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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1982년 우범곤 순경 살인사건 (하룻밤56명살인)

title: 하트햄찌녀2021.11.30 11:37조회 수 1579추천 수 1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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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 의령경찰서 궁유지서 소속 우범곤 순경(27)

경찰출신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으나 대장암으로 아버지가 사망후, 고등학생 시절부터 화가 나면 배를 긋는등의

행동을 하기도 했다고함.

해병시절 사격을 잘해 특등사수로 뽑힐 정도였으며 청와대 소속으로 발탁되어 간지 8개월만에 좌천되어

의령 궁유지서 순경으로 복무했다. 좌천된 이유는 술만 먹으면 욕설,폭행등 별명이 '미친호랑이'라고 불릴

정도로 변했기 때문.

의령으로와 하숙을 하던 우범곤은 이웃집 전양(25)과 만나게 되지만, 전양의 가족은 만류를 했고 그럼에도 불구.

식을 올릴비용이없다며  전양의집에서 동거를 먼저 시작한다.

우범곤은 가뜩이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에 대한 열등의식에 젖어있었는데 여자의 집에 얹혀살게되며

자신의 무능함에 콤플렉스가 생겼다고한다.

사건이일어난 4월 26일 .  경남 의령의 산골마을 궁유면에는 그날 봄비가 궁상맞게 흩뿌리고 있었다.

야간근무전 잠을 자고 있던 우범곤의 가슴에 파리가 앉았고, 전양은 파리를 잡으려 하다 우범곤의 가슴을 찰싹 

내리치게된다.  우범곤은 잠에서 깨어, 전양에게 욕설과 폭행을 하였고 이를 말리던 친척언니의 뺨까지 때리고

집을 뛰쳐나가 지서로 출근한다.

지서에서 소주2병을 마시고, 다시 전양의 집으로 온 그는 다시한번 욕설,폭행을 하며 집을 쑥대밭을 만들고 

지서에 있던 방위병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전양의 남동생이 찾아와 경찰이면 다냐며 소리를 질러대었고, 우순경은 “그래, 다 죽인다!”고 소리치며

그대로 방위병들에게 공포탄을쏴 지서에서 모두 쫓아낸후, 카빈 소총 2자루, 탄약 180 , 수류탄7개를

가지고 지서를 달려나간다.

우연히 앞을 지나가던, 예비군훈련을 위해 고향에 내려와있던 20대 청년을 제일 처음으로 살인한 우범곤은

그대로 우체국으로 달려가 직원 전모양, 박모양등 3명을 사살 하고 숙직실에서 자고있던 집배원 전씨도 사살.

동네를 뛰어다니며 불켜진집만 찾아 사살하기 시작한다. 

당시 이 산골마을엔 수동식 전화기 밖에 없어 우체국 교환원이 전화선을 연결해줘야만 전화통화가 가능했다. 

당연히 “이곳을 마비시키면 마을 내부는 물론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깜깜 먹통이 되는” 거였다.
 
밤 9시40분께 토곡리에서 첫 살인을 하고 우체국에서 3명을 더 죽인 이 악마는 밤 10시경 300m
 
위쪽 압곡리 매실마을로 달려갔다. 내연의 처 전 씨와 그 가족 친척들이 사는 곳이었다. 여기서 악마는 

전 씨에게 복부관통상을 입히고 우체국에서 이미 사살한 집배원 부인 등 6명을 쏴 죽였다. 그는 양손에

카빈 한 자루씩을 들고,  담배를 꼬나문 채 집에 들어와 “여기 전 양 있나?”고 고함을 질렀다.

방문이 열리자 그는 “이 x년들, 다 죽인다!”고 외치며 양손 카빈을 연발로 난사했다. 그리고는 수류탄을 까

마당 한복판에 던지고는 쏜살같이 집을 나갔다.
 
내연의 처 전 씨는 이튿날 병원에 옮겨져 의식이 있는 동안 짧은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파리를 잡다 부부싸움이 일어났고, 그것 때문에 우순경이 술을 마신 뒤 총질을 해댔다”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녀는 특히 자신과 우순경의 동거 경위를 밝히며  “그는 성격이 괴팍하고 말씨가 거친데다 집안이 가난해

늘 열등의식에 젖어있었다. 거기다 경찰이 결혼식도 안올리고 동거부터 한다고 수군거리는 걸 못마땅해 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사망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 집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놓았기에 나중에 우범곤의 범행동기와 심리를 유추할 수 있게 됐다.

처의 일가족을 모두 사살한 우범곤은 그대로 압곡리 남쪽으로 600m 떨어진 운계리로 달려갔다.

가던 도중 만난 중학생과 함께 동행하여 가게에서 콜라1병을 사먹고, 그대로 학생을 사살했다.

그소리에 놀란 가게주인의 가족들. 그리고 동네사람들이 불을 켜고 나와 허둥대고 기웃거렸고

그들은 소리한번 못지르고 사살당했다. ( 매실부락 외 시장통에서 24명 사살)

우범곤은 그다음 산길로 2km 떨어진 평촌리에 자정 무렵 도착했다

그는 마을사람이 많이 모여 있던 초상집에 들어와 조위금 3천원까지 내고 술상을 받았다.

처음 그가 카빈 두 자루를 들고 초상집에 들어오자 사람들이 이 오밤중에 웬일이냐고 

물었고 그는 태연스레 간첩이 나와 비상이 걸렸다밖에 안순경이 있다며 카빈 한 자루를 툭툭 쳤다

마치 총 두 자루를 지녔지만 한 자루는 동료의 것을 잠시 맡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투였다

술상 앞에서 그는 봉급도 쥐꼬리 같고총각이라고 차별도 하고 이놈의 순경 짓 더러워서 못해먹겠다고 푸념도 했다.

술상 옆의 한 주민이 카빈을 툭 치며 농담처럼 실탄도 없는 빈 총을 뭐 하러 가지고 다니나고 하자 

우범곤은 그를 노려보더니 총을 들었다그리고 순간적으로 농을 던진 사람과 그 옆의 이장을 쏴 죽였다

상황 판단이 잘 안 되는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있는데 그는 콩 볶듯 총을 갈겼다겨우 정신 차린 사람들이 

후다닥 상을 박차고 일어나며 순경이 사람을 쏜다!”며 

도망치는 뒤를 향해서도 총을 쏘았다일부 산속으로 도망간 엎드린 사람들은 초상집에서 연속해서

 타당타당 총 쏘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고 저래선 안 되는데총을 뺏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오금이 저려 차마 일어서지를 못하고 덜덜 떨기만 했다

우범곤은 이 초상집 근처에서만 모두 24명을 죽였다.신생아와 80대노인도 포함)

새벽 2~3시경우범곤은 산속에 숨어있다 다시 평촌리로 내려왔다평소 알던 서모 씨 집에 들어가 

가족 4명을 인질로 잡고 있던 그는 동이 트기 전에 , 무장경찰들이 동네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수류탄 2발을 터트려 인질들과 함께 폭사했다

결국 아무도 그가 죽기 전까지 악마적 발광을 막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 그가 자폭하기 직전까지도 서씨 가족들에게 무장공비가 나와 작전 중이라고 교활하게 거짓말을

꾸며대 인질로 잡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 처음 신고는 반상회를 위해 왔던 방위차장에 의해 10시 5분경 

이뤄졌으나, 우체국에서 사살이 일어나 통신두절로 신고가 되지않았고 차를 타고 나가 의령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그후 우체국에서 총에 맞아 있던 전모양이 사력을 다해 10시 34분경 전화선을 연결하며 통신연결이 되었다고한다.


=우범곤이 총을 쏘고 다니자, 박모 청년이 지서에가 방위병에게 막아야 하니 총을 달라고 하자 방위병들이

안된다며 막았다고 한다. (방위병들은 뭘하고있었노)


=우체국 교환양 전양의 친오빠인 생존자 전원배씨에 의하면 , 우범곤은 교환양 박모양을 짝사랑하여 거절하는 박모양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구애를 했다고 한다. (박모양 사살후 박모양가족도 사살함)


=시신들은 주로 가슴에 총상. (우범곤은 사격을 잘함)


=의령서 상황실은 기동타격대에 비상을 걸었는데 타격대에 지급할 무기를 넣어둔 무기고 열쇠를 찾지 못해 30~40분을 허비했다경찰서는

또 궁유 인근 다른 지서에도 출동 명령을 내렸으나 쉽게 소집이 되지 않았다.

궁유지서가 있는 토곡리에 맨 처음 경찰이 당도한 시간이 밤 1140~50분께였다

이때 우범곤은 토곡압곡운계리에서 사살을 한후 평촌리 초상집에 가 있었다


=궁유지서장은 온천접대를 다녀온 후 우범곤이 총을 쏘고 다닌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 내가 자리에없어서

다행이였다며, 소총 1자루를 들고 궁유면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수사본부는 범인 우범곤의 수법이 너무 잔인해 일반인과 뇌조직이 어떻게 다른지를 가려내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시신을 보내

 뇌세포 검사를 하려 했으나 검사가 불가능해 이를 포기한다.


사건 직후 전두환 정권이 가장 먼저 챙긴 것은 피해자 보상이었으며

군사정군 초기 민심이탈을 막으려는 조치였다사건발생 닷새만인 51일 부산지방검찰청 차장검사를 위원장으로 

한 국가배상심의위원회는 사망자 1인당 최고 1900만원이 입금된 통장을 전달한다.

배상법에 따르면 사망자 가운데 60살 이상 노약자의 배상금은 835,000원으로 결정됐으나배상위는 이 금액이 

너무 적다며 최하 금액을 300만원으로 변경 책정했다

또 배상금과 별도로 사망자 장례비 30만원과 죄위금 600만원을 유족에게 건넸으며 이런저런 명목으로 유족에게 

지급된 보상금은  1명당 최고 3200만원에 육박했다

사망자 배상금 지급일에 맞춰 현장을 찾아가 103억 규모의 "궁류마을장기개발계획)에 서명했으며 이 계획에는 궁류면 벽계리의 저수지에 둑을 새로 쌓고궁류에서 인근 시.군으로 연결되는 산골길을 모두 포장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당시 정권은 이외에도 사망자 및 부상자 가족의 학비.의료비 면제예비군 훈련연기 등 생각할수 있는 거의 모든 주민지원방안을 내놓았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도 개인 자격으로 23900만원의 유가족 성금을 내놓았다이는 전두환 군사정권 초기시절의 시끄러운 잡음을 하루빨리 가라앉히기 위한 발빠른 행동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사건의 뒷이야기조차 5월 초부터는 제대로 보도되지 못했다


= 현장에 출동하여 참혹한 광경을 보고는 지서에만 틀어박혀 사이렌이나 마을방송을

하는 등의 행위도 하지않고 있던 의령경찰서장은 직무유기죄로 기소되었으나 법원은 주관적으로 직무를

 버린다는 인식이 없고 객관적으로는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 나는 행위가 없다고 무죄 판결받는다.





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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