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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설화

디지털 고려장

굴요긔2017.04.14 15:25조회 수 94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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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 현실 가족' 도입 12년 차! 아직까지도 '디지털 고려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데요-. . . ]
 
" 흠... "
 
TV 뉴스를 보던 김남우의 표정이 조금 불편해졌다.
옆에서 그의 아내 임여우가 말을 걸었다.
 
" 올해는 아버님 업데이트하러 가봐야 하지 않아? 벌써 4년째 안 했잖아. "
 
김남우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 내년에 하자고... 돈도 없는데. "
" 작년에도 그렇게 말해놓고- "
" 내년에 내년에. 올해는 진주 대학도 있고, 돈 들어갈 때가 너무 많아. "
" ... "
 
임여우는 찜찜한 얼굴이었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시아버지 문제에는 남편이 예민했기에, 말다툼하고 싶지 않았다.
 
[ 정부에서는 뇌 스캔 비용을 일부 지원해주는 방안을-. . .]
 
" ... "
 
김남우는 문득 스마트폰을 들어, 오랜만에 '가상 세계'로 접속했다.
영상 속에는 아버지의 행복한 모습이 있었다.
아들, 며느리, 손녀와 함께 고깃집에서 웃으며 외식을 하는 모습이 말이다.
 
" ...좋아 보이시네. "
 
고개를 끄덕이며 접속을 끊는 김남우. 옆에서 임여우가 씁쓸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
.
.
 
지구의 인류가 포화상태에 도달했을 때, 정부는 데이터상의 '가상 지구'로의 이주를 연구했다.
당연한 반발, 누구도 가상 지구 따위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한가지,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미는 정책은 있었다.
 
비노동 인구인 노인들을, 요양원이나 노인정이 아닌 가상 지구로 이주하는 정책이었다.
사실, 노인 인구의 부양 문제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골칫거리였다. 이미 많은 노인이 가족과 떨어져 독거생활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에게 버림받은 노인들도 많았다.
어차피 자식들과 떨어져 요양원 등에서 혼자 지낼 노인들이라면, 차라리 가상 현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게 더 낫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었다.
 
노인이 현실에서의 육체를 버리고, 가상 세계로 이주하게 되면 생물학적 유지비가 사라지게 된다.
또한, 건강상의 문제로 몸이 불편하던 노인들도, 가상 세계에서는 건강한 신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온 가족의 뇌 스캔을 통하여 완벽한 가족 아바타가 함께하기에, 노인들에게는 실제 현실과의 차이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나았다. 함께 살지 못하던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었으니까.
 
가상 세계 속 노인들은 그곳이 가상 세계라는 자각조차 못 하였기에, 정부에서 내건 광고 멘트는 이러했다.
 
[ 깜빡 자고 일어났더니, 사랑하는 자식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꿈을 이루었습니다. ]
 
물론, 어마어마한 반발에 부딪혔다.
사실상 부모 살인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며, '디지털 고려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또 자식들의 설득으로, 가상 현실 이주는 조금씩 이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비인륜적인 행위라 욕했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의 아바타가 부모님과 함께 사는 모습을 보며 만족했다. 그들은 묻곤 했다.
 
" 당장 1년에 두 번도 안 찾아가는 것들이, 우릴 욕 할 자격이 있나?! "
" ... "
 
점차, 여러 가지 메리트가 밝혀졌다.
부모님의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을 어디서든 접속하여 볼 수 있다는 점. 부양비의 완전 삭감. 어차피 자신의 뇌를 스캔한 아바타이기에, 가끔은 부모님과 싸우기도 하는 완벽한 현실성.
거기다 정부에서 각종 혜택까지 밀어주니, 점점 이주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단, 하나의 단점이 있었다.
 
가상 세계 속 가족들의 아바타가 '갱신'이 필요하단 점이었다.
만약, 노인의 손녀가 고등학생일 때 뇌 스캔을 했다면, 가상 세계 속에서도 영원히 손녀는 고등학생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현실 속 가족과 언제나 똑같은 아바타이기에 거부감없이 이주하는 것이지, 제멋대로 현실과 다르게 변화하는 인공지능 따위였다면 아무도 이주하지 않았다.
 
이주 노인의 가족들은 보통 1년에 한 번씩 뇌 스캔을 통해 가상 세계 속 아바타를 업데이트했다.
한데, 뇌 스캔의 비용이 너무 큰 게 문제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첫 1회만을 무료로 지원해주었고, 나머지 갱신은 가족들의 부담이었다.
그러자 초기에 비해, 2년, 3년, 뇌 스캔을 미루는 가족들이 점점 생겨났다.
물론,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노인들은 가족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마치, 만화 캐릭터 짱구가 영원히 유치원생인 것을 그 세상에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다만, '효'의 측면에서는 논란이 있었다.
 
" 자기 부모님을 가상 세계로 보내놓고는, 갱신도 안 해줘? 부모님을 버린 거랑 무슨 차이야 그게?! "
" ...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갱신을 늦추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동영상으로 부모님의 모습을 살피던 모습도 뜸해만 갔다.
참 신기하게도 똑같았다. 현실에서 부모님을 찾아뵙지 않던, 신경 쓰지 않던 그 모습들이, 가상 현실에 모셔두고도 똑같이 나타난 것이다.
혹자는 이 서비스를 한 마디로 표현했다.
             
" 마음속 죄책감에, 할 만큼 했다는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 "
 
.
.
.
 
" 아빠~!  "
 
미술학원에서 나온 김진주가 김남우의 차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김진주가 올라타고, 출발하는 자동차.
김남우는 가방을 뒤적이는 딸을 힐끔 보며 말했다.
 
" 저녁 먹고 들어갈까? "
" 아 진짜? 아빠 나 육회! 육회! "
" 육회? 흠.. 그래, 엄마한테 전화해 놔. "
 
김진주는 룰루랄라 스마트폰으로 톡을 보냈다. 그사이 묻는 김남우.
 
" 오늘 왜 일찍 마쳤다고? "
" 어~ 선생님이 '뇌 스캔' 하셔서 하루 쉬신대~ "
" 그래? 선생님 부모님도 이주 하셨나 보네? "
" 엉엉. "
 
문자를 다 보낸 김진주,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 이번에 정부에서 할인해준다던데? 우리는 안 해? "
" ...글쎄. "
" 할아버지 아직도 날 중학생인 줄 알잖아! 나 작년에 수상했던 일도 할아버지 보시면 좋을 텐데. "
" ... "
 
김남우는 약간 불편한 얼굴이 되었다가, 
 
" 아빠는 머리 아파서 뇌 스캔이 별로... 너 대학교 입학하면 그때 하자. "
" 음... " 
 
김진주는 김남우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 아빠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미워? "
" ... "
" 그래서 가상 지구로 보내버린 거야? "
" ...아니야. 할아버지 건강도 안 좋으시고, 이제 남은 삶은 편하게 지내시라고 보내드렸어. 거기서 더 행복하실 거야. "
" 흐음... "
 
김진주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말이 없었다.
김남우의 표정이 조금은 굳어있었다.
 
.
.
.
 
" 너~무 맛있다! "
 
입 안에서 녹는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육회를 먹는 김진주. 그 과장된 애교에 김남우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조명 밝은 육회 집. 손님이 몇 없어 불안했지만, 다행히 맛은 괜찮았다.
 
" 누구 닮아서 그렇게 날 것을 좋아하냐? "
" 아빠 닮았지 뭐! "
 
헤헤거리며 육회를 입에 물고 음미하던 김진주는,
 
" 아니면, 할아버지 닮았나? "
" 흠... "
 
김남우도 육회를 집으며 말했다.
 
" 하긴, 좋아하셨지.. 술안주로 딱이라고. "
" ... "
 
육회를 우물거리는 김남우. 테이블에 술은 없었다. 알콜중독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었다. 
3년 전까지는 말이다.
승진하면서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나 혐오하던 술을 마신다는 것에 엄청난 거부감이 있었지만, 피는 못 속인다든가? 술이 너무나 잘 맞았다.
 
김진주는 가만히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진지하게 말했다.
 
" 아빠. 올해는 할아버지... 갱신하자. 아빠 술 먹는 것 할아버지한테 들킬까 봐 그래? "
" ... "
" 괜찮아. 이해해주실 거야.. 언제까지 4년 전의 우리와 살게 놔둘 순 없잖아? "
" ... "
 
김남우는 대답 없이, 얼굴을 굳혔다.
불편한 옛 기억이 떠올랐다.
 
- - - - -
 
[ 그러니까 이주하시라고요! ]
[ 이 불효막심한 놈! 차라리 아비를 죽여라! 가상 현실은 개뿔, 그게 아비를 죽이는 짓이지! ]
[ 아니라니까 몇 번을 말씀드려요?! 아버지한테도 그게 좋다고요! 아버지 건강 상태로 지금 몇 년이나 더 살 것 같아요?! 예?! ]
[ 차라리 여기서 죽으면 죽었지, 그런 데는 안 가! ]
 
[ 제가 힘들어서 그래요! 제가!! 예?! 아버지 맨날 술 먹는 거!! 술 먹고 난리 피우시는 거!! 제가 그 꼬락서니 보는 게 너무 힘들다고요 좀!! ]
[ ... ]
[ 제가 왜 아버지랑 같이 안 사는 줄 알아요? 창피해서 그래요! 여우한테도 창피하고, 진주한테도 창피하고! 아버진 안 창피해요?! 그렇게 매일 같이 술만 먹는 게, 예?! 아버지 때문에 돌아가신 어머니한테 창피하지도 않냐고요!! ]
[ ... ]
 
[ 그러니까... 이주하세요. 이제 더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제가 못 챙겨드려요. 더는...못 해요. 안 해요. ]
[ ... ]
 
- - - - -
 
" ... "
 
김진주는 뭐라고 확답을 하지 못하는 김남우에게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 아빠... 사람들이 디지털 고려장이라고 욕할 때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어. 몸도 불편하신 할아버지, 좋은 곳에서 온 가족과 함께 건강하게 오래오래 지내실 수 있으니까 좋은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이러면 아니야.. 나는 내가 언제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무엇을 좋아하게 되고 무엇을 하게 되고, 우리 가족들이 어디를 여행하고... 이런 거 다 할아버지랑 '함께' 하고 싶어.. 응? "
" ... "
 
김남우는 끝내, 확답을 하지 않았다.
 
.
.
.
 
주말의 이른 아침. 임여우와 김진주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뉴스를 보고 대화를 하는 모녀.
 
" 뇌 스캔 할인 기간 일주일밖에 안 남았네. "
" 아빠는 아직도 싫대? "
" 그런가 보다. "
" 에이.. "
 
김진주는 생각난 김에,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할아버지에게 접속했다.
힐끔 보며 묻는 임여우.
 
" 일어나셨어? "
" 어~ 밥 먹고 계시네. "
 
화면 속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식사 중이었다. 4년 젊은 임여우, 김남우, 김진주와 함께.
 
" 우리도 밥 먹자. 아빠 깨워라. "
 
임여우가 주방으로 향하고, 김진주가 안방으로 향했다.
 
.
.
.
 
북엇국이 차려진 3인 가족의 아침 식탁.
김남우가 숙취에 괴로운 얼굴로 북엇국을 한 숟갈 떠먹었다.
 
" 으흠음... "
" 그러게 술 좀 작작 마시지 그랬어! "
 
작게 흘기는 임여우의 말에, 눈두덩을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는 김남우.
 
" 아~ 사장님이 안 가니까 어쩔 수가 없었어.. "
" 으이구. "
 
그때, 김진주가 돌발적으로 말했다!
 
" 아빠! 뇌 스캔 할인 기간 일주일 남았대! "
" ? "
" 그 안에 갱신하러 가자~! "
" 으흐음... "
 
이번에도 대답을 회피하는 김남우의 모습에, 김진주가 뾰로통하게 말했다.
 
" 아~ 아빠! 아빠 나중에 늙어서 이주했을 때, 내가 뇌 스캔 갱신 안 해주면 좋겠어?! "
" 뭐?? "
 
딸을 돌아보는 김남우의 표정이 멍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였다.
가상 세계로의 이주. 자신도 늙었을 때, 아버지처럼 그곳에 이주하게 된다고?
 
" ... "
 
거부감이 들었다. 싫었고, 서운했다. 
동시에, 자신의 감정이 혐오스러웠다. 아버지를 강제로 떠밀다시피 이주시켜놓고, 자신은 싫다? 우스운 얘기다.
 
하지만, 자신은 아버지와 달랐다. 알콜중독자도 아니고, 늙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막연하지만 그랬다.
 
" 아빠? "
" 아... "
 
아니다.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이렇게 숙취에 절어서 괴로워하고 있지 않은가? 미래를 어떻게 장담하는가? 
자신도 늙으면 아버지처럼 가상 세계로 이주해야 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지금 딸의 표정이 그랬다.
너무 자연스러웠고, 당연했다. 전혀 나쁜 말을 한 것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하긴, 아주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가 가상 세계에 계신 걸 봐왔으니, 딸에게는 당연한 문화일지도 모른다. 
 
씁쓸했다. 그 옛날 고려장 설화의 지게 이야기와 다를 게 없었다.
 
" ...내년에 너 대학교 가고 나서. 그때 하자. "
" 아이~ 아빠아~! "
 
김남우는 일부러 북엇국을 들이키며 대화를 중단했다. 
새삼,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보느라 머리가 복잡했다.
 
.
.
.
 
화장실에 홀로 앉은 김남우가 스마트폰으로 아버지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 ... "
 
영상 속 아버지는 웃고 있었지만, 김남우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자신의 미래도 어쩌면, 이 손바닥만 한 영상 속이라 생각하니 웃을 수 없었다.
 
괜히 아버지를 보냈을까? 너무 섣부른 행동이었을까? 내 개인의 이기심이었을까?
 
김남우는 화면 속 아버지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 아버지... "
 
.
.
.
 
저녁을 먹기 전. 김진주가 황급히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 아빠! 이거 봐봐! "
" ? "
 
김남우는 김진주가 들이민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그 속에는 가족들과 외식 중인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묻는 듯한 김남우의 얼굴에, 김진주가 소리쳤다.
 
" 아이~, 여기 테이블을 봐봐! 이상하지 않아? "
" ? "
" 아이! 육회 집인데 술이 없잖아 술이! 할아버지 술 끊었나 봐! "
" 뭐?? "
 
놀라 커진 김남우의 눈이 영상으로 향했다. 확실히 술이 없었다!
 
" 그럴 리가... 그럴 양반이 아닌데? "
" 아니야, 생각해보니까 나 최근에 할아버지 술 먹는 모습 한 번도 못 봤어! 진짜 끊었나 봐! "
" ... "
 
김남우의 눈이 흔들렸다. 하루라도 술 없인 못 살던 아버지가 술을 끊었다고?
 
" ...아니. 술을 끊었을 리가 없어. 저 가게에 술을 안 파나 보지. "
" 뭐어? 아니라니까~! "
" 모르겠다.. "
 
김남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의 기준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
.
 
" ... "
 
김남우의 사무실. 모니터 한쪽에 띄워둔 영상을 보는 김남우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김남우는 어제부터 온종일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한데, 아버지가 술을 먹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죽고 못 살던 술을 한 모금도 하지 않고 있었다.
 
왜? 김남우의 마음은 의문으로 가득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끊지 못했던 알콜 중독이다. 도대체 어떻게 끊었단 말인가?
 
김남우는 묻고 싶었다. 왜 술을 끊었냐고. 왜 이제 와서야 술을 끊었냐고!
그러나 물을 수 없었다. 가상 세계의 아버지와 만날 방법이 없었다. 되돌릴 수 없었다.
 
" 하아... "
 
조금, 후회됐다. 
자신은 아버지를 왜 그리도 급하게 이주시켰을까? 
아버지는 영원히 술을 끊지 못할 거라고, 알콜중독 아버지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김남우의 얼굴에 불편함이 스쳤다. 
오늘은, 술을 마셔야 할 것만 같았다.
 
.
.
.
 
" 나 왔어어~~! "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김남우는 이미 만취 상태였다.
 
" 윽! 술 냄새! "
" 우리 딸~! "
 
김남우는 딸을 안았고, 김진주는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 아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어~! "
" 어이구 예쁜 우리 딸~! "
" 아이, 술 냄새 나! "
 
김진주를 억지로 안고서 푸념하던 김남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아빠 보내지 마라.. "
" 뭐? "
" 푸흐.. "
" 뭐를? "
 
김진주는 김남우의 품에서 벗어나 의아하게 물었다.
가만히 딸을 바라보던 김남우-,
 
" 아빠... 가기 싫다. 아빠가 늙어도, 가상 지구로 보내지 마.. 아빠 가기 싫어...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영영 떨어지기 싫어... "
" ... "
 
김남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진주는 말없이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 걱정하지 마 아빠. 나는 꼭 1년에 한 번씩 갱신해줄 거야. "
" !! "
 
김남우의 두 눈이 흔들렸다!
김진주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 내 아바타는 항상 아빠랑 함께 늙어갈 거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
" ... "
 
너무 당연한 딸의 목소리에 김남우는 할 말을 잃었다.
 
.
.
.
 
불이 꺼진 방 안. 김남우가 허탈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도 그랬을까? 이주를 권했을 때 아버지의 기분이 이랬을까?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며 반대했던 그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 ... "
 
그런데, 아버지는 어떻게 결심했을까? 그렇게나 싫어하다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이주한다고 했을까?
 
혹시 그 이유가 체념일까-, 가슴이 아파지는 김남우였다.
 
.
.
.
 
" 아빠! 오늘이 마지막 할인! 내일부터는 정가 다 내야 돼! "
" ... "
 
김남우는 딸의 얼굴을 보았다. 고등학생으로 잘 자라서 똘똘해진 딸.. 아버지에게도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 내년에. 너 대학 입학하고 나면 하자. "
" 에이 참! "
 
김남우는 확실하게 거부했다. 김진주도 입술을 삐죽일 뿐, 더는 권하지 않았다.
 
" 흥! 나도 나중에 아빠 갱신 잘 안 해줄 거야! "
" 하하.. "
 
삐져서 가버리는 딸을 보며, 김남우는 쓴웃음을 흘렸다.
자신도 왜 뇌 스캔을 거부하고 싶은지는 잘 몰랐다.
아마, 술을 증오하는 4년 전의 자신을 아버지 곁에 두고 싶어서가 아닐까? 지금처럼 술을 즐기는 자신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김남우는 문득, 스마트폰을 꺼내어 아버지의 일상에 접속했다.
영상 속 아버지는 가족들과 함께 마트에서 쇼핑 중이었다.
주류 코너를 무심히 지나가는 가족들.
 
" ... "
 
김남우는 어쩌면, 아버지가 술을 끊은 건 저렇게 가족들과 함께 살아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술을 끊으라고 닦달하며 원망만 했지, 혼자 사는 아버지를 제대로 찾아뵙지도 않았었다.
과연 자신은 아버지를 정말로 원망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원망하고 싶었던 걸까?
 
" 아버지... "
 
전해지지 않을 김남우의 목소리가 스마트폰 속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 끝까지 반대하지 그러셨어요... "
 
.
.
.
 
 
김남우는 꿈을 꾸었다.
아버지를 설득하던 그 날의 꿈을 꾸었다.
 
[ 이주하세요. 이제 더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제가 못 챙겨드려요. 더는...못 해요. 안 해요. ]
[ ...싫다니까! ]
 
 
[ 아버지... 정말로 더는 아버지를 못 챙겨드려요. 아버지 저... 암이에요. ]
[ !! ]
 
.
.
.
.
.
.
 
[ '가상 현실 가족' 도입 13년 차! 아직까지도 '디지털 고려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데요-. . . ]
 
" 흠... "
 
TV 뉴스를 보던 김남우의 표정이 조금 불편해졌다.
옆에서 그의 아내 임여우가 말을 걸었다.
 
" 올해는 아버님 업데이트하러 가봐야 하지 않아? 벌써 5년째 안 했잖아. "
 
김남우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 내년에 하자고... 돈도 없는데. "
" 2년 전에도 그렇게 말해놓고- "
" 내년에 내년에. 올해는 진주 대학도 있고, 돈 들어갈 때가 너무 많아. "
" ... "
 
김남우는 문득 스마트폰을 들어, 오랜만에 '가상 세계'로 접속했다.
영상 속에는 아버지의 행복한 모습이 있었다.
아들, 며느리, 손녀와 함께 고깃집에서 웃으며 외식을 하는 모습이 말이다.
 
" ...좋아 보이시네. "
 
김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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