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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씨.발.년 (1)

title: 금붕어1현모양초2022.10.23 14:59조회 수 3667추천 수 1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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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다. 한손으로 장갑의 입구를 쥐고 반대쪽 손을 집어넣는다.

차가운 한기에 몸이 가볍게 떨린다. 장갑은 한번에 껴지지 않았고,

손가락을 서너번 끄떡거린 다음에야 완전히 밀착시킬 수 있었다.

반대쪽도 마저 끼운 다음 살며시 양손을 겨드랑이 사이로 갖다댄다.

은은한 온기가 손바닥부터 해서 온 몸으로 확산된다.

좀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소름이 돋아왔고, 몸 전체가 제법 크게 들썩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모두의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김간호사가 준비가 끝났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선 최간호사가 튜브의 압력을 조정하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 구석에....**년이 있다.

심장소리가 우레처럼 커진다. 허벅지가 나른해 지면서 주저앉고픈 충동이 일어난다.

재빨리 의자를 당겨와 엉덩이를 갖다댔다. 눈앞에 시커멓고 음습한 구멍이 보인다.

구멍은 확장기에 의해서 한껏 벌어진 상태였는데 미약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손을 내밀자 김간호사가 집게와 가위를 쥐어준다.

그것을 양손에 나눠지고는 구멍속으로 집어넣었다. 조심스레 손을 더듬어 목표물을 찾기 시작한다.

'물컹'

찾았다. 목표를 이뤘지만 터럭만큼의 성취감도 없다. 집게를 갖다대자 그것이 요동을 친다.

소용없는 짓이다. 독안에 든 쥐다. 집게로 그것의 한 부분을 집었다.

축적된 경험으로 그것이 팔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단언하건대 나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가위를 벌리자 그것이 더욱더 크게 요동친다.

필사적으로 벽을 긁고 두다리를 파닥 거린다. 집게가 흔들린다. 빠지기 전에 얼른 가위로 썩둑 잘랐다.

가위는 한번의 교차됨으로 깔끔하게 맞물렸다.

팔한쪽이 떨어져 나간 그것은 구멍 전체가 흔들거릴 정도로 발광을 해댄다. 이때부터가 중요하다.

임전무퇴.. 무조건 밀어 붙여야 한다. 숨도 쉬지 않고 가위질을 해댄다.

독일산 의료용 숫돌에 잘 벼린 가위날은 피육을 뚫고 채 영글지 못한 뼈마저 손쉽게 가른다.

조각나고 분해된 그것이 움직을 멈췄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움직임을 멈춘 지는 꽤 시간이 지났다.

다만 잠시후를 위해 뒷작업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집게를 휘휘 젓자 조각들이 양수와 함께 뱅그르 돈다.

천천히 손을 빼낸다. 비릿한 짠내가 확 끼친다.

손보다도 한발 앞선 내음은 위생마스크를 뚫고 기세를 몰아 코의 점막마저 뚫어 버렸다.

뒤늦게 빠져나온 손...아니 시뻘건 덩어리. 덕지덕지 붙어있는 조직과 장기편들,

그리고 그것들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점도 높은 블러드. 나의 양손과 맛깔스레 버무러진 한덩이 믹스쳐.

물끄러미 그것을 보고 있자, 최간호사가 세면대의 물을 튼다.

세면대로 가기 위해 일어서자 김간호사가 준비한 진공흡입기를 구멍에 쑤셔박는다.

손을 씻자 점차 심장박동이 정상을 되찾았다. 흔들리던 허벅지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저 깊숙한 곳에서

용기가 오아시스처럼 솟았다.

"뽀드득 뽀득"

손씻기를 마친 나는 거만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고개를 살짝 뒤로 제끼고 눈을 내리 깔았다.

'**년'

한쪽 구석에 그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런 짚신에 선명한 색동저고리를 입은 그년은 잠자코 서 있을 뿐이었다.

숯많은 머리카락이 얼굴전체를 뒤덮었고, 끝은 배꼽까지 내려와 있었다.

'**년이 뒤질라고'

용기백배해진 나는 그년을 한번 노려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수술대위의 여자가 모아둔 한숨을 토해낸다. 시계를 보니 마취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농구공만하던 배는 납짝해졌고 늘어진 뱃가죽이 잔주름으로 단층을 이루고 있었다.

"다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수술실을 빠져나와 중앙 로비를 가로 질렀다.

"선생님, 우찌 됐심꺼?"

초조한 기색의 30대 남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잘 끝났습니다, 환자분 회복실로 옮겨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참말로 고맙심더..고맙심더."

남성은 연거푸 고개를 숙였고, 양손을 덥썩 움켜쥐었다. 남성이 고개를 들자 일그러진 얼굴이 나타난다.

팔자주름이 길게 늘어짐과 동시에 더운 눈물이 흘렀다.

"잘해주세요,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안 그럼 몸 축납니다"

남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뒤 집무실로 향했다. 슬쩍 돌아보자 그년도 뒤뚱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평소라면 겁에 질려서 떨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전신의 털이 모조리 설만큼 무섭던 그 걸음걸이도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오히려 우스웠다. 실제로 약간 비웃은 나는 집무실 문을 힘차게 잡아 당겼다.







어린 시절 문득문득 느끼던 이질감, 위화감.

그 시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시하는 것이었다.

후레쉬맨 크레파스로 그리기에 심취하거나,

매칸더브이가 나오는 만화에 흠뻑 빠졌을 때도 의식의 한 끄트머리에선 언제나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깜짝깜짝 놀랄때도 있었지만 그건 드문 경우였다.

친절하게도 그것은 예고와 함께 찾아온다.

고주망태가 되신 아버지가 현관을 들어서면 그것이 따라 들어온다.

아버지가 토악질을 한다고 변기에 머리를 쳐박고 있노라면 그것이 한켠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안방으로 가면 그것도 안방으로 갔고, 베란다로 나가면 그것도 베란다로 나갔다.

그래서 평일 낮 동안은 잠시 평온하다.

그 무렵 일기장에다 아버지가 주말에도 일하러 나갔으면 좋겠다고 쓴 적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철부지를 불러다 놓고 담임 선생님은 이것저것을 코치코치 물었다.

물음의 대부분에 고개를 저었고, 일부러 거짓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 후에도 여러번 선생님과 독대를 가졌고 철이 들고서야 일기장 때문이란 걸 알았다.

오해였지만, 어떤식으로든지 관심을 받는다는 건 나쁘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잠결에 요의를 느끼곤 깨어나 거실로 나왔을때, 괴괴한 가로등 빛 아래 그것이 죽은 듯 서 있었을 때에도 괜찮았다.

털썩 주저앉아 뜨끈한 오줌을 지렸지만 죽을 정도로 무섭진 않았다. 단지 놀랐던 것이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변

성기를 거치지 않은 하이톤의 두성소리에 안방에서 엄마가 뛰쳐 나온다.

엄마의 호들갑에 보란듯이 더 소리를 질렀다. 안도감이 밀려들자 일부러 방광에 힘을 주었다.

시커멓게 내복을 번져가던 오줌은 아롱지는가 싶더니 급격히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소파위에 뭉쳐있던 이불이 거치고 떡진 머리의 아버지가 고요하게 나를 바라본다.

무심한 듯 안타까운 저 눈빛. 거기서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반항심이 고개를 쳐든다.

미안해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누구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해야 정상 아닌가요.

젠장, 당신 코가 석자라 이건가요. 그래도 당신은 성인이잖아요. 나는 아직 열살도 안됐단 말이예요.

맹렬히 솟구치는 반항심을 방광의 괄약근을 풀어버리는 것으로 표현했다.

부채꼴 모양으로 서서히 확산되는 오줌에 엄마가 마른 걸레를 갖다 댄다.

걸레를 세번이나 더 빨고 난 후에야 모든 오물이 말끔히 닦였다.

최후의 한방울까지 뿜어낸 나는 노곤함을 느끼곤 벌러덩 자빠져 버렸다.





아버지의 직업은 교도관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교도관 중에서도 제일 기피직종인 사형집행관이다. 아버지가

근무하는 청송교도소에서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사형이 집행됐다.

아버지와 또다른 두명의 사형집행관이 각자 앞에 놓인 붉은 버튼을 바라본다. 판사의 집행명령이 떨어지자

사형수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하나, 둘, 셋... 동시에 세사람이 버튼을 누른다. 이상하다. 으레

들려야할 기계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가장자리에 있던 뚱뚱한 집행관의 손이 안쓰러울 정도로 떨려온다.

오늘따라 특히 반듯하게 다려 입은 제복에는 잔구김 하나 보이지 않는다. 네모난 안경이 아래로 쳐지자 한

손으로 안경을 매만지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목울대가 크게 확장되면서 힘겹게 침이 넘어간다.

그 소리가 천둥같이 커다랗다. 두 사람은 깊숙히 눌린 버튼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본다. 그의

버튼만 툭 튀어나온 상태다.

"탁"

"철커덕"

아버지가 부지불식간에 남은 버튼을 누른다. 공중에 매달린 사형수는 질퍽한 똥오줌을 뿌려대며 발버둥 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벌어진 철문의 아래쪽에는 커다란 대야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고..맙소"

그가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아버진 괜찮으셨을 것이다. 정말 괜찮았을 거라고 절대적인 확신을 가진다.

눈을 감고 아버지의 표정을 상상해 본다. 기이하게 빛나는 두 눈에 슬쩍 말아올린 입꼬리,

아마 양손을 번갈아 가며 가슴을 치고 싶었을 수도 있으리라.

마치 킹콩이 육식공룡을 쓰러 뜨렸을때 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분명하고도 거침없이 내뱉으셨겠지.

"**년"








나에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언젠가 아버지와 단둘이 저녁을 먹던 날이 있었다.

모임에 갔는지 시장에 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엄마는 집에 없었다.

우리 부자만의 비밀. 감히 짐작조차 못하는 비밀을 공유하는 우리 둘.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것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냉장고 한켠에 서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중이었지만, 둘다 무시했다.

아니, 무시하는 척 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오줌을 지리던날 아버지는 내 입장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고, 나역시 아버지에게는 유일한 지기요 동반자가 되었다.

"네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순사셨다"

잘 익은 갓김치 한조각을 주욱 찢었을때,

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식사를 끝내고서도 세시간가량 더 입을 여셨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할아버지와 우리 조상들의 얘기였다.

그 당시는 다들 굶어 죽기 직전이었다. 늙은 노인과 어린아이들 부터 자빠지기 시작했다. 한 번 자빠지면

누렇게 뜬 얼굴이 시커먼 똥색으로 변해서 죽어버릴 때까지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허기..무서운 허기였다. 일본놈들은 구석에 떨어진 쌀 한톨까지 가져갔고,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조리 싣고

갔다. 갓난 아기였던 아버지는 하루종일 할머니의 젖만 움켜쥐고 있었다. 아무리 빨아도 젖은 나오지 않았

지만 생존본능이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약초꾼이던 할아버지는 어느날 불현듯 집을 나가셨다.

며칠 후

다시 돌아왔을 땐 보리쌀과 고구마를 한수레 싣고 오셨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이었다. 바싹 말라가던 산간

마을이 기적적으로 숨통을 텄다. 이십호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할아버지는 영웅이었다. 어떤 과정을 통해

그것을 얻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은 짐작 했겠지만 입밖으로 꺼내는 우를 범하진 않았

다.

주기적으로 갖고오는 식량수레에 마침내 마을이 자생력을 회복했다.

다시 논밭에 곡식을 심었고, 돼지 두마리로 새끼를 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일본 순사복을 입고 허리에는 장검을 착용했다.

할머니가 정성들여 닦아 놓은 군화를 신고는 읍내로 나가셨다. 할아버지의 앞잡이 노릇덕에 근처에 활동하던 독립꾼들의 씨가 말랐다.

그들에겐 할아버지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일본입장에서는 기특한 충견이었다.

할아버지의 악독한 술수와 고문에 줄줄이 시체가 되어 나갔다.

할아버지가 나서면 독립투사의 할애비가 오더라도 버티지 못했다.

완고하던 그들은 채 사흘도 가지않아 살 맞대고 살던 마누라의 사타구니사이 점 갯수까지도 모조리 토해내

버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은 원폭을 맞았고, 두말없이 항복을 선언했다. 그들이 물러가던 날 할아버지

는 순사복을 벗고 다시 망태기를 집어 들었다.

친일파에 대한 숙청작업이 행해졌지만 다행히 몇 년 간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걸음마를 떼고 말까지 배우자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우리집에 몇명이 살지?"

"네명요"

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할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셨다.

"우리는 세식구뿐이다. 저사람은 우리 식구가 아니야"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그것을 무섭게 노려 보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는 여자가 궁금했지만

딱히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저 아이들과 산으로, 들로 몰려다니며 장난을 치는데 몰두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이 찾아왔다. 붉은색 두건을 이마에 두른 청년 두명이 들이닥친건 이슬도 내리지 않은

꼭두새벽이었다.

"더러운 앞잡이, 장두식이는 당장 튀어나오라"

"우당탕"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질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눈을 떴을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당장 나오라, 개노릇을 했으면 된장이 발려야지"

"우장창"

또다시 장독대 깨지는 소리가 터졌다.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장두식이 여기있다"

할아버지는 순순히 마당으로 내려가 그들 앞에 섰다.

박달나무 몽둥이를 치켜든 그들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퍽.퍽"

할아버지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최대한 몸을 구부렸다.

"아이고, 그만해요 나으리들. 이러다 사람 잡겠어요"

어머니가 울면서 한명의 바짓가랭이를 쥐었다.

"이새끼가 몇명을 죽인지 알아?"

할머니를 거칠게 뿌리친 청년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소리를 질렀다.

"자그만치 34명이야, 34명.. 그중에 우리 첫째형님도 있단 말야, 알아들어?"

청년은 귀까지 새빨개진 채 울부짖었다.

"이새끼 죽이고 다음은 아줌마랑 애새끼 차례니까 억울해 할 것 없어"

둘은 멈췄던 몽둥이질을 다시 시작했다. 몽둥이끝이 붉게 물들자 그들은 잠시 숨을 몰아 쉬었다.

할아버지는 입고있던 옷이 피칠갑으로 변한채 미동도 않고 누워 있었다.

한명이 구석으로 가서 바짓춤을 풀고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그가 툭 던진 박달나무 몽둥이가 무겁게 울렸다. 바로 그때 할아버지가 일어섰다.

몽둥이를 줏어들고 멍하니 있던 한놈의 대갈통을 순식간에 내려 찍었다.

"딱"

기괴한 음향과 함께 대갈통이 박살이 나버렸다. 오줌누던 청년이 황급히 돌아봤을땐 이미 늦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쓰러진 청년의 대갈통을 연거푸 내려 찍었다.

"쩍..쩍.."

두개골이 함몰되고 허연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제법 크게 떨어져 나간 부분은 찾아가서 끝까지

부수어 놓았다. 피칠갑한 할아버지의 악귀같은 모습에 할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남은 한 청년도 할말을

잊고 멍하니 넋을 놓았다. 곤죽을 넘어 반죽을 만든 후에야 몽둥이질은 멈췄다.

"자네도 할텐가"

할아버지의 입이 씨익 벌어졌다. 이빨사이의 틈으로 뻘건 국물이 질질 흘렀다.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쏜살같이 달아났다. 할아버지의 시선이 부엌문 바른편에 서있던 그것을 향했다. 그것은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년이 뒤질라고"

다음날까지 멀쩡하던 할아버지가 이틀째 되던날부터 앓아누웠다.

온몸이 아프다며 밤마다 소리를 질러댔다.

며칠사이에 이가 네개나 빠졌다. 멀쩡하던 생니 네개가 빠지자 할아버지는 급격히 늙어갔다.

죽기전날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불러다 놓고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전래동화인 줄 알고 들었지만, 듣고 나자 은밀한집안이야기 인걸 알았다.

조상대대로 망나니 집안...** 중에서도 가장 **만 한다는 칼춤추는 망나니..

그게 조상들의 직업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임진왜란도 일어나기 전인 먼 옛날부터라고 했다. 죽은 자들의 원혼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소름끼치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누운 상태로 할아버지는 방문 앞에 서있던 그것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버지도 따라서 그것을 보았는데, 난생 처음으로 그것이 무서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의 윗대 조상중 한분이 조선에서 가장 영험한 무당을 불러다 놓고 굿판을 벌였다.

무당의 요구사항이 너무도 많아 그것을 준비하는데만 삼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벌어진 굿판... 엄청난

규모의 굿판에 조선천지에서 구경꾼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한달간의 굿판이 끝나자 무당은 잠들듯 죽어

있었다.

"실패한거네요"

찢어놓은 갓김치를 도로 내려놓은 뒤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마 그랬을테지"

아버지가 애써 냉장고쪽을 외면한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신 건가요?"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는 지금부터라는 듯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할아버지에게 얘기를 들은 다음

날 사단이 일어났다. 바로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기억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 아버지가 밤중에 반사적으

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뭔가가 관통한 듯이 놀라서 깨어난 것이다. 옆을 보니 할머니가 곤히 주무시고 계

셨다. 다행이다. 다시 그 옆을 할아버지가 눈을 뜨고 있었고, 그위에 그것이 올라타 있었다.

그것이 그만큼

가까이 간것을 본적이 없던 아버지는 불현듯 공포심을 느끼고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서웠다. 오줌이 나올것 같았다. 어떻게 됐을까.

죽었을까. 호기심은 죽음과도 맞닿아 있다고 누가 그랬던가,

아버지는 끝내 이불을 들추고 할아버지를 보고 말았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얼굴과 팔꿈치 하나의 거리를 둔 채 마주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할아버지의 목에 뒤엉켜 있어 숨도 못쉬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다.

"스윽"

그것의 손이 이마로 향한다. 그것의 손을 보기는 처음이다. 뼈만 남은 앙상한 손. 그 손이 천천히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좌우로 걷기 시작했다.

"억"

아버지의 뇌가 위험하다고 경보음을 울렸다. 심장이 발작적으로 쿵쾅거리고 전신의 털이 거꾸로 솟구쳤다.

"그래서 보..보셨나요?"

열린 창문도 없는데 싸늘한 한기가 한가닥 흐른다.

"못봤어"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잔건지 기절한건지 일어나 보니 아침이었어"

"그럼 할아버지는요?"

"죽었어"

내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쏜살같이 대답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워 비명을 지를뻔 했다.

"얘기는 여기까지다, 너에게 더 알려줄건 없어"

아버지와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아버지는 모두 얘기했다 했지만 사실은 한가지가 더 남아 있었다.

차마 그것까진 말못하셨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난 그것마저도 알아냈다.






할아버지가 죽자 그것은 아버지에 대물림되었고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다.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난 후부

터 부쩍 성숙했다. 어린 나이에 세상사의 많은 것을 깨우친듯 했다. 세수를 할때나 자려고 누웠을때 좌우로

고개를 흔든다. 맹렬히 거부해 보지만 성숙한 이성은 그것이 진실이라고 매몰차게 말해주었다.

아버지가 죽으면 나한테 오겠지. 가만히 상상을 해본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밤 골목길..쥐새끼 하나 없는 그곳을 우연찮게 걷고 있다.

괜스레 무서운 생각이 들어 잰걸음을 재촉한다.

한번 자라난 생각은 기하급수적으로 거대해져서 종국에는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인다.

온갖 끔찍한 상상들이 한꺼번에 떠오르자 참지 못하고 뛰기 시작한다. 저만치 앞에 검은 형체가 서있다.

놀라서 심장이 멎는듯 하다. 자세히 보니 쓰레기봉지다.

아..깊은 안도감에 온몸이 축 늘어진다. 스스로가 바보같이 꿀밤을 한대 때린다.

무심코 옆을 보자 색동한복의 귀신이 비틀거리며 걸어온다. 맙소사 색동한복이라니..

다시 미친듯이 뛴다. 한참을 뛰다가 트럭에 달린 대형 반사경을 본다.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며 그것이 달라붙고 있었다.

"우아악"

또다시 미친듯 달린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멈추면 안된다. 저만치 모퉁이가 보인다. 저기로 숨어야

겠다. 그곳으로 달려간다. 이럴수가..아찔한 상실감에 주저 앉아버렸다. 그곳은 시멘트 벽으로 막혀 있었

다. 눈을 힘껏 감고 그 위를 손바닥으로 한번더 가린다. 귀신이 코앞에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결코 나를

만지지는 않는다. 언제까지나 서서 나를 지켜볼것이다. 언제까지나...

 

 

 

출처: 오늘의유머 인중없는아이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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