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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에게 밥을

굴요긔2017.04.14 15:30조회 수 101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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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가 몽롱했고 목이 아팠다. 목이 마르다. 첫 번째로 알아챈 것이었다. 조금씩 시야가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텅 빈 방 한 가운데 놓인 금속 의자에 내 몸이 단단히 묶여있는 덕분에 여기저기가 아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량한 콘크리트 벽은 군데군데 얼룩져 더러웠고, 양말도 신지 않은 내 맨발 아래의 바닥은 차갑고 축축했다.

 

방에 존재하는 유일한 빛은 천장 줄에 달린 전구 하나였다. 흔들리는 탓에 그림자가 만들어졌고, 나는 다시 암흑 속으로 눈을 감았다. 내 앞에 열린 문이 있었지만 그 너머로는 복도 벽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하고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떠올리려 애썼다. 눈을 꽉 감고 겁에 질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숨을 가다듬고 생각을 집중하며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해서든 떠올리려 노력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감았던 눈을 뜨고 숨을 내쉬자 건조한 목이 따가웠다. 문 바깥의 벽으로 소리가 울리는 것이 들렸다. 비명소리, 쨍그랑대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모두 저 멀리서 들렸지만 그렇다 한들 내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저기요?” 단어 하나가 내 목청을 통해 나왔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고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없어요? 저기요?”

 

 

어두운 복도는 계속되는 메아리 외에는 잠잠했다. 입을 닫고 어떻게든 묶인 이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움찔거렸지만 내 몸을 묶고 있는 밧줄은 불가능할 정도로 꽉 묶여 있었다. 상상 속의 나를 기다리고 있을 끔찍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을 막아보려 애썼다. 기억이라도 제대로 나기만 한다면 좋으련만!

 

 

갑자기 문 밖으로 잽싸게 움직이는 작은 발의 소리가 들렸다. 제발 도움을 주러 온 사람이기를 바라며 희망을 가지고 문 쪽으로 주의를 기울였다.

 

 

우주복처럼 한 벌로 되어 발바닥에는 패드가 달린 빨간 옷을 입은 어린 남자아이 하나가 방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아이의 얼굴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악마 가면으로 덮여 있었다. 마스크의 눈구멍으로 호기심을 잔뜩 머금은 커다랗고 푸른 눈동자가 나를 마주했다. 움찔한 나는 말을 꺼내려 했지만 이내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아이의 눈이 너무 컸는데, 너무 동그란데다 눈구멍으로부터 너무 튀어나와 있는 것이었다. 등을 따라 한기가 한 줄 흘러 내렸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어쩌면 이 아이가 날 풀어줄 수도 있다.

 

 

“얘!”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꼬마야, 나 좀 풀어줄래?”

 

 

아이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한 걸음 앞으로 디뎠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의자에 묶인 손을 흔들며 다시 말했다, “나 좀 풀어줘, 제발,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는데, 잘못 된 것 같아!”

 

 

아이는 이상한 가면 너머로 나를 쳐다보더니 내 정면에 섰다. 그리고 앞으로 몸을 기울여 물기를 머금은 실크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넌 나쁜 짓을 저질렀어…”

 

 

혼란스러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뭔가 잘못 됐다고!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아이의 거대한 푸른 눈이 갑자기 슬픔으로 채워졌다, “오, 넌 정말, 정말 나쁜 짓을 했어…”

 

 

미친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정말 미안해! 아무 기억도 안 나, 제발 이 의자에서 날 좀 풀어줘!”

 

 

갑자기, 우리 둘 중 어느 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남자 하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뚱뚱한 체격의 그는 작업복을 입고 있었으며, 그의 희끗희끗한 얼굴은 엄청난 분노로 뒤틀려 있었다. 그는 앞이 잘려 나간 샷건을 들고 있었다.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남자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난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거대한 남자는 나를 무시하더니 아이를 잡아 벽으로 세게 밀어버렸다. 콘크리트 벽에 등을 부딪친 아이가 신음소리를 내며 거구의 남자와 눈을 맞췄다.

 

 

아무런 말도 없이, 남자는 샷건을 들어 아이의 이마에 대더니 머리를 날려버렸다. 살과 핏덩이가 벽에 흩뿌려지자 충격이 내 명치를 세게 강타하는 기분이었다. 귀가 먹먹해졌고 경악에 질려 이제 머리가 사라진 아이의 몸이 바닥에 넘어가는 모습을 마치 슬로우 모션을 보듯이 바라보았다.

 

 

폐에 산소가 들어오더니 다시 시간이 제대로 돌아왔다.

 

 

“이런 시뱌 세상에!” 밧줄로 묶인 몸을 움직이며 비명을 질렀다. 충격적인 장면으로 내 두 눈이 튀어나오리만큼 커졌다. “대체 무슨 짓이야?”

 

 

남자는 내 비명을 싹 무시하고 아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다 훼손된 시신을 어깨에 걸치더니 방 밖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복도에서 사악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 여럿이 퍼졌다. 귀가 멀 정도로 큰 소리에 눈을 감자 절대적인 공포가 내 몸의 빈 공간을 전부 채우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방금 있었던 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안녕.”

 

 

다른 남자가 내 앞에 서있음을 깨닫고 또 깜짝 놀랐다. 그는 심플하게 버튼 달린 하얀색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의 갈색 머리는 짧게 잘려 있었고 나이는 삼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의 초록색 눈동자는 흐릿했고 생명력이 없어 보였으며, 입술은 양 끝이 쳐져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죠? 여긴 대체 어디에요?” 뜨거운 피마냥 새로운 공포가 내 배에 고이는 것을 느끼며 외쳤다.

 

 

남자는 팔짱을 끼더니 말했다, “네가 신입이구나, 응?”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너넨 정말 역겨운 인간들이야.”

 

 

질문이 마구 쏟아졌지만 그는 손으로 허공을 가르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비웃음을 지으며 혀로 자신의 치아를 핥았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을 이미 본 얼굴이네, 응? 맞아, 네 눈만 봐도 알겠다. 지금 완전 겁에 질렸네. 분명 뭘 봤네, 봤어, 안 그래?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 않아? 너 여기 온지 5분 밖에 안 됐는데 벌써 바지에 지렸어.”

 

 

“여기 어디에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당신들 원하는 게 뭐야?”

 

 

남자는 팔을 등 뒤로 하더니 말했다, “여기서 나가고 싶지?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뭐 그러고 싶을 거야.”

 

 

“제발요,” 그의 말을 잘랐다, “내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건… 정말 미안해요, 정말로요, 하지만 기억이 안 나요!”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나한테 잘못한 건 없어. 너 스스로에게 했지. 진짜 기억 하나도 안 난단 말이야?”

 

 

액체화된 공포가 고개를 흔드는 동안 내 눈가에 맺혔다.

 

 

남자는 경멸을 담고 나를 바라봤다, “넌 네 아내가 출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헛간에 가서 목을 멨어. 넌 죽었어.”

 

 

최근의 기억이 마치 늪지에서 나타나는 괴물처럼 내 마음 속에서 솟아나기 시작했다. 눈이 커졌다. 부인하고 싶었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나는 자살했다. 기억은 내 뇌를 찢고 나를 동요하게 만든 뒤 떠나버렸다.

 

 

“아 참, 난 대니라고 해,” 남자는 내가 충격을 받았건 말건 상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여기서 서열 2위야. 오리엔테이션 과정을 관리해. 너같이 한심한 자살자들한테 이 망할 일을 계속 반복하기 지겨워서 빨리 하려고 왔어. 시작하기 전에 질문 하나 받는다.”

 

 

그가 나를 내려다보자 나는 생각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건 끔찍했다. 난 왜 자살했을까? 흐릿한 기억과 엄청난 공포를 물리치자 천천히 혼란이 사라져갔다. 나는 막 직장을 잃었다. 맞다… 그게 시작이었지. 눈을 꽉 감고 기억을 재촉했다. 나는 직장을 잃었고 곧 집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내 아내… 테스…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곧 나를 떠날 계획이었다.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고 선택도 없었다. 해고는 갑작스러웠고 저축도 얼마 없었다. 나는 파산 상태였고 곧 노숙자가 될 것이었으며 내 아내는 그 이유로 나를 증오했다. 그것 말고 또 있었는데… 맞다… 그래, 그거다. 아내는 바람을 피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아내가 자고 있는 틈을 타 핸드폰에 있는 문자를 보고 내 의심을 확신했다. 내 인생은 시궁창 수준으로 떨어졌고 나에겐 더 이상의 선택권이 없었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에 나는 내 유일한 선택을 따르기로 한 것이었다.

 

 

“이봐, 빙시, 질문 있어 없어?” 대니가 내 얼굴 앞에서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곧 현실로 돌아온 나는 신경 쓰이던 단 하나의 질문을 물었다.

 

 

“여기가 지옥입니까?”

 

 

대니는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너네 인간들은 항상 그 질문만 하더라.” 그는 내 앞에서 앞뒤로 걷기 시작하더니 말했다. “아니야. 여기는 지옥이 아니야. 그렇다고 천국도 아니지. 여기는 검은 농장이야. 아 그리고, 그거 내가 지은 이름 아니야. 여기는 신이 자살한 사람들만 보내는 장소야. 자살자들. 봐봐, 사실 신도 네놈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리고 악마도 마찬가지고. 자살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심성이 착한 사람들도 있어. 잠깐 약해졌던 그 순간으로 인해 영원의 지옥에서조차 추방되다니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지? 솔직히 말해서 신과 악마 둘 다 그 부분에 대해 입씨름하기 지친 것 같아. 그래서, 검은 농장이라 불리는 이 장소로 보내지.”

 

 

“혹시… 신이 이 공간을 만든 거에요?” 점점 더 혼란스러워져 물었다.

 

 

대니는 바닥에 침을 뱉더니 킬킬대며 말했다, “물론, 언젠가는 그랬지. 하지만 돼지에게 관리를 맡기는 순간 제어력을 상실하고 말았지.”

 

 

“돼지가 뭔데요?” 답을 알고 싶은지 몰랐지만 그래도 물었다.

 

 

대니는 짜증이 난 듯 손 하나를 들고 말했다, “아니 시바, 끝낼 수는 있는 거냐? 억겁의 시간 전에 신이 이 장소를 만들었고 관리자로 돼지를 삼고는 그 뒤로 이 장소를 잠시 까먹은 거야. 흠, 신이 등을 돌리는 순간 돼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새 힘으로 본인만의 작은 세상을 만들어보자 싶었지. 여기에서 일어나는 이 엉망은 그 실험의 잔해라고 보면 돼. 검은 농장은 한때 훨씬 더 좋은 공간이었지만 돼지는 다른 것을 원했어. 그는 자신만의 비전을 펼치고자 했던 거야. 네가 여기서 본 그 사람들, 그 괴물들? 걔네들은 돼지가 제대로 돌아가는 생명을 만들기 위한 시도였어. 신이 만든 지구를 미러링하는 대신, 이 끔찍한 변종들은 속에 죄악과 증오로 가득 찬 존재들이야. 이놈들은 잔인하고 뻔뻔한 놈들이야. 이 장소는 혼란 그 자체지. 검은 농장은 온갖 변종과 괴물들이 이루는 서커스라 생각하면 돼. 그리고 이것이 너의 영원이지.”

 

 

진득한 기름처럼 공포가 내 속에서 끓어 올랐다. 안돼. 내 끝이 이럴 순 없어. 난 이런 것을 믿지 않는단 말이다. 이건 진짜가 아니야! 곧 잠에서 깨어나서 악몽을 꿨다고 할거야! 그렇게 돼야만 한다고!

 

 

대니가 내 앞에 서더니 내 뺨을 살짝 때렸다, “야, 야! 내 앞에서 히스테리 부리지 말란 말이야. 아직 말 다 안 끝났어.”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대니가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돼지에겐 언제나 밥을 줄 수 있지.”

 

 

내 호흡이 뜨거운 김마냥 폐를 밀고 뿜어져 나왔다, “그-그게 무슨 소리에요?”

 

 

대니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두 손을 활짝 펴더니 말했다, “그만큼이나 쉽다는 뜻이야. 돼지에게 밥 주기. 네가 시키기는 대로 하기만 하면, 신께서 널 다시 살려낼 지도 몰라.”

 

 

“그-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다급하게 물었다.

 

 

“그럼 지옥으로 보내져. 그러니 혹시 동전 있으면 한번 뒤집기 해봐. 우리랑 같이 여기에 남던가 돼지 밥을 주던가. 남는걸 선택하면 널 놔줄게… 여기서 나갈 수 있도록,” 그는 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저 복도 끝에서 널 기다리고 있는 것은…흐음… 그냥 지옥이 그렇게 끔찍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도로만 말해줄게.”

 

 

힘겹게 침을 넘기며 여태까지 들은 말을 소화해내려 애썼다. 돼지에게 밥 줘봐도 되잖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희망이 1g이라도 있다면 나는 그 희망을 붙을 것이다. 검은 농장에서의 영원, 지옥으로 보내지기, 아니면… 아니면 돼지에게 밥 주기?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건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악몽은 내가 삶에서 맞닥뜨린 문제들과는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대니는 내가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손을 들며 말했다, “생각할 시간을 좀 줄게. 이따가 봐.”

 

 

“돼지 밥 주기 할게요!” 이 끔직한 방에서 단 1초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 왠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는 그녀 위로 더해지는 고기 때리는 듯한 소리에 맞춰 더 커졌다. 숨이 급해지고 목이 탔다. 대니가 그 소리를 눈치챘는지 씨익 웃었다.

 

 

“소리 진짜 별로지, 응?” 대니는 여자의 목소리가 고통에 갈라지는 소리에 맞춰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무언가로 여자를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생살을 후려치는 소리는 내 머리 속에 공포로 점철된 상상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제발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말했다, “일단… 일단 돼지 밥 주기 할게요.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아요.”

 

 

대니는 나에게서 몸을 돌리더니 말했다, “이따가 다시 올게. 혼자의 시간을 만끽하길 바라. 지금 네 상황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선택에 신중을 기해라. 그리고 기억해… 넌 스스로 여기 들어온 거야.”

 

 

그와 동시에 그는 자취를 감추었고 탁한 방 안에는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얼굴을 따라 눈물이 흘렀다.

 

 

여자의 비명소리는 몇 시간이고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 얕은 잠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방의 어둑함이 나를 짓누르더니 내 눈을 꽉 감겼다. 온 몸이 아렸고 목구멍은 불에 타는 것 같았다. 갈증이 날카로운 유리마냥 내 기도를 할퀴었다. 내 입술은 구겨진 종이처럼 느껴졌다. 머리는 천둥이 치는 듯 욱신거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방의 초점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더니 내 마음은 끝나지 않는 끔찍한 소리를 따라 앞으로 흘러갔다.

 

 

비몽사몽에 빠져 방 안으로 무언가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던 중, 갑자기 엄지발가락이 무척 따끔했다. 순식간에 잠에서 깨어나 욱신거리는 발을 바라보았다. 비명을 지르며 움직이려 했지만 날 묶고 있는 이 구속은 단단했다.

 

 

흐릿한 시야가 돌아오더니 방이 한 눈에 들어왔다. 발가락 사이로 핏줄기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눈을 깜빡였다. 왜 이렇게 아픈지 확인하는 순간 비명이 내 목을 꽉 채웠다.

 

 

밑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존재는 팔이 없는 남자였다. 그는 마치 애벌레처럼 바닥을 기어 다녔고, 머리칼 하나 없는 그의 두상에는 상처로 인한 피딱지로 뒤덮여 더러웠다. 그의 두 다리는 가시가 돋은 철조망에 돌돌 말려 움직이기 위해서는 몸 전체를 꿈지럭거려야만 했다.그의 양 눈은 눈꺼풀이 잘려나가 굉장히 컸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거대한 두 흰자위는 극심한 허기를 안고 있었다. 그의 치아 역시 모두 뽑혀나간 대신, 그 자리에 못이 박혀 그의 잇몸은 피투성이였다. 그 모습은 마치 부러진 암석 같았다.

 

 

그의 목 주변으로는 체인 목걸이가 둘러져 있었는데, 그 줄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열려있는 문으로 향했다. 그 줄 끝을 잡고 있는 남자는 전라의 상태로 있는 키가 큰 남자였다. 그의 몸은 털 한 올 보이지 않는데다 축 늘어져 있었는데, 그의 애완동물처럼 온 몸이 상처로 덮여 있었다. 머리는 더러운 가방을 뒤집어 써 조그맣게 잘린 구멍으로 보이는 붉은 눈 하나 외에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충혈된 성기를 더듬었다. 그의 숨결은 묵직하고도 힘겨웠다. 팔 없는 남자가 다시 나를 향해 몸을 움직이자 그 주인이 자위를 시작했다. 못으로 가득 찬 입이 다시 나를 물자 나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왔는데, 보아하니 내 울부짖음이 그 벌거숭이 남자를 더 자극하는 것 같았다.

 

 

“저리 떨어져! 그만해!” 겁에 질린 내가 소리쳤다. 팔 없는 남자를 발로 차고 최대한 그의 금속이빨을 피하려 아둥바둥거렸다. 발 뒤꿈치로 그의 머리를 찍어 내리자 바닥에 얼굴을 부딪친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가방을 뒤집어 쓴 남자의 입에서 쾌락의 신음소리가 흘러 나오며 검은 물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나는 몸을 돌렸다. 체인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둘은 방을 떠나고 있었다. 팔 없는 남자는 목줄에 의해 끌려가는 수준이었다. 가방을 쓴 그 남자가 사정한 바닥을 보니 죽은 개미 수 천 마리가 보였다. 피할 기력도 없이, 나는 내 스스로에게 오바이트를 하고 말았다. 끈적하게 덩어리 진 담즙이 슬라임처럼 내 목을 타고 기어 나왔다.

 

 

“여기서 꺼내줘!”, 여전히 내 턱을 타고 오바이트가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소리를 질렀다, “난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야!”

 

 

그 두 남자가 복도를 따라 멀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체인 소리와 함께 땅에 끌리는 생살의 소리. 다시 비명을 빽 질렀지만, 날 도와줄 사람 따위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가래와 담즙 뭉치를 바닥에 뱉어내 입에서 느껴지는 신맛을 없앴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쉬울 리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다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비참하게 소강상태에 빠져 어두운 절망이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리로 하여금 다시 나에게 행동을 불어 넣었다. 너무 오랜 시간 묶여있던 탓에 팔 근육이 저릿해 절박한 심정으로 몸을 움직이며 저 문을 지나서 나타날 다음 공포에 대비하고자 했다.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여자 하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여자는 문간에 멈춰 나를 바라보았다. 눈 하나가 없어 얼굴에 동굴 같은 구멍이 나있었다. 머리칼은 추레하고 엉망인 것이, 마치 잊혀진 새 둥지 같았다. 피부는 창백했고 더러웠으며, 옷 역시 거적때기를 걸치고 있었다. 몇 살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지만 멀쩡히 남아있는 눈 한쪽에서 연륜이 느껴졌다.

 

 

“아직 고민 중이야?” 다 쉬어 거슬리는 목소리로 여자가 물었다.

 

 

“네?”

 

 

여자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오더니 다시 물었다, “돼지 밥 줄 건지 말 건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냐고.”

 

 

조심스럽게 여자를 훑어보았다, “네… 맞아요. 누구세요? 뭘 원하는데요?”

 

 

“나도 한 때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어,” 여자가 말했다, “내 운명을 결정하려고. 이렇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었어… 우리가 죽고 나서 일어나는 이 일 말이야. 내가 들은 바는 달랐는데… 종교 역시 이 장소에 대한 경고를 하지 않았으니까.”

 

 

다른 질문에 앞서 묶인 줄을 다시 확인했다, “당신도 자살했어요? 당신도 나처럼 사람이에요? 당신은 여기 있는 그… 이상한 생명체가 아니란 말이죠?”

 

 

여자가 비웃으며 말했다, “그런 질문을 꼭 해야 한다니 정말 마음이 아프네,” 여자는 비어있는 자신의 눈구멍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도 그 조심성은 이해할 수 있겠네. 맞아, 나도 자살했어. 여기 온지 정말 오래됐지. 하지만 그건 내가 선택한 거였어. 여기 남기로 선택했지.”

 

 

나는 머리로 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밖엔 뭐가 있어요? 이건 다 뭡니까?”

 

 

여자는 묵직하게 숨을 내뱉더니 벽에 몸을 기댔다, “어디서부터 말을 해줘야 할지 감도 안 잡히네. 여긴 네가 여태까지 봐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야. 저 복도를 따라 밖으로 나가서… 그 안으로 들어가면… 그럼…” 여자는 침을 삼켰다, “이해하려면 직접 보는 수밖에 없어.”

 

 

“얼마나 나쁜데요? 왜 이 돌연변이들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여자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말했다, “이 장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몇 년은 족히 걸릴 거야. 하지만 너에겐 그런 시간이 없지. 지금 당장 너는 결정을 내려야 돼. 여기 남거나 돼지에게 밥을 주거나. 여기 사람들은 지옥이 여기보다 더 지독하다 말하지만 큰 차이는 안 날 것 같아.괴물과 자살자들은 여기 검은 농장을 떠돌지… 죽이고, 강간하고, 학살하면서…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다른 것들이 널 죽이기 전까지 여기서 며칠을 더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할거야. 절대 끝나지 않는 순환이니까.”

 

 

“그럼 당신은 왜 남았는데요?” 여자를 몰아세우듯 물었다, “왜 돼지 밥 주기를 안 했어요? 아니, 대체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지만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다 할 겁니다. 여기 있을 순 없어요, 그냥… 버틸 수가 없어!”

 

 

여자는 슬프게 미소 짓더니 말했다, “왜? 내가 왜 여길 택했냐고? 진짜 간단해. 난 겁쟁이거든. 난 생전에도 겁쟁이였고 사후에도 겁쟁이니까. 그리고 결정할 순간이 와서 나를 압박할 때, 나는 여기에 남기로 선택했어. 바깥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이 뭔지도 몰랐으니까. 난 내 겁에 스스로 그런 결정을 만든 거야.”

 

 

“돼지는 뭡니까? 그게 뭘 하는데요?” 다시 물었다.

 

 

여자가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떠날 채비를 했다, “미안하지만 그 부분은 네가 알아서 찾아내. 하지만 경고 하나 해줄게. 결정 하기 전에 생각 잘하라고. 가끔은 공포로 인한 고통이 영원한 고통보다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용감해져.”

 

 

“뭘 어쩌라고!” 여자가 문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의자를 흔들며 소리쳤다.

 

 

그러자 여자가 멈추더니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더 바라보았다. 여자의 눈이 흔들리더니 목소리를 한껏 낮춰 이렇게 속삭였다, “돼지에게 밥을 줘.”

 

 

그리고 여자는 떠났다.

 

 

다시 침묵에 잠겼다. 머리가 어지러이 내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너무 과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죽음의 이면이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뭘 기대했겠냐 싶지만 이런 악몽은 아니었다. 내 질문은 가라앉고 있는 배를 덮치는 차가운 파도와도 같았다. 내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선택을 하란 말이야?

 

 

이 장소, 여기 이 검은 농장… 난 여기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지옥에 떨어지면? 만약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그럼 나는 겨우 불을 빠져 나가서 뜨겁게 달궈진 후라이팬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내 존재는 끝나지 않는 비참함 속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겠지. 하지만 여기는… 여기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자살자들. 여기 존재하는 모두가 괴물이고 돌연변이들은 아니다. 어쩌면 그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버틸 수 있을지도 몰라. 나름 괜찮은 존재들을 그러 모아서. 당연히 지옥 가는 것 보다는 그게 낫지!

 

 

아니야. 그런 식으로 내 영원을 마감할 순 없다. 그렇게 되는 것을 거부한다. 진짜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존재한다면 그것을 잡으리라. 다른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의심병이 도져 스스로 고통을 야기하긴 싫었다. 나는 돼지에게 밥을 주고 운명에 나를 맡길 것이다. 정리해보면,그것만이 내 유일한 선택이다.

 

 

돼지에게 밥을 주리라.

 

 

“저기요! 여보세요? 대니!” 의자를 들썩이며 소리를 질렀다. “결정했어요! 대니!”

 

 

잠시 뒤, 복도를 따라 나를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대니가 짜증난듯한 표정으로 방 안에 들어왔다.

 

 

“결정했어요,” 내가 말했다, “돼지에게 밥 줄게요.”

 

 

“내가 나간 뒤로 심사숙고 한 것 같네,” 그가 비꼬듯 말했다.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당신도 내 입장이었다면 똑 같은 선택을 했을 것에요.”

 

 

대니가 내 뒤로 오더니 말했다, “나도 너와 같은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지. 그리고 다른 선택을 했어.” 순간 내 눈이 커졌고, 대니는 그런 내 머리를 얇은 붕대로 칭칭 감기 시작했다. 최대한 숨을 들이 마셨지만 아직 내 폐가 텅텅 빈 느낌이었다.

 

 

그가 묶인 줄을 풀자 마침내 자유가 된 몸이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느껴졌다. 묶인 팔이 풀리자 어깨를 돌리며 안도의 신음을 흘렸다. 그리곤 손을 뒤로 뻗어 스트레칭을 하자 온 몸에서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붕대 풀지 말고 제대로 따라와,” 그가 나를 잡아 끌며 말했다.

 

 

다리에 무게가 실리자 휘청댔고, 오랜 시간 굳은 자세로 있었던 탓에 허벅지가 덜덜 떨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손을 더듬거리자 대니의 어깨가 느껴졌다.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우리는 함께 방 밖으로 나갔다.

 

 

복도로 들어서자 이전까지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금속이 쩔렁이는 소리, 길게 이어지는 고기 치대는 소리, 무언가 오바이트 하는 소리… 이 모든 소리가 내 귀를 울리더니 앞이 가려진 내 암흑의 시야를 멋대로 해석하곤 내 상상력을 동원해 끔찍한 장면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대니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가하며 벌렁대는 심장을 가지고 허둥지둥 그를 따랐다.

 

 

무언가 우리 뒤를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니는 눈치를 못 챈 것 같았다. 아니, 눈치를 챘는데 신경을 안 쓰는 것인가. 살이 내 등에 닿는 것이 느껴지더니 갑자기 뒷목에 뜨거운 입김이 느껴지고 축축한 혀가 잇몸을 훑는 소리가 들렸다. 공포가 나를 잠식하자 내 숨도 가빠졌다.

 

 

“궤 가서 도야지 밥 중제?” 무언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 무언가가 내 뒷머리를 누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 존재에 대해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축축하고 미끈거리는 그것이 킬킬거렸다.

 

 

“갸는 엉텅 배고파니 꼭 제대로 밥 믹여라,” 그것이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낮고 이상한 소리로 다시 속삭였다. 마치 제대로 이어지지 않은 단어들에서 나온 소리가 모여 말이 된 것처럼 들렸다.

 

 

다행히도 그 존재가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듯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여전히 대니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걸어가는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이내 주변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알아차렸다. 기분 나쁘게 답답한 뜨끈한 기운이 시원해서 거의 기분이 좋을 것 같은 온도로 바뀌었지만 온도가 계속 떨어져 결국 추위에 몸이 덜덜 떨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바깥으로 나온 마냥 얼굴에 바람이 느껴졌다. 대니가 문을 여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어쨌든 이 장소에서 정상의 ‘ㅈ’자도 못 봤으니 이해가 됐다. 이건 마치 현실이 스스로에게 녹아드는 것과 같았고, 필름이 서로 뒤엉키는 것과 같았다.

 

 

너무 추워 이까지 딱딱대던 나는 갑자기 느껴지는 열기에 깜짝 놀랐다. 지면이 바뀌자 내 발에 내가 꼬였는데, 어느 순간 따뜻한 메탈 위를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귀는 시끄러운 용광로와 기계 작동의 소음으로 가득했다.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 위쪽으로는 탁 트인 것 같았다. 재 냄새가 나고 입 안으로 먼지가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이미 내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갑자기 멈춘 대니 덕분에 앞이 보이지 않던 나는 그의 등에 부딪치고 말았다. 재빨리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미안하다 몇 마티 뱉어냈다.우리 앞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체인 소리와 함께 금속 바닥을 달칵대는 이상한 소리. 그리고 다른 것도… 무언가가… 킁킁대는.

 

 

갑자기 들리는 돼지의 꽥 하는 소리가 귀가 멀도록 방을 채웠다. 높게 찢어지는 소리를 피하기 위해 귀를 틀어 막았지만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이 엄청난 소리가 금속 벽을 타고 울리는 것을 이를 악 물고 참아내자 그 뒤로 킁킁대는 소리가 따랐다.

 

 

정말 엄청난 소리였다.

 

 

“여기 다른 놈도 데려왔어,” 대니가 아주 미약하게나마 예의를 차리고 말했다. “돼지에게 밥 주고 싶데.”

 

 

누군가 대니에게 대답하리라 생각했고, 내 시야는 여전히 어둠이었다. 내 무릎이 덜덜 떨리고 내 등이 흠뻑 젖어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엄청난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게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야,” 대니가 말하더니 곧장 내 손 아래로 인사하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의 대화가 방금 있었던 것이다. 대니는 내 손목을 잡더니 앞으로 끌었다.

 

 

“돼지에게 다가가라,” 그가 말했다.

 

 

온몸이 떨렸고 내 무릎은 자리에 굳기라도 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손을 들어 어떻게든 견뎌보려 했지만 내 머리는 느껴지는 이 열기와 재와 함께 메슥거림까지 불러 일으켰다. 위장이 사해처럼 흔들리더니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공포가 내 앞에 놓여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길을 잃은 듯, 내 존재가 너무 작게 느껴졌고 두 눈에선 방금 만들어진 신선한 눈물줄기가 흘러 나와 내 얼굴을 감고 있는 붕대를 적셨다.

 

 

“제-제발,” 애원했다, “지금 무슨 일인지 보게 해주세요.”

 

 

갑자기 대니가 내 뒤에서 나타나더니 나를 앞으로 밀었다. 그는 나와 함께 움직이다 멈춘 뒤 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내 얼굴에 둘러진 이 붕대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우뚝 서있는 거대한 검은 물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그것은 이미 어두운 색이 깔린 캔버스 위에 더 까맣게 찍힌 점과 같았다.

 

 

대니와 함께 앞으로 다가가다가 갑자기 느껴지는 엄청난 냄새에 구역질이 나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대니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가더니 멈추지 말라는 듯 나를 압박했다. 분명 무언가 내 바로 앞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살덩어리. 냄새는 이제 악취 수준으로 올라갔고 다시 한번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뜨거운 바람이 내 얼굴로 불어왔는데, 이 뜨거움은 짧게, 반복적으로 다가왔다.

 

 

이 뜨거운 바람을 타고 강해지는 냄새 덕분에 나는 내 붕대에 토하고 말았다. 오바이트 건더기가 붕대를 넘어서지 못해 숨이 막혀 조금씩 내 숨 쉴 구멍을 차단했다. 대니가 내 손을 찰싹 때려 겨우 숨을 돌릴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대놓고 울고 있는 나는 이미 공포와 비참함으로 의지가 모두 꺾인 상태였다.

 

 

축축한 숨을 들이마시자 젖은 붕대에서 냄새가 났다. 내 위산이 내 피부를 뒤덮었고 난 그저 이 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다.

 

 

그리고 바로 내 앞에서, 무언가 꽤액하는 소리를 냈다.

 

 

오줌이 터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돼지 앞에 서있었던 것이다.

 

 

가려진 내 시야가 어둑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뚱뚱하고 거대한 이 존재가 매 순간 내 얼굴에 대고 숨을 내뿜는 덕에 내 모든 감각이 기능을 상실한 것이었다.

 

 

대니가 내 손을 앞으로 들어 올리자 곧 돼지의 주둥이가 느껴졌다. 즉시 움츠렸지만 대니가 다시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덜덜 떨리는 내 손이 그것의 코를 더듬자 그 주위로 난 뻣뻣한 털이 느껴졌고, 마침내 그것의 크기가 가늠이 되었다.

 

 

내 앞에 있는 이 돼지는 거대했고 무게도 분명1톤을 넘을 것 같았다. 그것의 살덩이가 땀에 젖은 내 손 아래에서 꿈지럭대더니 입을 살짝 얼였다. 내 손가락이 부엌칼과 같은 그것의 이빨을 만지는 순간, 그 입이 동굴 크기만하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돼지가 다시 꽤액거리더니 발굽으로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마치 한 여름 공터 위로 내리 꽂히는 천둥과 같은 소리였다.

 

 

“제발 이 붕대 좀 풀어주세요,” 이제 두 다리가 젤리같이 말랑해진 것을 느끼며 간청했다.

 

 

대니가 뒤로 몇 걸음 물어서더니 숭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싶지는 않을 거야.”

 

 

돼지가 코로 나를 슬쩍 미는 느낌에 펄쩍 뛰고 말았다. 그 축축하고 둥그런 살이 내 얼굴에 맞닿았다. 몸을 부르르 떨며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꾹 막고 손을 들어 올렸다.

 

 

“돼지에게 먹이를 줘,” 대니는 이제 강철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나에게 지시했다. “네가 선택한 거야. 이제 그 선택을 따라야지. 돌아가기 위한 유일한 기회야. 아니, 돼지가 네 맛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내겠지. 알아내려면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어.”

 

 

토사물로 더럽혀진 붕대 뒤로 눈을 크게 떴다, “내… 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입으로 기어 올라가라.”

 

 

다시 오줌보가 터지면서 내 다리를 따라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안돼… 절대 그럴 수가…”

 

 

대니의 목소리가 강해졌다, “입으로 기어 올라가서 돼지가 끝내기 전 까지 계속 앞으로 들어가라.”

 

 

“제-제발,” 대니의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려 팔을 휘적대며 말했다, “제발,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에요… 제발 이런 짓을 시키지 말아요!” 이미 콧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이제 말도 옹알이처럼 나왔다.

 

 

대니가 앞으로 다가오더니 나를 돌려 돼지를 마주하게 만들었다, “빨리 해! 이건 네가 선택한 일이야! 곧 끝난다고! 이것만이 네 유일한 기회란 말이다!”

 

 

얼굴 위로 돼지의 입김이 느껴지는 것이, 그것의 주둥이가 내 얼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이 뿜어내는 냄새와 김이 나로 하여금 또 오바이트를 하고 싶게 만들었지만 꾸역꾸역 참아냈다. 이건 미친 짓이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내 정신은 혼란과 공포로 뒤엉켜 엉망이 되었다.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다. 이 짓을 할 순 없어, 절대로 할 수 없어!

 

 

그러다 문득, 그 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끔은 공포로 인한 고통이 영원한 고통보다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용감해져.

 

 

이것만이 다시 내 삶을 되찾을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자살이라는 가장 멍청한 선택을 했다. 다시 돌아가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절대 이런 곳에서 내 영원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나 방향을 바꾸고 어디든 보장할 수 있다. 어디든, 이 돼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하지만 만약 이 돼지가 날 지옥으로 보낸다면? 난 얼마나 더 많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일단 시도는 해봐야 한다.

 

 

“제발, 신이시여,” 앞으로 한걸음 다가가며 속삭였다, “혹시나 제 말이 들리신다면… 제발…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떨리는 손으로 돼지를 더듬더듬 찾아 그 두꺼운 털을 잡았다. 그것이 살짝 고개를 낮추고 입을 여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나를 기다리며 그 뜨거운 숨결을 내 콧구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끝이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천천히 그것의 이빨을 잡고 턱 안으로 내 몸을 밀어 넣었다. 그것의 머리가 아래로 쳐져 있었기에 곧장 몸을 45도 각도로 낮췄다. 그것의 축축한 혀가 내 아래에서 느껴졌고, 어찌나 몸이 떨리는지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내 얼굴을 가리고 있는 붕대로 눈물이 스며들었고, 내 심장은 내 갈비뼈 아래로 숨어든 듯 쭈그러들었다.

 

 

다시 손을 뻗어 다른 이빨을 부여 잡았다. 이를 박박 갈면서, 나는 몸을 안으로 우겨 넣었다. 돼지가 머리를 올리자 마침내 나는 그 놈의 혀 위에 평평하게 자리했다.

 

 

온갖 침과 점액이 내 주변을 에워싸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또 어찌나 뜨거운지 정신이 혼미했다. 무릎으로 앞니를 디디고 그 안으로 더 깊숙하게 들어갔다. 그것의 볼 안쪽이 마치 살로 이루어진 관처럼 내 몸을 짓눌렀다.

 

 

겁에 질려 눈물이 줄줄 나오면서도 나는 더 안쪽에 있는 이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더 깊숙하게 들어가 마침내 내 다리가 돼지의 입술을 완전히 지나쳐 온 것을 느꼈다. 내 전신이 그 축축한 점액에 젖었고 그 입 안에서 꺼이꺼이 울면서 또 다른 이빨을 찾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돼지가 날 씹기 시작했다.

 

 

돼지의 엄청난 이빨 사이에 끼어 느껴지는 그 엄청난 고통으로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다. 다리가 부러지더니 곧장 피부를 뚫고 튀어나온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쇼크에 빠진 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피와 고통으로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것의 혀가 입 안에서 나를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이번에는 어깨를 씹었다. 고통에 찬 울음을 길게 뱉자 눈알이 빠질 것 같았고 쇄골 아래에서 기둥이 부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몸이 제어가 되지 않아 미친듯이 오바이트를 올렸다.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계속 기어가야 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붉게 충혈된 눈을 굴리며, 나는 아직 멀쩡한 한쪽 팔로 다른 이빨을 찾았다. 이를 꽉 깨물자 그 사이로 피가 튀어 나왔고, 마침내 내 손은 단단한 무언가를 찾아냈다.

 

 

돼지가 다시 한번 씹자, 그것의 혀가 내 몸을 굴려 어금니가 무릎을 씹게 좋게 위치시켰다. 그 고통은 캄캄했지만 내 비명은 두 눈을 부릅뜨게 만들었다.

 

 

“제기랄, 제발 그만해!” 아직도 앞에 남아있는 이빨을 찾아 손을 뻗으며 고함쳤다, “제발, 시바 그만 좀 하자고!”

 

 

어찌나 이를 세게 물었는지 이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소리를 지르며 더 깊숙이 몸을 밀어 넣었다.

 

 

무언가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의 좁은 목구멍이 내 머리를 옥죄는 느낌에 드디어 거의 끝나감을 알 수 있었다.

 

 

“계속 해봐라 이 십샹아! 계속 해봐!” 목소리가 다 갈라지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손에 닿는 두꺼운 살점을 움켜 잡았다.머리가 쪼개질 것 같더니 돼지가 다시 한번 나를 씹었다.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엄청난 양의 피를 뿜어냈다.

 

 

그것이 내 배를 씹어 내 안의 것들을 마치 불어터진 면발마냥 헤집었다. 어둠이 나를 찾아오더니 이제 충격이 너무 커서인지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그 어둠이 나를 먹어 치우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딱 한번, 그것의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어둠. 떨어진다… 비명소리. 나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뜨겁다. 너무 뜨거워서 녹아버릴 것 같다. 쨍그랑. 무언가 금속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형형색색의 그림이 내 눈을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다. 내 두 눈을 피가 덮었다,

 

 

마치 영원히 추락할 것 같았다.

 

 

 

갑자긴 눈이 번쩍 떠지더니 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내 폐로 아주 깨끗한 산소가 들어왔다. 얼굴이 나무바닥을 치자 코가 부러지는 느낌에 비명을 질렀다. 쇠맛이 느껴지더니 눈 앞에 별이 보였다.

 

 

마침내 추락을 멈춘 것이다.

 

 

목구멍에 불고리라도 들은 마냥 목이 미친듯 타올랐다.

 

 

나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천천히 눈을 뜨자 그 뜨거운 태양 아래 느껴지는 아침 안개로 인해 어둠이 서서히 걷혔다. 색깔이 뭉그러지더니 마침내 눈의 초점이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내 나무창고에 있었다.

 

 

목을 만져보고 나서야 그 화끈한 기운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있었다. 내 목을 걸었던 그 밧줄이었지만 이제는 갈기갈기 찢어져 죽음으로부터 나를 놓친 상태였다.

 

 

안도감이 밀려오더니 이번에는 주체할 수 없는 감사함이 느껴졌다. 바닥에 몸을 말고 누워 흐느끼며 눈물이 멋대로 바닥에 뒹굴게 내버려 두었다. 몸이 덜덜 떨렸지만 부러진 곳은 없었고, 눈물을 흘리자 내 떨리는 입술 사이로 말이 울부짖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돌아온 것이다. 나는 다시 살아난 것이다.

 

 

나는 누워있던 바닥에서 눈만 들어올려 다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곤 다시 주체할 수 없는 격정적인 눈물에 빠져들었다, “다시는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을게요. 상황을 바로 잡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게요.”

 

 

내가 다시 일어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직전까지 나를 깨부수고 있던 그 충격과 공포에서 제대로 빠져 나오지 못한 내 마음이 아직도 다시 일어서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삶을 되찾는데 있어 최선을 다할 것임을 나 스스로 알 수 있다. 매일 매일을 완전히 살아갈 것이다. 힘든 시간을 겪는 이들을 돕고 헌신하면 살 것이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그 끔찍한 곳으로 가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뻗쳐 그들을 구해낼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살로 인한 공포를 맛보지 않았으면 한다.

 

 

어느 누구도 돼지에게 밥을 줄 일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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