 공중으로 튀어오른다. 그리고 바닥을 구른다. 이미 사지는 엉뚱한 방향으로 꺾여있다.



차가 다가오던 바람에 휘날린 벚꽃잎은, 그의 몸과 붉은 장미가 물들인듯한 액체의 웅덩이 그 위로

내려앉았다.



이 것은 의처라고 해야할까, 순수한 그녀를 매도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끝내 죽음에 이르게했던. 하지만 기억상실증과 스스로의 기억날조로 자신의 죄를 덮으려한 추악하고 더러운 나. '내'가 신벌-천벌에 의해 마침내 심판 받은 이야기.



그리고 희미해지는 눈빛 속 마지막 그녀의 입가.



"이제 용서할게."



그리고 무저갱의 악마처럼 기괴하게 웃는 그녀.



출처 똥싸면서만든닉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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