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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테두리 없는 거울> 계단의 하나코 - 프롤로그

여고생너무해ᕙ(•̀‸•́‶)ᕗ2017.03.31 10:25조회 수 47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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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재는 출판사 아르테의 협찬으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이 학교의 하나코는 계단에 산다.

두 번째, 하나코와 만나고 싶으면 하나코가 사는 계단을 진심을 다해 열심히 청소할 것.

세 번째, 하나코가 주는 음식을 먹으면 저주를 받는다.

네 번째, 하나코의 질문에 거짓말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

다섯 번째, 하나코가 상자를 줘도 받으면 안 된다.

여섯 번째, 하나코에게 부탁할 때는 하나코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일곱 번째, 하나코가 내리는 벌은 계단에 갇히는 무한 계단의 형벌.


유령을 본 사람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눈앞에 있는 건 당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것을 뭐라고 생각하든 그것은 당신 마음이다.


프롤로그


아이들이 모두 집에 돌아간 뒤의 학교. 한낮의 시끌벅적함은 온데간데없고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나무 바닥으로 눈길을 돌리니 흙탕물에 젖은 듯한 실내화 자국이 군데군데 보였다.


대걸레로 실내화 자국을 닦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이 학교의 하나코는 계단에서 나온다.

1학년 때부터 아이들과 자주 얘기했던 학교의 일곱 가지 수수께끼.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닦아 내려온 3층과 2층에 걸친 계단. 층계참에서 뒤를 돌아보니 서창으로 짙은 노을이 스며들어온다.

왠지 울컥했다.


마음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처럼 어두운 불안이 엄습했다.

대걸레로 문질러 발자국을 지웠다.

고개를 들고 양손으로 자신의 몸을 꽉 감싸 안았다.


-너는 하나코랑 친구하면 되겠다.

괴물끼리는 서로 통할 거아냐?


작년 여름방학 때 사유리는 자유 연구 숙제로 ‘와카쿠사미나미 초등학교의 하나코’에 대해 연구했다.

친구가 있던 1학년 때 수업을 마치고 늘 나누었던 이야기. 공부도 못하고, 남들이하는 과학이나 사회 연구와는 동떨어진 주제라 조금 걱정이 됐지만 선생님은 칭찬해주셨다.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기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보던 하나코는 주로 화장실에서 등장하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옛날부터 계단에 등장한다.

학교 괴 담 중에는 ‘일곱 가지 불가사의’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 학교 하나코에게도 일곱 가지 불가사의가 있다.

그런 무서운 이야기를 도시 전설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알게 됐다.

전국 각지의 학교에 존재하는 유령 하나코. 학교 몇 층의 몇 번째 화장실에 살며, 어떻게 하면 불러낼 수 있고, 어떤 일을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지. 수학여행에서 사고로 죽은 학생의 유령이라는 학교도 있고, 화장실에서 목매 죽은 여자의 유령이라는 곳도 있다.


우리 학교의 하나코는 옛날에 음악실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소녀의 유령이다.

그래서 그때 생긴 흉터가 얼굴에 남아있다고 한다.

지금 6학년인 아이들이 1학년이었을 때부터 들어온 이야기.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하나코의 특징을 다시 한번 써보면 재미있다.

그런데 발표하는 도중 뒷자리에 앉은 여자애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런 건 일부러 조사할 필요 없잖아. 사유리는 거저먹기로연구했네. 그 아이들이 슬쩍 자신을 봤다.

그러고는 킥킥거렸다.


-괴물이 귀신 연구를 하다니 정말 웃긴다.

그런데 왠지 잘 어울려.


학교 괴담.

고개를 떨구었다.

그 아이들이 자신을 괴물이라고 부르는 건 알고 있다.

1학년때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아이들마저 사유리의 곁을 떠났다.

뒷소리에는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도 있다.

하지만. 얼굴을 떠올리니 팔이 욱신욱신 쑤셔온다.

계단 청소를 깨끗이 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팔에 박힌 그 쓰라린 아픔. 여전히 아프다.


사실 하나코는 전혀 무섭지 않다.

학교에서 정말 무서운 건, 그건…….


층계참에 놓은 양동이에 걸레를 담갔다.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걸레를 빨고 나머지 계단 청소를 하려고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왜, 청소하고 있어?


등 뒤에서 갑자기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방향을 돌아봤다.

그리고…… 놀랐다.


-언제 온 거지?


여자아이 하나가 게시물을 빽빽이 붙여놓은 벽에 기대듯이 우두커니 서 있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단정하게 정돈된 짧은 단발머리에 새하얀 블라우스와 빨간색 스커트. 그 모습을 마치 어디선가 본 것만 같다.

문득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마루(인기 애메이션의 주인공으로 귀여운 단발머리가 특징—옮긴이)가 떠올랐다.

옛날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했던 아역 배우가 의상과 가발을 그대로 착용한 채로 브라운관에서 빠져나온것 같다.

축제 때 파는 여우 가면의 눈처럼 눈매가 가늘다.


“청소는 왜 해?”


그 아이가 또 물었다.

눈도 전혀 깜빡거리지 않고 사유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넌 누구야?”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아까 뒤돌아봤을 때는 분명히 없었는데. 밑에서 올라오는 발소리도 듣지 못한 것 같다.


“몇 학년?”


질문하면서 얼굴을 확인했다.

치켜뜬 채 올려다보던 눈이 가늘게 구부러지며 웃는데 마치 반달 같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이 학교 애들 얼굴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언제부터 있었어? 있는 줄 몰랐는데.”

“계속 있었어.”


청소를 하는 사유리의 손끝에 달린 대걸레를 그 아이가 쳐다봤다.


“청소는 왜 해? 다른 애들은 다 집에 갔는데. 여긴 2반 아이들이 다 같이 청소하는 곳이잖아?”


키나 체격으로 볼 때 4학년보다 위 학년 같지는 않다.

2층에서 3층에 걸친 이 계단은 사유리의 반인 3학년 2반의 청소 담당 구역이다.

학년을 묻지 않고 2반이라고 말한 걸 보면 나랑 같은 3학년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옆 반인 1반에는 입학식 때부터 쭉 학교에 나오지 않은 여자아이가 있다.

사유리는 한 번도 그 아이를 본 적이 없지만 유 치원에 같이 다녔다는 애들이 얘기해줬다.

학교에는 오지 않아도 방과 후에는 가끔 아이들과 어울려 논다고 한다.


“……야부우치?”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만약 그렇다면 이 아이는 사유리가 동경하던 존재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니 정말 부럽기 짝이 없다.

사유리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여자아이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근데, 있잖아, 하면서 아이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왜 혼자 청소해?”

“다들 집에 갔으니까.”


다들 하지 않는다고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으면 혼날 것이다.

그 생각을 했더니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긴장했는지 또 배가 아파온다.


“선생님한테 혼나니까.”

“흐음.”


여자아이는 가느다란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치마 뒤로 손깍지를 낀 채 사유리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쳐다보더니 갑자기 사유리에게 다가왔다.

피부가 하얀 아이였다.

층계참 구석에 벽의 그림자가 드리워 얼굴만 붕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닿으면 화상을 입었던, 아이스크림 가게의 드라이아이스 같은 냉기가 느껴질 것 같아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새하얗고 매끈한 얼굴.


“하지만 매일 하잖아.”


놀라서 “어? 어…….”라고 말했다.

아무 말 없이 얼굴을 바라보니 여자아이가 말을 이었다.


“아오이 사유리, 매일같이 열심히 청소하잖아.”

“내 이름을 알아……?”


청소에 대해선 어떻게 알지? 마치 봐오기라도 했던 것처럼.


“힘들지 않아?”


가느다란 눈 사이로는 표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늘 혼자서 위에서 아래까지 청소하잖아.”

“힘들긴 해. 그래도 전에 읽던 책에 이런 게 있었어.”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여자아이의 키는 사유리와 거의 비슷하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하얘 보이는 얼굴과 그와 대조적으로 칠흑 같은 새까만 머리카락 때문에 멈칫했다.


“한꺼번에 모든 걸 생각해선 안 돼. 다음 한 걸음, 다음 한 호흡, 다음 한 번의 비질만 생각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청소가 즐거워지고, 즐거우면 청소가 힘들지 않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모두 다 끝이 나 있어.”


여자아이가 이상한 것이라도 발견한 듯이 사유리를 쳐다봤다.

눈을 깜빡일 때 아래로 향하는 속눈썹이 아주 길다.

사유리는 천천히 말했다.


“『모모』라는 책에 나오는 얘기야. 주인공 모모의 친구이자 거리를 청소하는 베포 아저씨의 말인데, 힘든 일을 할 때는 다 음에 할 일만 생각하고 기다리면 돼.”

“그거.”


입술을 통해 나온 투명한 목소리가 마치 공기 속을 부유하는 것 같다.

동그란 빗방울이 잎사귀 위에서 튕기는 느낌이다.

그래, 이 아이의 목소리는 기계에서 나오는 전자음이랑 비슷하다.


“어떤 이야기야?”

“모모라는 이름의 여자아이가 주인공인데 시간을…….”


설명하려고 책을 떠올렸다.


“읽고 싶어?”


물어보니 여자아이는 고민하는지 아무 말이 없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은 사유리를 계속 좇으며 턱 끝만 목에 파묻는다.


“잠깐 기다려.”


사유리는 오늘 그 책을 가지고 왔다.

반납하려고 했지만 어쩌다 보니 가방 속에 계속 넣고 다니게 됐다.


“내가 빌려줄게.”


교실로 달려가려고 했을 때 그 아이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고 앞머리가 흔들렸다.

그 밑으로 깜짝 놀랄 만큼 검붉은 상 처가 보였다가 또다시 앞머리가 찰랑거리며 이마를 감췄다.

봐서는 안 될 걸 본 것 같아 바로 그 아이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교실로 달려갔다.

책은 아무 때나 돌려줘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짧아도 좋으니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


2층에 있는 교실로 돌아와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안에는 감상문을 적은 편지지가 끼어 있다.

종이를 뺄까도 생각했지만 어쩌면 야부우치도 사유리처럼 편지를 쓸지 모른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틀림없이 기뻐하시겠지. 책을 빌려준 것도 착한 일이라며 칭찬을 해주실지 모른다.


책을 갖고 돌아오기까지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층계참으로 달려갔을 때 아까 그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야부우치?”


3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 좌우의 복도를 둘러보며 이름을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다.

집으로 돌아간 걸까? 아니면 어디에 숨은 건가?


“야부우치? 어디 있니?”


아직 학교 어딘가에 있다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가 서 있던 벽 끝에 책을 놓았다.

주인공 모모와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뒷모습이 그려진 노란색 표지. 내일 아침 일찍 학교에 와서 이 책이 그대로 있으면 그때 도로 갖고 가도 된다.


“야부우치.”


다시 한 번, 아까보다 좀 더 소리를 높여서 불렀다.


책을 갖고 돌아오기까지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층계참으로 달려갔을 때 아까 그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야부우치?”


3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 좌우의 복도를 둘러보며 이름을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다.

집으로 돌아간 걸까? 아니면 어 디에 숨은 건가?


“야부우치? 어디 있니?”


아직 학교 어딘가에 있다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가 서 있던 벽 끝에 책을 놓았다.

주인공 모모와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뒷모습이 그려진 노란색 표지. 내일 아침 일찍 학교에 와서 이 책이 그대로 있으면 그때 도로 갖고 가도 된다.


“야부우치.”


다시 한 번, 아까보다 좀 더 소리를 높여서 불렀다.


“또 보자.”


하나코의 일곱 가지 불가사의. 그중 하나. 이 학교의 하나코는 계단에 삽니다.

층계참에 울려 퍼진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자유 연구를 떠올렸다.

문득 바닥을 보니 조금 전까지는 없었던 물기 어린 발자국이 있다.

작은 실내화 자국.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유령은 다리가 있을까?


벽에 세워둔 책을 슬쩍 쳐다본 후 그 자리에 놓았던 대걸레를 손에 쥐었다.

조금 전까지의 들뜬 마음은 수그러들고 손가락이 희미하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또 청소를 더럽게 했다는 말을 들을지 모른다.

혼이 날지도 모른다.

고개를 저은 후 다음 한 번의 걸레질을 생각하며 아오이 사유리는 다시 계단으로 돌아왔다.


(계속) 계단의 하나코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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