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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재수시절, 학원선생님께 들었던 박수무당썰

한량이2019.05.31 17:08조회 수 162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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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푸른거탑을 보다가 우연히 무당이야기가 나오길래, 

불현듯 재수시절 학원 선생님 한 분이 말씀해주셨던 박수무당 얘기가 떠올라서 이렇게 잠깐 글을 남겨 봅니다. 


수험생활을 경험해보신 분이라면 누구든 아시겠지만, 

여름은 시기상으로 지칠 시점일 뿐 아니라 더위 때문에 수험생들은 이중고를 겪습니다. 

더군다나 재수생은 말할 나위도 없구요. 

그래서 재수학원 선생님이 저희들을 위해서 더위도 피해가고 쉬어갈 겸 무서운 이야기 몇 편을 해주셨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야기는 편의상 반말로 진행하겠습니다.
 
 
 
그 선생님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현재는 학원강사로 유명세를 날리고 계신 분이였다. 

비록 사법고시는 나이탓에 중도에 포기하셨지만, 유명세만큼이나 돈을 많이 버시는 것으로 들었다. 

나이가 40대 중반 정도 되신 분이였는데, 대략 60년대 중,후반생이셨던 것 같다. 

조부가 한학자셨기 때문에, 마치 청학동과 같은 분위기와 같이, 엄한 가정교육 아래서 사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분은 방학이 되면 집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큰아버지댁에서 지내셨다고 한다. 

그곳에는 선생님을 친아들처럼 아끼시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그리고 조부가 계셨다고 한다. 

보통 사람 같다면 집을 떠나

(수도권이 아니였으며,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선생님댁이 대전이였다면 큰아버지댁은 서천, 광주였다면 해남 이런 식으로 그리 멀지는 않았다.) 

큰아버지댁에서 머문다는 게 그다지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할아버지는 5대 독자셨고 그래서 겨우겨우 6.25도 피해가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시고 큰아버지와 그리고 선생님의 아버지를 낳으셨다. 

물론 큰아버지를 낳으시고, 

아들을 하나 더 낳으시려고 딸을 넷이나 줄줄이 더 낳으셔서 총 2남 4녀에 선생님의 아버지는 막내셨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웃긴 게 할아버지를 모시던 큰아버지에게는 딸만 셋이고 아들은 없으셨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눈치챌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선생님을 예뻐하시고 극진히 보살폈던 것이다. 

사실 선생님도 위에는 줄줄이 누나 셋에 마지막에 막내로 태어나셨다고 한다. 

방학마다 할아버지댁에 선생님이 가셨던 것도 그러한 조부와 큰아버지의 총애탓이였고, 

선생님도 어렸을 때 예뻐해주셨던 큰아버지와 특히 할아버지가 좋았기 때문에, 매번 방학에 가는 것이 즐거웠다고 말하셨다. 

방학이 되면 한학자셨던 할아버지는 선생님에게 한자와 서예를 가르치셨고, 

선생님이 조르는 것이면 대부분 다 해주셨다고 한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난 후, 선생님은 고등학생이 되어 학업 때문에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선생님의 아버지는 물론 자식의 학업도 중히 여기셨지만,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큰아버지, 그리고 누나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벗어나기가 곤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학교 주변에 자취방을 구하고, 거기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집안이 전통적인 것을 중시하는 집안이다보니, 

증조부나 고조부의 기일이 있는 경우에는 선생님도 빠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주말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평일인 경우 학교를 마치자 마자 큰아버지댁으로 버스를 타고 내려가고, 

다음날 아침이면 다시 올라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한창 대입을 준비하던 고3 수험생 생활이였다고 했다. 

선생님의 부모님은 학업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고, 선생님도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또한 스스로도 그것을 원했기 때문에 굉장히 열심히 공부를 하셨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가풍은 가풍인지라 학업도 중요했지만 기일이 되면 빠질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창 공부에 지치셨던 선생님은 그날도 학교를 일찍 파하고 할아버지댁을 찾아가 기일에 참석하셨다고 한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본고사라는 것이 끝나고 학력고사가 실시된 지 얼마 안된 시점이였다고 하셨다.

(수능세대 전인 학력고사였다고 하더군요.) 

제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할아버지께서 선생님의 손을 잡으면서

(편의상 ‘길동’) “길동아, 넌 우리 집안의 7대 독자나 마찬가징게, 우리 집안에서는 네가 가장 중허다. 알겄지야?” 

라고 마치 마지막 인사를 하시는듯 손을 꼭 잡으면서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 당시 선생님도 많이 예뻐해주셨던 할아버지를 잘 따르기도 했지만, 

시험공부에 지쳤기 때문에 어서 집으로 돌아가(아침에 떠나기 위해서 본래 아버지, 어머니랑 할아버지댁 근처 지역의 집) 자고

 내일 아침 다시 학교로 돌아갈 생각 뿐이였다고 한다. 

더군다나 제사가 새벽12시쯤이 되서야 시작했고, 제사를 마치면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간이였으니 더더욱 피곤하셨었다고 한다.
 
 
시험이 일주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은 흔한 말로 똥줄을 타며 피곤하지만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전기대, 후기대라는 것과 선지원 후시험 제도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공부를 꽤 잘하셨는데 지원을 이미 해놓고 시험을 기다리시는 상황이셨다고한다.

(공부를 꽤 잘하셨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중 하나라고 들었다.) 

또한, 선생님 집안이 머리가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큰아버지댁 누나들이나 친누나들 모두 그런 영향탓 인지 모두 명문대에 들어가서, 

선생님 역시 이름 꽤나 날리던 고등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다툴 정도의 실력이였지만, 

혹시나 잘못하여 집안에 누가 될까봐, 항상 불안한 마음과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의 조부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비록 시험은 코앞이긴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당연히 장례에 참석해야 했고, 

특히나 자신을 매우 아껴주셨던 분이기에 시험도 시험이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더욱 강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듣자마자 조부댁으로 내려가셨다고 한다. 

당시 3일장을 하였는데, 선생님의 부모님들과 집안의 어른들께서는 2일되시는 날 저녁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만 올라가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 당시만 해도 집안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던 분위기였기 때문에, 

다른 누나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지만선생님은 7대 독자나 다름없는 신분이였기 때문이다. 


‘너는 집안의 기둥이기 때문에 시험이 얼마남지 않았으니 그만 올라가서 공부허는게 맞다, 네 할아버지께서도 그것을 원하실것잉게’. 

어른들이 모두 이런 식으로 얘기하셨기에 비록 마지막 작별인사격인 발인일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크게 아쉬웠지만, 

선생님은 할아버지께서도 그것을 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학교로 올라가서 공부에 열을 올리셨다고 한다.
 
 
불과 며칠 뒤, 선생님께는 장례와 관련해서 일이 있으니 어서 집에 내려오라는 소식을 부모님으로부터 급하게 들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적잖케 당황하셨다. 

왜냐하면 시험이 불과 5일 앞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늦은 시간이였기 때문에 다음날 차편이 생기는대로 바로 집으로 내려가셨다고 한다. 

허겁지겁 집에 도착해서 큰아버지댁으로 가셨는데, 집안은 꽤 뭔가로 바쁜 분위기였다고 한다.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도 몇 보이고, 마당에 무당 한명이 있는데 분명 화장을 하고 단장을 하였지만, 

남자무당, 즉 박수무당이였다고 한다. 

정신없이 도착한 선생님은 물 한 잔 마실 겨를도 없이 굿판을 지켜봐야 했다. 

어른들과 그 박수무당은 선생님이 도착하자마자 얼른 굿을 시작하자고 재촉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날 굿이 끝나고(굳은 이튿날에도다시 이어졌다고 한다.) 

선생님은 부모님께 저를 왜 그렇게 급하게 집으로 내려오라고 하셨는지, 

또 큰아버지댁 마당에 있는 박수무당은 무엇이며 굿은 왜 하는 것인지 물으셨다고 한다.
 
 
사실 선생님이 마지막 발인을 지켜보지 못하고 떠난 후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장례는 지금처럼 병원에서 하지 않고(또 큰아버지댁 자체가시골쪽이였기 때문에 그러셨다고 한다.) 

큰아버지댁에서 치렀다고 한다. 

그런데 선생님이 떠나고 난 후, 가족들 모두 밤을 새고 피곤에 지쳐서 꾸벅꾸벅 하나 둘 잠이 들었는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큰아버지께서 상주셨지만, 큰아버지는 잠깐 영정이 있는 마루가 아닌 작은 방으로 가서 잠시 눈을 붙이셨다고 한다. 

그래서 대신 아버지께서 영정 앞을 지키시다가 깜빡 잠들어서 꿈을 꾸었는데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무언가 잃어버리신양 애달프게 슬퍼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지키고 계셨던 어른들 모두 그 꿈을 꾸셨다는 것이였다. 

발인을 하러 가려는 찰나, 일가 어른 한 분이 무당 한명과 함께 오셔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이유인즉, 그 분은 미신을 굉장히 잘 믿는 분이셨고 그래서 아는 무당이 근처에 있었는데, 

그 일이 너무 기이하여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무당에게 다녀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무당은 큰아버지댁에 들어선 지 얼마되지 않아, ‘발인 멈추고 어서 막내아들 불러와’ 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 누구도 무당에게 우리 가족관계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너를 이리 급하게 부르게 된 것이였고, 

그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르고 아마 할아버지가 너를 마지막에 못보고 가서 그런 게 아닌가 하고 추측만 한다는 것이다.
 
 
이튿날이 되어 굿이 다시 시작되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굿을 하던 무당이 멈추어 서더니 선생님의 아버지를 지목하시고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직후 선생님의 아버지께서는 굿판 한가운데 나오셔서는 정말 애절하고 구슬프게 눈물을 흘리며 우셨다고 한다. 

그리고서는 정말 놀랍게도 아버지 입에서는 할아버지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목소리, 어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내가 있는 쪽으로 오셔서 두 손을 꼭 잡고는 할아버지 목소리로


 “길동아, 할아부지가 많이 미안헌디, 우리 길동이 얼굴 마지막으로 안보고 가믄 편히 가지 못할것 같아서 그럈어. 

길동이너는 우리 집안의 기둥인게 부모님이랑 누나들한테 잘허고, 꼭 잘되야쓴다. 

이 할아부지가 우리 길동이 앞길 잘 보살펴 줄탱게 걱정일랑 하들말고.. 잉?알겄냐 길동아?” 


하시고 대략 20분 가까이 내 앞에 서서 비슷한 얘기를 매우 슬프게 하셨다. 

당시 선생님 역시 무서움보다는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못했다는 죄스러움으로 같이 서럽게 우셨다고 하고, 

주변의 가족을 비롯한 친척들 역시 모두 울어 한순간에 큰아버지댁은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옆에 있던 무당은 안타까운 듯이 쯧쯧 거리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날 할아버지의 발인은 잘 이루어졌고, 

그 날 저녁 선생님은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동안에도 눈물을 계속 흘리셨다고 한다.
 
 
 
선생님이 학교 근처의 자취방으로 돌아왔을 무렵에는 시험이 불과 삼 일 앞으로 다가왔고, 

선생님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이틀밖에 없었다고 한다. 

시험도 얼마남지 않은 시점에, 제사에, 할아버지 장례에, 굿에 시간도 시간이지만,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최선은 다하셨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번 시험이 잘되지 않으면 재수를 하기로 마음속으로는 결심하셨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전기대, 후기대가 있었지만, 사실상 후기대는 좋지 않은 대학들이였기 때문에 

전기대 떨어지면 상위권 학생들은 사실상 입시에 실패한 것이라고 하셨다.) 

남은 이틀동안 죽어라 남은 내용들을 정리하였고, 시험 전날에는 선지원했던 대학주변에 올라갔고 이튿날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그런데 선생님도 의아한 것은 

당시 그 대학에 지원했던 학생들 모두 생각했던 것보다 시험이 너무 어렵게 출제되서 다들 좌절하고 있는데, 

시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선생님은 공부하면서 봤던 내용들이고 생각보다 쉽게 느껴졌다는 것이였다. 

그렇게 선생님은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물론 명문대에 당당히 합격했다고 한다. 

선생님과 가족들은 그 일을 두고 할아버지께서 보살펴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선생님은 아직도 할아버지 기일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시골에 내려가서 꼭 인사를 드리고 온다고 하신다. 
 
 
실제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썰을 풀어논 것이구요. 

이 내용을 들은 후 수업을 듣던 반 학생들은 모두 눈시울을 적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래지는 않았지만 기억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일부 세세한 표현같은 것들은 각색된 부분이 조금 있을 수 있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이외에도 선생님께서 들려주셨던 얘기들이 있는데, 지금 새벽이라 졸려서 오늘은 이만 들어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 기회되면 썰 더 풀어놓겠습니다. 그만 자러갈게요. ㅂㅂ

 

 

출처 : 오유.흘러흘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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