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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이야기

아리가리똥2023.12.08 07:45조회 수 19738추천 수 3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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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단, 기적을 믿는다면 믿어 보길 권합니다...

 

 

백도씨끓는물(문화류씨) 올림.

 

 

1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함께 외갓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충청남도 시골촌구석마을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곳에 가기 싫었다. 왜냐고? 사실 시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본심은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갓집에 가기 때문이었다. 

사실 엄마는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했고, 그로인해 외할아버지와 연을 끊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가 나를 싫어할까봐, 혹여나 매일 야단을 치진 않을까, 두렵고 무서웠다. 왜냐하면 난 아버지의 자식이기도 하니까.

 엄마와 이모가 통화하는 걸 자주 들었다. 외할아버지가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며, 부모와 자식의 연을 끊겠다는 내용이 매일이었다. 엄마가 외갓집에 가지 않은지도 9년이 지난 시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할아버지의 화는 백두산처럼 아직 식지 않으신 것 같다.

 어느덧 기차를 타고 대전에 내려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엄마의 고향으로 향했다. 매일 바다만 보던 나에게 드넓게 펼쳐지는 논이 주는 광경이란 낯설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존재였다. 마치 텔레비전 시대극에서 보던 옛날 촌집들, 슈퍼마켓도 구멍가게 하나가 전부인 그곳이었다.

 외갓집 대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는 계속해서 당부했다. 인사를 잘 해야 한다,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잘 씻어라, 먹을 때 떨어트리지 말라 등 평소에 하던 잔소리의 열 배를 늘어놓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본다면 엄마도 많이 긴장 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외할아버지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자식마저 잘못 키웠다는 소리를 듣기 싫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대문 앞에서 크게 쉼 호흡을 했다. 그러면서도 손잡이를 잡고 들어가야 할지, 말지를 망설였다. 그러던 중, 문이 갑자기 ‘벌컥’하고 열렸다. 외할머니였다. 예상과는 다르게 잘 왔다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야, 아가도 잘 왔어. 식사는 했는 겨?”

 처음 보는 외손자였지만, 집 안으로 걸어가는 내내 안고, 얼굴을 부비고 나를 귀여워 해주셨다.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늘 긴장의 연속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알 수 없는 따뜻함이라고 해야 할까, 마음이 녹아내렸다. 하지만 엄마는 외할아버지를 만날 생각에 표정이 잔득 상기되어 있었다. 때마침 외할아버지가 담배를 태우러 마당에 나오던 참이었다.

 “누가 왔는 겨?”

 둘은 서로를 보자 놀랐는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어린 나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외할아버지가 더욱 당황했지만 먼저 입을 땠다.

 “와.. 왔냐, 어서 들어가서 한 끼 혀.”

 그러곤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대문 밖으로 나가셨다. 할아버지를 보고 겁을 먹어 엄마 뒤로 숨었다. 엄마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손에 땀이 흠뻑 젖었다. 외할머니는 괜찮다며 어서 들어가자고 했다. 시골밥상이라 그런지 어린아이 입맛인 나에게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며칠 동안 불안함에 떨어서 그랬는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피곤했고 자고 싶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단지 만만한 나를 보며 이름은 무엇이고, 몇 살이며,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는지 물어댔다. 그러면서 손수 생선가시를 발라주며 밥에 얹어 주셨다.

 그런데 갑자기 방문이 ‘벌컥’하고 열렸다. 외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손에 한 가득 과자며, 음료수며, 아이스크림을 사와서 내게 내밀었다.

 “아가, 밥 천천히 먹고 간식 먹어잉? 다 니꺼여.”

 무서울 줄만 알았던 외할아버지가 따뜻한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그날 이후로 할아버지는 항상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우리 손자라고, 잘 생겼다고 온 동네에 자랑하고 다녔다. 할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며 온 동네를 누비며 농촌의 정겨움을 구경했다. 어느 덧 우리는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있었다.

 매일이 즐거웠다. 칠갑산에서 또래 친구들과 놀다가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풍경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들이 의미도 모르고 콩밥 매는 아낙네를 그렇게 찾았다. 할아버지는 그걸 보면서 헛웃음을 지으셨다.

 “푸하하하... 쬐그만 녀석들이 말이여, 뜻은 알고 부르는 겨?”

 할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갔다. 할아버지께서 넘어지지 말라며 허리를 꽉 잡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날따라 너무 격하게 놀았나보다. 잠이 스르르 왔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왠지 눈을 감으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찾아왔다. 손에 힘이 스르륵 풀리면서 눈을 감았다.

 

 

2

 

 눈을 떴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몸이 무거운 것인지, 가벼운 것인지 잘 모를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할아버지,할머니, 엄마, 이모, 삼촌이 울고 있었다. 옆에는 시골에 있는 의사선생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더욱이 놀란 것은 내가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엄마는 제발 좀 일어나보라고 오열했다. 나는 여기 있는데, 누워있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니까, 무섭고 슬펐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허공을 두리번거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가, 유현아. 할아버지 말 들리는 겨? 할아버지는 유현이가 안 보여. 지금부터 할아버지가 하는 말 잘 들어.”

 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나 여기 있다고 울며불며 소리쳤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듣지 못하는 듯 했다.

 “유현아, 지금부터 할아버지를 따라가야 혀. 그런데 말이여, 절대 할아버지 뒤만 쫓아와야 혀. 누가 말을 걸어도 말이여, 절대, 절대 대답하거나, 따라가면 안 되는 거여.”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할아버지는 갑자기 집밖을 뛰쳐나갔다. 가족들 모두가 어디를 가냐며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고 냅다 나갔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쫓아갔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 다만 정말 할아버지 말대로 이상한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꼬마야, 어디 가는 거야? 누나랑 저기서 놀자?”

 긴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귀신처럼 보였다. 무서운 마음에 뛰는 것을 멈출 뻔 했지만, 할아버지가 또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유현아, 절대 대답하면 안 되는 거여. 꼭 할아버지 뒤만 쫓아오는 것이여, 알겠지?”

 너무 무섭고 두려웠지만 할아버지 뒤만 따라갔다. 얼굴이 없는 사람, 피를 흘리는 사람, 온 몸이 까맣게 탄 사람 등 일상생활에서 볼 수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그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달렸다. 할아버지는 동네 산자락에 오르며 누군가를 급히 찾았다.

 “이보시게, 이보시게들 나 종태여, 종태. 어서 나와서 나 좀 도와주시오. 제발이여...”

 캄캄한 밤에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소리를 쳤다. 혹시 할아버지가 이상해 진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할아버지를 쫓아다니는 요상한 사람들이 더욱 가까이 왔다. 머리를 산발로 풀어헤치고 무섭게 표정을 지은 여자들이었다. 캄캄한 밤에도 모습이 선명한 것을 보니, 필히 귀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할아버지에게 가까이 가서 날카로운 손톱을 드러내는 순간, 할아버지에게 도망치라며 소리쳤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들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귀신들에게 벼락이 내렸다. 그것을 보자 겁을 먹었는지,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며 사라졌다.어둠 속에서 뭔가가 빠르게 튀어나왔다. 사람처럼 보였으나, 그 모습이 괴이했다. 내 또래의 아이들도 있고 엄청나게 덩치가 큰 어른들도 있었다. 그중에 나보다 어린아이로 보이는 녀석이 할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어, 종태 왔는가?”

 할아버지는 다급하게 아이의 손을 잡았다.

 “이보시게, 도선생. 나 좀 도와주시게. 우리 손자 좀 살려줘. 제발..”

 아이는 두리번거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저 아이 말이여?”

 할아버지는 불행 중 다행이란 듯, 기뻐했다.

 “정말 왔구나, 유현아 정말 잘했다. 그려, 제발 우리 유현이 좀 살려줘어.”

 아이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뭔가 잘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보게 종태, 이미 죽은 아이 아닌가? 그리고 저 아이를 보아하니, 본래 수명보다 오래 살았구먼? 저 아이는...”

 “그만 허게, 그건 됐고... 자네들 죽은 이도 살린다고 했잖여. 제발 우리 유현이 좀 살려줘.”

 아이는 미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와보라고 했다. 낯선 환경에 겁을 잔득 먹은 나는 조심조심 그들 앞으로 갔다. 그런 마음이 통했는지 할아버지는 보이지도 않는 나에게 따뜻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유현아, 겁먹지 마러. 이분들은 유현이를 살려주실 돗가비님들이여.”

 못된 무당이 쳐놓은 덫에 걸린 도깨비들을 외할아버지가 구해주면서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다. 도깨비들은 다른 인간들과 다르게 부자가 되게 해달라느니, 예쁜 마누라를 달라고 하는 소원을 빌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저 아무런 욕심 없이, 때론 메밀묵과 막걸리를 사들고 말동무나 하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자며 찾아왔기에 도깨비들도 할아버지를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죽은 손자를 살려달라는 부탁은 도깨비들에게 난감했다.

 

 

3

 

 

아이는 도깨비 무리 중, 두목이었다. 두목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한 숨을 쉬어댔다.

 “불쌍한 것...”

 그리고 나의 시야가 보이지 않는 곳에 할아버지를 데려가서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당시까지만 해도 몰랐다. 할아버지는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어댔는지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도깨비들과 할아버지가 한 자리에 모였다. 두목이 허공에 대고 누군가를 불러댔다.

 “이보시게, 자네들이 찾는 아이가 여기 있다네. 저승차사 양반들, 이곳이 여, 이곳.”

 순식간에 두목의 말을 듣고 갓을 쓴 사내들이 ‘휙’하고 나타났다. 보랏빛 얼굴에 찢어진 눈매, 흡사 텔레비전에서 본 저승사자가 틀림없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오들오들 다리가 떨려왔다. 저승사자는 장부를 확인하더니, 나의 팔을 ‘덥석’하고 잡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목이 저승사자의 손목을 잡으며, 깔깔 웃어댔다.

 “왜 이렇게 성격이 급허데? 손 좀 놓아봐유, 어서.”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저승사자는 애써 나를 데려가려고 강하게 팔을 잡아당겼다. 할아버지도 불안함을 느꼈는지, 보이지도 않는 나를 보면서 내 이름을 수차례 불러댔다. 무서워서 울음이 났다. 도깨비 두목의 표정이 살벌하게 변했다. 두목이 강하게 저승사자의 손목을 잡았는지, 그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알았어요, 알았어. 이것 좀 놓고 말을 하시죠.”

 두목은 다시 아이처럼 해맑게 눈웃음을 지었다. 저승사자는 욱신거리는 듯 자신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자, 우리 협상을 하지.”

 두목은 저승사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 아이 말이여, 데려가지 마러. 내가 저승 것들 하는 거 보니까 말이여, 잡아가라는 새끼들은 안 잡아가고 꼭 힘없고 가여운 사람만 데려가더라고. 이 아이가 뭘 그렇게 잘못 한 거여? 꼭 데려 가야하는 겨?”

 저승사자들은 난감한 표저을 지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어르신. 하늘의 규율이 그런 것인데, 어찌 저희에게만 그러십니까?”

 도깨비 두목은 그런 저승사자들에게 거칠게 욕을 뱉었다.

 “내가 모를 줄 알어? 이런 버러지 같은 삐리리들이 말이야. 너희들 돈 좀 있는 인간들에게 제삿밥이니, 무당굿이니 이런 거 받아먹고 수명 늘려준 적 있지? 없다고 말하면 당장 염라대왕이니, 옥황상제니 찾아갈 거여? 규율은 개뿔...”

 저승사자 둘은 난처한 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중 한명이 고개를 흔들자, 다시 나의 팔을 잡으며 데려가려고 했다. 그러자 두목이 화가 났는지, 크게 호통을 쳤다. 하늘에서 커다란 날벼락이 쳤다.

 “거기 서, 이 자식들아.”

 두목이 소리를 지르더니 거대한 사내로 변했다. 매서운 눈으로 저승사자를 노려보더니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멱살을 잡았다.

 “아이를 놓아줘, 아이 하나 데려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지 않아. 때론 저승 녀석들아 공평 할 줄 알아라. 기껏해야 힘없고 가여운 어린 아이다. 운명은 개뿔,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라고?”

 두목의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산 속에 울려 퍼졌다. 저승사자는 두목에게 일단 멱살을 놓고 이야기 하자며 회유했다.

 “도선생님,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하십니다. 일단 말로 하시죠.”

 두목이 손을 놓자, 그제야 저승사자는 조금 더 친절하게 대했다. 맹목적으로 나의 수명을 늘려 줄 수는 없다고 했다. 하늘의 뜻을 배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누군가의 수명을 늘려준다면 또 다른 누군가의 수명을 단축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진리’라며 난감한 심정을 밝혔다.

 두목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렇게 하지.”

 두목은 저승사자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알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리고 두목은 혹여나 저승사자가 배신이라도 할까봐, 할아버지 집까지 따라가 감시했다. 

방 안에는 아직도 엄마가 나를 붙잡고 오열하고 있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된 것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모들, 삼촌들 할 것 없이 묵묵히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두목은 장부를 들어 붓으로 무언가를 고쳤다.

 “차, 유, 현을 다시 데려가는 날은 앞으로 25년 후가 될 것이다.”

 아마도 나의 수명을 일정 기간 늘려 준 것 같았다. 순식간에 영혼이 시신에게 빨려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깊은 잠에서 일어난 듯 눈을 떴다.

 “엄마!”

 내가 일어나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마을이 떠나가도록 기뻐했다. 할머니는 신이 도왔다며 감사의 하늘에 대고 기도를 했고, 엄마는 진정 기적이 사실인지, 나의 얼굴을 만져도 보고, 부둥켜안았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그제야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리고 방을 뛰쳐나갔다. 할아버지가 두목과 함께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살아난 걸 보고 빙긋이 웃었다. 나는 당장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겼다. 이유 모를 눈물이 계속 흘렀다. 무서움에 대한 눈물이었을까, 기쁨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불안함의에 대한 눈물이었을까, 할아버지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4

 

 

 기적적으로 살아 난 뒤로 여느 때처럼 신나게 놀았다. 정산바닥을 누비며 매일이 즐거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안했다. 혹시 내가 살아나는 바람에 그 대가로 할아버지를 데려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평소처럼 멀쩡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리기에 깜작 놀랐다. 엄마의 방이었다. 혹시라도 엄마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혼나는 것이 아닐까, 엿들었다. 할아버지와 엄마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경선아, 나는 말이여... 언제부터인가 이 말을 꼭 하고 싶어. 사실은 말이여, 차 서방을 만나고 헤어진 것이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 혀. 너가 선택한 것이 후회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봐.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것을 이겨내야 하는 법이여.”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어댔다.

 “사실은 말이여, 그간 9년간 네가 보고 싶었고, 걱정이 돼서 한 순간도 잠을 못 잤어. 매번 정선이한테 말이여,전화해서 어떻게 사는지 물어보라고 하고 말이여. 유현이가 태어났을 때, 찾아가려고 용기를 냈다만 네가 싫어할까봐 못 갔었어. 그리고 너의 소식을 들었을 때 말이여, 당장 집으로 부르고 싶어서 정선이를 시켰지. 그러지 않았으면 평생 후회하고도 남았을 것이여. 너도 집에 오고, 유현이를 만나서 기분이 환장할 만큼 좋았어.”

 엄마는 더욱 크게 울어댔다. 할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기도 했고 부모가 된 후 깨달음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날 엄마는 할아버지께 잘못했다고, 미안하다며 반복하며 울어댔다. 삼촌은 방문 밖에서 내가 서있는 걸 발견하자,밖으로 데려나갔다. 할아버지와 엄마가 완전히 화해를 해서 기뻤고, 뭉클한 감정이 마음 속에 맴돌았다. 집 앞에 있는 시냇물에 노을이 지면서 황금빛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순간이 기억에 강하게 남았는지, 비슷한 풍경만 봐도 그때의 향기가 코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날 즐겁게 식사를 하며 떠들어댔다. 갈비찜을 먹으며 할아버지가 나에게 장난을 쳤다. 생강을 고기로 속여 밥 위에 얹혔다. 진정 고기인 줄 알고 알차게 깨물었는데, 진하고 걸쭉한 생강향이 입안을 뒤덮었고, 이내 코로 흘러갔다. 당장 입 안에 있는 생강을 뱉었다.

 “에잇 공짜 좋아하는 대머리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생강 먹어.”

 온 가족이 재미있게 웃었다. 가장 즐겁게 식사를 했던 날이었다. 가족들이 내 재롱을 보며 즐거워했고, 나의 일기 속에는 매일이 웃음이 가득한 일만 적혀있었다. 어찌나 설쳐댔는지 금방 잠들어 버렸다. 

 꿈속에서 누군가가 내 방에 들어왔다. 할아버지였다. 문제는 할아버지 뒤에는 며칠 전 나를 데려가려고 했던 저승사자 둘이 있었다. 불안함이 현실이 된 기분이었다. 당장 일어나서 할아버지에게 가지 말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빙긋이 웃었다.

 “유현아, 사랑한다. 건강하게 자라서 엄마를 잘 부탁 혀.”

 가지 말라고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지만, 저승사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스르르 잠들고 말았다.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깼을 무렵, 밖에는 천둥이 치고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불안감이 온 몸을 극도로 뒤덮었다. 조심히 마루로 나갔다. ‘삐그덕’거리는 발소리가 썩 기분이 좋지 않게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방문을 열었다. 자고 있는 할아버지의 몸을 흔들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예상한 대로 할아버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할머니를 깨웠다.

 “우리 강아지 왜 우는 겨? 번개 쳐서 무서운 겨? 일루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할아버지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울어댔다. 할머니가 깜짝 놀라서 할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역시 할아버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가족들을 깨우러 간 사이, 문득 그 날의 일이 떠올랐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뚫고, 할아버지가 도깨비들을 만나러 갔던 곳을 가려고 나서는데 외양간 처마 아래서 누군가가 나의 팔을 잡았다. 도깨비 두목이었다. 나는 당장 도깨비 두목에게 저승사자들이 할아버지를 데려갔다며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다고, 엄마 말도 잘 듣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효도하겠다고 싹싹 빌면서 애원했다. 그러나 나는 왠지 포기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목도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이 그들이 너희 할아버지를 데려가는 날이라서 구하려고 왔는데 말이여, 너네 할아버지가 약속은 약속이라며 거절 하셨어.”

 도깨비가 울어댈수록 비가 세차게 퍼부었다. 소리 내어 울 때 마다, 벼락이 내려쳤다.

 나이가 어렸지만 할아버지와 저승사자 간의 어떤 계약이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장난삼아 할아버지를 공짜 좋아하는 대머리라고 놀렸지만, 할아버지는 확실한 사람이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수명을 단축 시킨 것이다. 도깨비 말에 의하면 본래는 그날 당장 데려가려고 했단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1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한 것이다. 도깨비의 협박에 못 이겨 저승사자들이 할 수 없이 그러라고 했다.

 

 

5

 

 

 나이가 서른이 넘어버렸다. 삶에 찌들기도 하고, 사랑에 배신당하기도 하고 어른의 삶이란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그만 살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으로 지나갈 때 즈음,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외할아버지 기일이기도 하고,간만에 외갓집으로 갔다. 시간이 참 많이 지나기도 했다. 논이며 밭이며 밖에 없던 땅은 높은 아파트가 들어섰고,이제는 더 이상 시골집이라 불리기 어려울 만한 고급주택들이 곳곳에 지어져 있었다. 외갓집도 마찬가지였다.

 외갓집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평소 좋아하시던 술을 따르고 담배에 불을 붙여 비석에 올렸다. 이제는 다 커버린 손자의 절을 받으시는 기분은 기쁜지, 좋은지 궁금했다. 그렇게 할아버지 묘지 옆에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굉장히 빠른 걸음으로 다가 오기에, 단숨에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도깨비 두목이었다. 나는 녀석을 보며 시장에서 산 막걸리와 수육을 흔들었다. 반가웠는지 순간이동을 하듯 나타났다.

 세월이 많이 변했는지 녀석의 모습이 많이 변해있었다. 어린 아이였던 모습이 제법 잘 생긴 사내로 자란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 본 건 있어서 기다란 코트와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미디어가 도깨비까지 바꿔 놓는 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묘지는 도깨비가 지키고 있었다. 어떤 귀신도 손도 못 대게, 어떤 사람도 침입하지 못하게 말이다.도깨비는 할아버지를 진정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술을 마시며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종태 이친구야’하며 울어대는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도깨비도 술을 많이 마시면 취하는지 몰랐다. 녀석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마구 늘어놓았다.

 그가 말하길, 할아버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미래를 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저승사자와 함께 나오던 밤,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고 했다.

 “도선생, 이용해서 미안 혀.”

 할아버지는 엄마의 불안한 미래를 보았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상처를 줄 것이 틀림없었기에, 결혼을 반대했다.그래서 무조건 반대보다는 둘이 알아서 잘 살도록 한 것이었다. 행여 아버지가 엄마를 때릴까봐 너무 걱정 된 할아버지 자신이 보는 미래가 틀리길 바랐다. 엄마가 행복하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안한 예감은 늘 한 치의 오차 없이 맞아 떨어졌다. 매일 같이 되풀이 되는 폭행과 사과로 아버지는 엄마의 인생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빨리 이모에게 전화를 한 것은 나와 관련 된 문제가 더욱 깊었다.

 사실 나의 운명은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해 죽을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모에게 매일 같이 통화를 하라고 시킨 것이다. 결국 엄마는 이모의 도움, 아니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변호사가 찾아와서 법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그로 인해 아버지가 분노 할 것이 틀림없기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올라오라고 한 것이었다. 만약 그때 할아버지가 손을 쓰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해 억울하게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마음이 먹먹했다.

 문제는 본래 죽을 운명이라서 그런지, 더 이상 나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죽을까봐 늘 불안해했다. 물론 먼 미래의 일이지만, 그래도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못된 무당이 도깨비를 잡는다는 소문을 듣고, 덫을 찾아다녔다. 식탐이 약점인 도깨비들은 무당이 쳐 놓은 덫에 걸렸고, 할아버지는 그런 도깨비들을 구해주고 친구가 된 것이다. 도깨비에게 미안하지만,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도깨비들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돈이고 명예고 어떤 소원도 필요 없었다. 단지 이제 갓 태어난 손자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할아버지는 정성 것 도깨비들에게 잘해주었다.

 그런 과거를 알고 나니, 눈이 아리다 못해 아플 정도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내가 그렇게 사랑 받았다고 생각하니, 하찮게 여겼던 스스로의 삶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내가 와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도깨비들에게 자랑을 늘어놨다고 했다. 어차피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모두 경험했고, 딸과 손자를 구했기에 자신은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된다며 망설임 없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감동도 잠시, 도깨비가 말하기를...

“유현이 이 친구야, 자네 올해 나이가 서른 셋 아닌가? 일 년 후면 그들이 자네를 찾아 올 것이야. 고작 자네 할아버지의 수명 25년이 연장 되었을 뿐이여.”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끝

 

출처 백도씨 끓는물 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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