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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속 박노인의 의심

굴요긔2017.04.14 15:23조회 수 69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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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부자 박노인이 1조 원의 상금을 걸었다.
 
[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소설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자에게 1조 원을 주겠다. ]
 
사람들은 1조 원이라는 액수에 경악했고, 뜬금없는 조건에 의아했다. 
박노인은 진지하게 말했다.
 
[ 나는 자꾸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한낱 소설 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어느 사이트의 게시판에, 어떤 닉네임을 가진 놈이 제 맘대로 써 재끼는 소설 말이야! ]
 
사람들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 어떤 식으로든 이 세상이 소설 속이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면, 1조 원을 주겠어. ]
 
1조 원의 힘은 컸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증명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어떤 이는, 다짜고짜 박노인의 뺨을 때렸다!
 
' 짝! '
[ 음...! ]
" 아프시죠? 고통! 그것이야말로 이 세계가 소설이 아닌 현실이라는 증명입니다! "
 
박노인은 고개 저어 그를 돌려보냈다.
 
[ 너무 무식한 방법이야! 마취를 통해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그땐 이 세상이 가짜인가? ]
 
어떤 이는, 박노인의 손녀딸을 데려와서 고문했다.
 
" 끼악-! 할아버지! "
[ ! ]
" 화가 나시죠? 가슴이 아프시죠? 걱정되고, 안쓰럽고, 제가 밉죠? 그런 감정들!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 세상이 소설이 아니란 증거입니다! "
 
박노인은 고개 저어 그를 돌려보냈다.
 
[ 소설이 추구하는 게 바로 그런 감정들이야. 공포심, 분노, 슬픔, 사랑, 탐구... 이 상황이 소설이 아니라는 증명이 될 순 없어. ]
 
어떤 이는, 박노인의 앞에서 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 저는 첩보원 김남우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 막 핵전쟁을 막고 왔습니다. 제가 죽은 줄 알고, 슬퍼하고 있던 연인에게 돌아가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러니 만약 이 세상이 소설 속이라면, 제가 주인공일 겁니다. 제가 만약 지금 죽을 수 있고, 다신 부활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현실이 맞습니다. "
' 탕! '
[ 저런...! ]
 
박노인은 고개 저어 그의 시신을 수습했다.
 
[ 주인공이 죽는 소설은 정말로 많다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난 내가 이 소설의 주인공 같거든! ]
 
어떤 이는, 박노인에게 손가락을 들어 퀴즈를 냈다.
 
" 수학적으로, 1 더하기 1이 뭐죠? "
[ 음? 당연히 2가 아닌가? ]
" 예 그렇습니다. 저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수천 명을 붙잡고 물어보았습니다. 모두가 2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1 더하기 1이 3인 곳이 없었습니다. 4인 곳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 세계가 하나의 '물리법칙'하에 완전성을 띄고 있는 완벽한 현실이라는 증명입니다. "
[ 흠... ]
 
박노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고개 저어 그를 돌려보냈다.
 
[ 1 더하기 1이 정말로 2일까? 사실은, 1 더하기 1은 3인 게 아닐까? 4인 게 아닐까? 우리가 1 더하기 1이 당연히 2라고 깨닫게 한 것이, 이 소설을 쓴 누군가의 거짓말이라면? 사과 하나와 사과 하나를 합하면, 사과가 3개가 되는 것이 진짜 '현실'이라면? 우리 세상의 물리법칙이, 그 근간을 이루는 상식이, 모두 다 누군가의 소설 속 설정놀음이라면? 그래도 과연 이 세계가 현실일까? ]
 
그 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증명에 도전했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럴 수록 박노인은 의심을 늪에 빠져들었다.
 
[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추위를 피하려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것이...정말 '나'인가? 내 육체는 내 것인가? 내 생각은 내 것인가? 내 미래도 내 것인가? ]
 
그런 박노인에게, 어떤 이가 말했다.
 
" 이 세계가 소설 속이 아닌 현실인 이유가 바로 그 의심입니다. "
[ ? ]
"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지어낸 가짜라고 칩시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진짜가 아닙니까? "
[ 그게 뭐지?! ]
 
" 이 세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하는 마음'. 적어도 그것은 분명히 있는 거 아닙니까? "
[ 의심하는 마음... 데카르트 말인가? ]
 
박노인은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끝내, 그 고민마저도 의심했다.
 
[ 내가 지금 이 의심하는 마음까지도 누군가의 소설 속 설정이라고 의심한다면? ]
" 그럼 그 설정을 의심하는 두 번째 의심은 진짜 의심이겠죠. "
[ 거기까지도 어떤 놈의 소설 속 설정이라고 의심한다면? ]
" 그럼 그 세 번째 의심은 진짜 의심이지요. "
[ ... ]
 
박노인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럼 결국, 끝없이 의심을 반복한다면, 누구도 내 의심하는 마음이 가짜라는 건 증명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때부터 박노인은 의심했다. 박노인의 의심은 끝이 없었고, 그 끝이 없는 의심은 이 소설을 쓴 나에게도 의심을 자아냈다.
이 박노인의 의심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박노인이 존재한다고 쳐야 하나?
 
[ 그럼, 바꿔서 내가 한번 물어보자. ]
 
?? 
 
[ 여기, 지금 내 손에는 소설가가 주인공인 소설책이 있어. 이 소설 속에서 소설가가 쓴 소설은 확실히 소설이고, 내 손에 들린 이 책도 소설이야. 그리고 이 책을 들고 있는 나도 소설이라면... 과연, 나 까지가 끝이야? ]
 
" ... "
 
나는 의심을 시작했다. 박노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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