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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무당할머니를 둔 사람의 일화들

title: 하트햄찌녀2023.01.27 10:34조회 수 4603추천 수 4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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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대학다니고 있는데요,


고등학교때까지 충주에서 살았습니다.



충주 거의 외진 곳이고

대학진학률도 거의 제가 제일 잘 갔다 싶을 정도로

고등학교에서 끝나는 곳에 살았어요.



고등학생이 전교에서 30명도 안되는 곳이었구요.



우선 저희 외갓집이 무당이 많습니다.

증조모랑 할머니께서도 신내림 받으시고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무당집인데요.



그 때문인지

저도 어릴 때부터 신기한 일들 많이 겪었구요.



먼저 제가 9살때 겪은일 인데요.



마을 동네 어귀에 목장이 하나 있었어요.



소 50마리 정도?

제 기억으로는 그래도 큰 곳이었는데요.



제가 그 집 아들하고 어릴때 같이 놀던사이인데요.



시골이라 놀 친구들 또래가 몇명 없었죠.



여하튼 친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느날은 그 집 목장에 놀러갔는데

소들 있는쪽에서 소들이 막 우는겁니다.



그때 목장구조가 집이 있으면

목장은 한 30m떨어진 곳에 있었는데요.



유럽처럼 울타리 처진 곳이 아니라

시골인데 벽돌로 쌓아서

큰 집처럼 만든 형태였어요.



소들이 울어서 그곳에 갔죠.



가끔씩 소 보러 들어가곤 했는데요.



거기에 어떤 할아버지가

소들 뿔을 잡고서 서있는겁니다.



제가 입구로 들어갔을 때 뒷모습만 보였거든요?



그런데 그할아버지가

소 몸뚱아리 쪽으로 손을 쑥 넣더니

소가 침을 흘리면서 쓰러지더라구요.



제가 멀리서 봤는데

그 할아버지가 뒤돌더니 저를 보더군요.



그런데 그 생김새가 아주 끔찍하더군요.



지금도 꿈에 간혹 보이긴 하는데요.



그 뭐랄까

눈두덩이가 부어서 부패됬다고 해야되나?



지금에 와서야 비유를 자세히 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물이 사람죽으면 부패된 시신 보셨습니까?


그런 모습이었어요.



저 어린 마음에 엄청 놀라서 집으로 도망갔죠.



당시 친구집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부르면 나오곤 했는데 그날따라 없더군요.)

집으로 가서 어머니 아버지한테 다 말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더군요.



그 날 마을에서

소 죽은거에 대해서 얘기하는것 같더군요.



저희 할머니가 무당이라고 했는데

그땐 할머니가 무당일 그만하시고 계셨는데요.



제가 할머니한테 말하니깐

할머니가 저한테

아이구 손주 너도 신기가 있나보구나

하고 할머니랑 아버지랑 소 축사에 갔는데요.



할머니가 보시더니

이 집 할아버지가 무덤자리가 안 좋아서

화풀이 한다고 무덤 가보자고 했죠.



그래서 마을 어른들 다 무덤에 갔는데요.



글쎄 농수로쪽에서 물이 새서

그 집 할아버지 무덤으로 스며든겁니다.



그냥 봐도 땅이 온통 축축했죠.



어른들끼리 나중에 무덤옮겨드리기까지

한 3마리 더 죽더군요.



그 짧은시간에 옮긴 후에

할머니가 잘했다고 말해주시더군요.



근데 부모님들은 저 보고 그때 걱정 많이 하셨습니다.



얘도 신 받으면 어떻게 살까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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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외증조모와 외할머니께서 무당이신 관계로

오늘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출처는 할머니구요.



우리나라 무당중에 몇%가 진짜라고 생각하세요?



할머니께서 그러시는데

진짜 신 받은 사람은

무당 100명이 있으면

3명 정도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릴 때라 제대로 기억은 안 나는데

저 정도가 맞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사람들한테 집에 우환있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다시 온다면서

사람들 등처먹는거고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런 사람들은 사람들 등처먹다가

악귀가 붙어서 고생한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때는 1930년대로

할머니께서 꽃다운 나이였을 때였습니다.



일제가 지배하던 시기였죠.



증조모께선 무당이셨고

증조할아버지께서 젊을 때 돈을 좀 모았는데

증조할아버지 친구분이 독립운동가셔서

자금을 대주셨다고해요.



그런데 독립활동을 하는 줄 모르시고

돈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주신거죠.



그런데 그만 일이 터진 게

일제가 대대적인 독립운동가 색출작전이

국내에서 있었다고 해요.


(정확한 사건은 모르겠는데

여하튼 그렇게만 말씀해주셨던 ;;)



당시 할머니가 살던 마을엔

독립운동가랑 관련된 인물들이

하나 둘씩 잡혀가고 있었고

할아버지 친구도 결국 순사에게 잡혀가게 되었죠.



그래서 외증조께선 내내 불안해 하셨죠.



그러다 결국 일이 터진겁니다.



순사들이 잡으러 온다는 소리가 들린거죠.



순사들은 저희 증조부께서도

독립운동을 하시는 줄 알고 잡으러 온거죠.



가족들은 짐도 챙기지 못한 채 도망가기 시작했죠.



그렇게 며칠간 추적을 당하고

결국 할머니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잡히게 되었죠.



할머니는 혼자 도망가기 시작했죠.



순사들이 끈질기게 계속 추격을 했더라고 해요.



어느날 밤 낯선 마을 어느 집 창고에

숨어서 자고있는데

밖에서 순사들이 수색을 하기 시작했죠.



막 창고에 들어오려던 찰나에

순사들이 겁에 질린 듯 뭔가를 보더니

집에서 도망을 가더랍니다.



그래서 보니깐 증조모 증조부가

흰 옷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가엾다는듯이 할머니를 보았다고 해요.



할머니께선 그때 안 거죠.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요.



결국 할머니께선 그렇게 떠도시다가

제가 살았던 충주에 정착하셨고


조상신 중 한 명을 신으로 받아서

무당이 됐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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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서 증조부 증조모를 보신 후에

또다시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셨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신기때문에

고생을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어느 땐 아무 이유없이 몸이 아프다거나

헛것이 보인다거나 하는식으로요.



그래도 그때는 그 횟수가 많지 않았다고 해요.


한달에 한번쯤 그런식으로..



할머니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해요.



워낙 밥도 많이 못먹고 고생도 많이 하셔서요.



당시 십대 소녀가 홀몸으로 떠돌면서

산다는 게 쉽지 않았죠.



게다가 당시 일본의 통치가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식량수탈이 심해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요.



할머니께선 이곳저곳 전전하시다가

결국 사람많은 경성까지 왔다는군요.



할머니께선 경성에 있는 어느 부잣집에

(일본 관료직에 연줄이 닿아서 잘 살았나 보네요.)

일하는 분으로 들어가셨는데요.



아마 애기들 볼 여자아이가 필요했나봐요.



시장에서 일하시다가 주인집 소개로 들어가셨대요.



그렇게 일을 보게 되었는데요.



그렇게 일을 시작한지 몇달 후에

신기한 일을 겪으셨다고 해요.



어느날 밤에 그 집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데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리더랍니다.



그때 집에 주인내외는 나가있으셨고

거기 밥해주시는 아주머니랑 할머니

둘이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고 해요.



당연히 나이가 어린 할머니께서

문을 열어주러 나갔는데 아무도 없더랍니다.



그래서 잘못 들었나 하고 문을 닫았는데

또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고해요.



할머니께선 문을 다시 여셨는데

웬 일본군복 입은 청년 둘이서 문밖 에 서 있었죠.



한 청년은 손에 보자기를 들고있었대요.



그런데 그 청년 중 보자기를 든 한 명이

아무 말 없이 할머니를 보더니

여기 주인 있으시냐고 묻더래요.



할머니께선 주인내외 나갔다고 말씀드리니깐

그 청년 중 한명이 기다리겠다고 말씀하셨데요.



주인어른 꼭 뵈어야 된다면서요.



주인내외 기다리겠다고 할머니께 말하고선

들어가도 되냐고 묻더래요.



그래서 손님접대하는 곳으로 안내하고

차를 주려고 하는데

마침 주인내외가 들어오더래요.



할머니께선 차 두 잔하고

주인내외 차 두잔해서 내갔는데

주인어른이 왜 차 4잔이냐고 하니깐

할머니는 당황해서 있었지요.



한분 어디갔냐고 하니깐

그 보자기 든 청년이 무슨 소리냐고

자기 혼자왔다고 이러는 거예요.



그리고 주인내외한테 이렇게 말했대요.


"종길이가 중국인들한테 총을 맞고 사망했습니다. "



이러면서

보자기를 푸니깐 거기에 유골함이 있더래요.



그러니깐 주인내외가 막 통곡을 했다고 하네요.



알고보니 그 종길이란 사람은

일본에 유학을 갔다가 장교로 중국에 갔던,

주인내외의 큰아들이었다는군요.



그런데 놀라운건 예상하셨겠지만

할머니께서 본 그 두 청년 중 한명이

바로 종길이었다는거죠.



주인내외가 막 울면서


"종길이가... 종길이가...

내년 봄이면 집에 오겠다고 그렇게 편지를 했는데..."


이러시면서 흐느끼셨다네요.



할머니는 너무 놀랍기도하고 겁나기도 하셨다는군요.



그 후에도 계속 그 집에서 한동한 일했는데

밤마다 꿈속에서 그 종길이란 남자가 나와서

매일 집으로 들어와서

흐느끼는 꿈을 꾸셨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후부터 이상한일이 자꾸 생기게 되었어요.



밤에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지를 않나,

아이들이 밤새도록 울어댄 적도 있고요.



비가 올 때마다 우는 소리가 자꾸 들리는가 하면

집에 걸어둔 사진들이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주인어른이 결국

무당 불러서 굿을 하게 되었는데요.



늙은 무당이 왔는데 집을 둘러보더니

여기 아들이 갈 길을 못 가고 여기 와있다고 하면서

굿을 하더래요.



그래서 무당이 굿을 하는데

처마에서 청년이 나오더래요.



그런데 그게 할머니 눈에만 보였나봐요.



그 청년이 무당 몸 속으로 들어가더니

어머니 아버지 하면서 우니깐

무당이 같이 울기 시작했나봐요.



그렇게 주인어른과 사모님하고 말을 나누고

그 무당이 하는 말이


"이 불효자 어머니 아버지보다 먼저 갑니다"


하면서 무당이 쓰러졌죠.



그런데 이 무당이 쓰러지고 나서

주인내외가 고맙다고하면서 우리 할머니한테

무당님 쓰러져 있는 동안

집안일 해드리라고 보냈대요.



그렇게 무당집에 가서 무당 시중을 드는데

무당이 하는말이


"아가야,

너도 종길이 그 귀신이 처마에서 나오는거 봤지?"


이러시더래요.



할머니는 너무 무섭고도 신기하기도 해서

그렇다고 대답하니깐 그 무당할머니가


"아가야 너 신을 받아야 돼.

안 그러면 스무살 못넘기고 죽어.

얘야, 나 따라서 신내림 받고 무당되자."


이렇게 말씀하셨데요.



결국 그 무당이 나중에 주인내외한테 찾아가서

말씀드리고 할머니 데리고 충주까지 와서

신내림 받게 해줬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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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국민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을 겁니다.



당시 제가 살던 곳은 너무 외진곳이라

국민학교 한 학급...



그러니깐 전교생이 15명 내외였던 곳이었죠.



자연도 깨끗해서 정말 물도 맑고 그런 곳이었습니다.



더구나 오지인만큼 미신같은 것이

쉽게 잘 팔리던(?) 그런 곳이었습니다.



때문에 저희 할머니께선

무슨 일이 나시면 자주 나가시곤 했는데요.



어느 여름날 일이었어요.



저희마을에 큰 폭포가 하나 있는데요.



상류에선 아이들이 놀기도 하는데

폭포쪽 으로 오면 높이가 한 8m?

그쯤 되었을 겁니다.



수면까지의 길이가 그정도이고

깊이도 한 5~6m정도 되는곳이었죠.



그런데 물이 너무 맑아서 그 바닥이 시커먼데

다 보이는 그런 거 있죠?



바닥이 시커먼 건 깊어서 그런 거고

물이 엄청 맑아서 다 보이는데

제 기억으론 조금 섬뜩한 느낌도 들었던 곳입니다.



폭포 주변으로는 둥글게 원 모양으로

물이 형성되어 있는데

떨어지는 가운데는 시커멓고

나머지도 고기가 헤엄치는 게 보일만큼 물이 맑죠.



그런데 거기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죠.



여름날인데요.



소나기가 온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수영하던 아이가

갑자기 소나기가 오기 시작해서

불어난 물에 휩쓸려가서 죽어버렸는데요.



이런 사건이

한 세번정도 더 일어났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부모님이

거기 가지말라고 당부하셨던 기억이 있지요.



결국 마을회의에선 굿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할머니도 마을 아이들이 피해자인만큼

보수를 받지 않고

( 저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기에 그랬던 것 같아요.)

굿을 해주기로 했죠.



물론 이런 행사에서

나머지는 마을 사람들이 다 준비하고

무당은 굿만 하면 되었죠.



일요일이 되자 마을 사람 모두 폭포에 모였습니다.



폭포 위쪽 바위에서 모이게 되었는데요.



상류가 아니고 바로 폭포가 떨어지는 그 벼랑에

사람들이 모인 거죠.



물론 저도 한 자리 잡고 앉아있는데요.



사람들이 북하고 장구채 꽹과리를 마구 치는데

할머니가 굿을 시작했죠.



그 상태로 한 30분 정도 앉아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인 저로서는 조금 지루하기도 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더니 멈추셔선

용신님이 화가 나셨다고 하시면서

당장 마을 수로를 트라고 하셨죠.



알고보니 사람들이 농지 때문에

폭포에서 나오던 물길을 막고

그걸 농수용 호수 쪽으로 돌려버린 것이

원인이었나 봅니다.



그 쪽이 용신이 다니는 통로인데

그걸 왜 막냐고 괘씸하다고 하면서 말이죠.



사람들이 용신한테

수로를 다시 트겠다고 약속햇는데

정말 신기한 일은 이 때 일어났죠.



할머니가 폭포 쪽으로 다가가서 절을 하시는데

폭포 중간 시커먼 부분에서

큰 잉어 한마리가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뻐끔뻐끔 거리고 있었죠.



정말 컸습니다.



마을 어른들도 나중에 놀라시면서

용신님이 큰 잉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기억에도 제가 아버지랑 잡던 잉어보다

한 30cm는 더 컸던 것 같아요.



때문에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데요.



수염도 엄청 긴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나중에 굿 끝내고

할머니가 한 보름정도 앓아누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예전에 어릴 땐 할머니가 굿할 때마다

꼭 그 정도 앓아누으셨던 기억이 나는데요.



나중에 할머니께서 저한테 말해주시길


"인간이 도 닦아서 승천하면 신선인게구,

동물이 승천하면 용인게여,

아니면 산신령이 되기도하지. "

근데두 동물 중에 용이 되서 승천할 수 있는 게

뱀,잉어,자라...여

(더 있었는데 생각은 안나더군요-_-;;) "



어린 나이에 참 신기했죠;;



당시 저는 용의 모습하면

할머니 귀신 모시는곳에 그려진 그림으로

어느 정도 이미지가 있었는데

어쨌든 놀라긴 엄청 놀랐습니다.



그 후로 마을이 안정된 건 당연하구요.



아이들도 더이상 죽지 않았죠.



게다가 그 해에는 풍년까지 들었죠.



나중에 용신님께 풍년감사굿 한 번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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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할머니한테 물은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 전생이란 게 있는거야?"



"아이구 이눔아,

당연히 사람도 다시 태어나고

금수도 다시 태어나는겨.

부처님도 500번 다시 태어나셨는데

우리같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야

말해서 더 뭣하겄냐"



그랬죠.


할머니 말로는 환생은 있다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저의 호기심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의 전생이 있었다면 나는 무엇이었을까...


다들 한번쯤 고민해 보시지 않으셨나요?



전 할머니께 저의 전생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깐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저는 아낙네... 였다고 하더군요.



아낙네?

나의 전생이 고작 아낙네 였다는 말인가? -_-...

저의 쇼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럼 우리 엄마 아빠는?"



할머니께선

그 두 분이 전생에도 부부였고 몽고인이었다고 했죠.



할머니께서 말씀해 주신 전생 이야기를

제가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실은 이렇게 된 거였답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사실 저희 부모님과 저는

전생에 몽고인과 아낙네의 삶을 산 이후에도

많은 전생을 겪어왔습니다.



그 전에도 그랬죠.



그런데 다시 이렇게 가족으로 만나게 된 것은

전의 삶에서 풀어야할 한이 있기 때문에

그걸 풀라고 다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께서 말해주신 원한은

대략 이런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몽고군이 고려를 침략했을 때

우리 어머니가 몽고의 병사였고

저는 아낙네였는데 어머니가 침략 때

저를 강간했고 제 아이를 죽였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병사의 부인이었는데

하도 고생을 많이 해서 다시 부부로 태어난거랍니다.



뭐 이렇게 얽히고 설킨거죠.



저희 할머니 전생을 이야기하자면

중국의 작은 나라의 재상이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정치를 하다가 실수를 해서

많은 백성을 죽였는데 사람들한테 베풀면서 살라고

무당으로서 다시 태어나서

고생스럽게 살아가게 된 거라더군요.



전생 이야기 중에 또 이런 이야기도 있었죠.



잉꼬부부라고 소문난 부부 중에 한 명이 죽는 것은

원래 둘이 전생에 원수라

서로 괴롭히려고 태어났는데

너무 서로 사랑하고 잘해줘서

원이 다 풀어져 버린거라

한 명이 미련없이 떠나는 것이라구요.



할머니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죠.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물었죠.



"그럼 계속 영원히 환생만 하는거야?"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우리 혼이 나중에 깨끗해지고 깨달으면

되는 게 부처라고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되면 모든 업이 끝난다고요.



그 이후엔 뭐가 있냐고 물으니깐

할머니도 그 이후는 잘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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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제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나오질 않더군요.



집에서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라서

항상 제가 오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반겨주시곤 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할머니 방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가보니 아버지 어머니가 있었죠.



그래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할머니가 누워계신 거였습니다.



저는 할머니 돌아가시는 줄 알고 울면서

할머니한테로 갔더니

할머니가 괜찮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왜 누웠냐고 물어보니깐 대답을 안하십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참 무서웠습니다.



누가 죽는다는 건

겪어보지 않은 일이었기에 그랬었죠.



물론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져서

누가 돌아가신다 이러면 다른데로 가시겠구나...

라는 막연한 생각만 듭니다.



부모님이 돌아신다면 그것은 소중한 분들이니

그땐 또 생각이 달라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할머니가 그렇게 아파하시는데

당시 어린 저로서는 대책이 없더군요.



그래서 할머니 곁에서 하루종일 앉아있는데

문득 할머니 모시는 신이 생각났습니다.



할머니 말로는 저희집 조상님이라던데

할머니가 무슨 일이 있으시면 거기에 빌거나

평소에도 자주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생각이 나자마자 신당으로 가려고

밖에 나오니깐 이미 껌껌한 밤이었죠.



신당이 어둑어둑하고 당시 아이가 가기에는

여간 무서운 곳이 아니었죠.



익숙하다곤 해도 밤에 가니깐 엄청 무섭더군요.



그래서 가서 촛불도 제가 직접 켰습니다.



그리곤 앉아서 빌었죠.



조상님 저희 할머니 제발 좀 낫게 해주세요.



아이였던 제가 느끼기에

한 몇시간정도 지난듯 했습니다.



그만큼 오래 빈 거죠.



그렇게 잠이 들고 깨어보니 아침이더군요.



어머니가 학교 가라고 저를 부르시는데

그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그날 학교를 다녀온뒤 집에 오니깐

할머니가 저를 손수 마중나오시더군요.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우리 이쁜 손주가 날 살렸구나"


하시는데 저는 영문도 모르고

할머니가 나았으니깐

일상생활이 회복된다는 기쁨에 그냥 좋아라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할머니가 죽어서 무서운게 아니라

익숙한 사람이 없어질까 두려웠던게 아닌가 합니다.



그날 사건의 자초지종은

좀 더 큰 뒤에 들을 수 있었는데요.



할머니가 아프시기 며칠 전

할머니가 모시는 신과 다투셨다고 합니다.



이웃이 굿을 했는데

조상신이 그 집 조상분하고 살아계셨을 때

안좋은 일이 있으셔서

굿이 잘되게 도와주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신한테 그러는거 아니라는 식으로

할말을 하셨데요.



할머니가 워낙 자기 의견이 강하신 분이시라

가끔 화나시면

마을 노인분들도 당황하시고 합니다.



그래서 조상신이 화나서 신병을 줬는데

제가 그날 신당에서

조상신한테 영문도 모르고 빌었는데

신이 그거 보고서 노여움이 풀렸다고 합니다.



조상신이 이러더랍니다.



"네 귀여운 손주 봐서 봐주는거지, **아.

나한테 앞으로 대들 생각하지 말라고"



뭐 가끔 할머니께서 그 이야길 하십니다.



이제는 뭐 ㅎㅎ

너무 들어서 슬쩍 자리를 피하곤 하는데요.



할머니 소원이 죽기전에 금강산 한번 가시는건데

보내드리고싶네요. ㅋㅋ



그런데 요즘도 갈 수 있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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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들이 어떻게 사는지 조금 말해볼까 합니다.



우선 저희 할머니는 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십니다.



연세 70 다 되셨는데도 매일 5시에 일어나서

신당에 촛불 켜고 기도를 드리죠.



그리고 보름마다

뒷마당에 물떠놓고 기도드립니다.



뭐 이래야 귀신이 더 영험해진다나 하시면서...

서울 올라오기까지 매일 보던 광경이죠.



또 과일도 사흘장에 나가서 사흘마다 갈아주시는데요.



훔쳐먹으면 혼납니다. ㅎㅎ



어릴 때 몇번 몰래 먹었는데

할머니가 그렇게 화내시는 모습은

그때가 처음인가 했습니다.



조상님이 화내신다고 하시면서 말이죠.



그리고 제가 항상 할머니 따라다녔는데요.



무당답게 미신같은 것도 많이 아시고

결정적인 건 귀신이 그냥 눈에 보이신답니다.



저희 마을에 마을 공동묘지가 있는데요.



가끔 벌초 시즌 되면 가족끼리 모이는데

그때 공동묘지 이곳저곳 돌아다니시면서

다른사람들 묘 풀까지 뽑아주십니다.



좀 엽기적인 건 혼잣말로

누군가랑 대화나누시는 듯한데

그럴 땐 조금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죠.



굿할 때는 조금 더 신기한 것들까지 보게 됩니다.



시장에서 보면 손잡이 달린 양동이가 있습니다.



그거 물 가득 채우면 한 40kg정도 되는 것 같은데요.



굿할때 어느정도 춤추시다가

눈뒤집어지시면


(실제로 굿할 때 눈이 흰 자만 보이는 때가 있는데요.

접신할 때 가끔 뒤집어지시죠.)


그 양동이 물 가득채운' 걸 이로 무십니다.



손잡이 부분을 이로 무셔서 들고서 춤을 추시는데요.



그거 이로 물어서 성인인 제가 들지도 못합니다.



궁금하시면 양동이 하나 사셔서

이로 물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반만 채워도 이가 흔들릴텐데..


치과비용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ㅎ



또 조금 더 비용이 나가는 굿을 하실 때가 있어요.



이건 한번 굿하는데 비용이 조금 쎕니다.



정확한 액수는 ㅋㅋ

할머니 사업상 비밀이신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굿 부탁하는 분들이 외지에서 오시면

가끔 그런굿도 하는데요.


나중에 좋은 데 쓴다고 하시는데 ㅋㅋ


(저희 할머니 고아원 같은 곳에 기부도 하십니다.

전생에 업을 많이 쌓으셨다면서요.


그 돈들 다 모으셨으면 편하게 사실 수 있으실텐데..)



저한테 물려주실 생각은 없으신가 봅니다.



그런 굿은 준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특별히 기도시간도 늘고

음식도 좋은 걸로 상에 올리지요.



굿할 준비가 되시면 칼을 준비하십니다.



주방용칼보다 더 날카로운것 같은데

보기에도 무시무시합니다.



작두에 쓰는 칼인데요.



이걸 굿하기 전에 갈아요. ㅋㅋ


그리고 칼날 세우고 거기에 사과를 떨어뜨리면

사과가 그냥 두 쪽 납니다.


절단면 깨끗하게요.



다들 무엇하시는지 짐작하셨을 겁니다.



신내림할때 작두 타지 않습니까?


그런 것과 같이 그 칼에 올라가십니다.



그리곤 항상 "칼이 무디구나!" 하면서 말하십니다.



그런후에 칼을 들어서 팔에 그으세요.



칼 들어서 팔에 쓰윽 하셔도 피 한방울 안 나더군요.



예전에 한창 절정이실 때는 목에 그으셨다는데

부모님 두 분이 말리셔서

목에는 제발 긋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보는 저도 신기하고

굿 의뢰하신 분들도 눈이 휘둥그레지시죠.





굿이 끝나시면 여지없이 한 보름정도 누워계십니다.



신 받으시면 몸이 그만큼 허약해지시기 때문에

정말로 움직이시지도 못하십니다.



부모님이 그만두시라고 해도

할머니께선 이게 내 업이라면서

죽을 때까지 계속하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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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전편에 댓글을 다셨더라구요.



무당이 가진 귀신보다 힘이 강한 귀신을 떼어낼 때

무당이 실패하는 경우가 있느냐구요.



답은 있다 입니다.



할머니께 이 이야기를 여쭈었는데요.



무당이 말이죠.


자기 귀신보다 쎈 경우에 해당하는 부탁이 들어오면..


즉 이경우에는 자기 능력이 안되는 경우에는

굿이나 어떤것을 일절 하지 않는답니다.



잘못 나섰다가

오히려 무당이 해를 보는 경우도 있데요.



하지만 이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합니다.



저희 할머니같은 경우는 이럴 때

자신들이 알고 있는 영험한 분들한테

연락을 해주신다네요.


(그것에 대해서는 미처 자세히 못 들었어요.)



많은 분들이

무당이 귀신을 퇴치하시는 줄로만 아시는데요.



이 분들은 영적인 것에 대한 의사라고 하시더군요.



영적인 것이 불안할 때 이 분들이 나서시는거죠.



예를 들어 사람들이 무당은 귀신을

무조건 퇴치하시는 걸로만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귀신을 불러다 한을 풀어준다던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거나 하는 식으로 해서

더이상 귀신이 해코지를 못하게 하거나

저승으로 보내는거죠.



그리고 굳이 귀신을 쫓는데

무당만 있는 것도 아니랍니다.



득도한 스님들도 그 일을 하시기도 한다고합니다.



할머니 어릴 때는

스님이 귀신쫓는 것도 보셨다는데

저는 잘 모르겠구요.



또한 귀신들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을 보호해 주는 귀신들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원한이 있는게 아니라

자기 후손이나 집을 지켜려고 하는 거래요.



뭔가 할말이 있어서 일시적으로 나타난다거나

그런 경우도 있다는군요.


(그렇다고 집안 귀신 중에

착한 귀신만 있는 경우도 또 아닐 겁니다.)


서낭당에 있는 마을신이라던가도

좋은 귀신에 속한다는군요.



다만 노하면 그냥 악귀보다 더 무섭다는군요.



귀신퇴치 뿐 아니라

마을 제사도 이 분들의 역할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연에 대한 신들에게

평안을 비는 역할도 무당이 그 통로이죠.



그리고 무당이 영험한 기운이 떨어질 때

예전에는 어린 여아를 잡아다가

죽이는 일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일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데요.



죽일때는 최대한 고통스럽게

피를 말리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방법은 좀 잔인하다 싶어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퍼온 이 사족 :


이익이 쓴 《성호사설》 에 언급된 염매 주술


우리나라에는 염매(魘魅)라는 괴이한 짓이 있는데,

이는 나쁜 행동을 하는 자가 처음 만들어낸 것이다.

남의 집 어린애를 도둑해다가 고의적으로 굶기면서

겨우 죽지 않을 정도로 먹인다.

때로 맛있는 음식만을 조금씩 주어 먹이는 바,

그 아이는 살이 쏙 빠지고 바짝 말라서

거의 죽게 될 정도에 이른다.

이러므로 먹을 것만 보면

빨리 끌어당겨서 먹으려고 한다.

이렇게 만든 다음에는,

죽통(竹筒)에다 좋은 반찬을 넣어 놓고

아이를 꾀어서 대통 속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아이는 그 좋은 반찬을 보고

배불리 먹을 생각으로 발버둥치면서

죽통을 뚫고 들어가려 한다.

이럴 때에 날카로운 칼로

아이를 번개처럼 빨리 찔러 죽인다.

그래서 아이의 정혼(精魂)이 죽통 속에 뛰어든 후에는,

죽통 주둥이를 꼭 막아

들어간 정혼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그 죽통을 가지고

호부(豪富)한 집들을 찾아 다니면서,

좋은 음식으로 아이의 귀신을 유인하여

여러 사람에게 병이 생기도록 한다.

오직 이 아이의 귀신이 침범함에 따라

모두 머리도 앓고 배도 앓는다.

그 모든 병자들이 낫게 해달라고 요구한 다음에는,

아이의 귀신을 유인하여

앓는 머리와 배를 낫도록 만들어 주는데,

그 대가로 받은 돈과 곡식은

드디어 자기의 이득으로 만든다.



— 《성호사설》 제5권 〈만물문〉(萬物門) 중

염매고독(魘魅蠱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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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 신입생때 이야기 입니다.



어느정도 대학에 익숙해지고

동아리 선배 몇명과 애들이

3박 4일로 엠티를 가게되었죠.



장소는 강원도 계곡이었는데요.



여름이었고 날씨도 더웠는데

물 맑은곳으로 가자는 의견이 대세라

계곡으로 향하게 된거죠.



모두가 차가 없었기에

버스를 타고 강원도까지 가서 마을에 도착해서

1시간 가량을 더 걸었습니다.



알맞은 장소를 찾고서 장소에 도착하고

우리는 짐을 풀었는데요.



정말 날씨도 맑고 도로변 옆인데

햇볕이 그렇게 잘 들수가 없었죠.



그리고 사람이 왔던 흔적도 없는 게

쓰레기 하나 없이 물도 맑고 깨끗했으며

그다지 깊지 않았습니다.



요리담당이었던 저는

(동아리에 라면 이외의 음식을 할 줄 아는 게

저밖에 없었던 -_-;)

요리에 산에서 딴 독버섯... 을 넣을라고 했는데

버섯이 없더군요..



가져온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였는데요.


맛이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다들 천에서 놀거나 잠을 자거나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산이 그렇듯이 빨리 어둠이 오죠.



저는 시골에서 자란 탓인지 어떤 환경에서도

잠을 빨리 잘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이 있어서

제일 먼저 잠을 자게 되었고..



덕분에 동기들에게

재미없는 놈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죠.



그리고 동기들이 밤늦게 놀고 잠들 무렵에

저는 깼습니다.



제가 한번 잠을 자면 깨는 일이 드문데 말이죠.



텐트 밖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저는 누군가 해서 나갔더니 아무도 없었고

저는 홀린듯이 텐트밖을 나와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데 신발이 하나 보이더라구요.



누구 신발이지?



아무 의심도 없이 집어드는데

누군가 저를 흔드는겁니다.



눈을 떠보니 꿈이었죠.



벌써 해는 저 위에 떠있고

동기들은 밥걱정에 저를 깨운 거였죠...가 아닌

밥해먹기 귀찮아서 저를 깨웠습니다. -_-;



이튿날도 친구들끼리 신나게 놀았습죠.



총 인원이 남자 4 여자 5였는데요.



그중에 남자 2명이 게임에 져서

음식재료 및 필요한거 사러

1시간 떨어진 마을로 갔고

저랑 남선배1 여선배2 여동기3

이렇게 있게 되었죠.



한참 놀고있는데 산날씨가 변덕스러워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흐린구름이 한번 가리니깐

산이 무척 어두워지더군요.



음식재료 사러간 동기랑 선배는

몇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고

전화하려고 보는데 핸드폰이 없더군요.



그래서 핸드폰을 빌렸는데 산이라 안터지더군요.



각자 텐트에 들어가서 쉬고 있는데

저는 쉬는게 무조건 잠자는 거라서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꿈 속에선

어제 그 신발을 줍게 된 장소에 와있었습니다.



신발을 손에 들고있는데

그 앞에 또 신발이 떨어져 있는겁니다.



또 가서 주우니깐 신발 두짝이 등산화인데

누군가 뒤에서 저를 당기는것 같다군요.



보니깐 등산복차림의 중년남자였습니다.



놀라서 꿈에서 깬 저는 뭔가 계속 찜찜했습니다.



어릴때 제가 꿈을 꾸면 뭔가 암시가 있었는지라..



할머니께 말씀드리면 자주 풀이를 해줬는데

기분이 안 좋더군요.



그날 내내 불쾌해하며 잠도 못 들었죠.



그리고 금방 어두워졌는데 저는 큰일을 보러

휴지들고 텐트 뒤쪽으로 걸어갔습니다.



4시쯤인가 그랬는데 산인지라 조금 어둡더군요.



나무가 빽빽하달까

거기서 일을 보고 있는데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들어보니

그 중년 남자가 저 앞에서 서있더군요.



저는 그순간에 직감했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 분이 사람이 아니라고요.



제가 살면서 귀신을 몇번 본적이 있는데

첫번째는 초등학교때 목장에서 본 할아버지였고

두번째는 고등학교때 학교근처에서 본 거지였습니다.



세번째가 고등학교때 상집가서 본 할머니였습니다.



네번째는 등산갔을때 본 군인이었습니다.


군인은 확실하지 않은데

아마 귀신이 아니었을수도 있겠네요.



제가 그 중년인을 보고서

귀신이라고 확신했던 이유는

그 특유의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모두 등골이 싸늘해진다는 말 아시죠?

그 차가운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어딘가 불완전한 모습입니다.



이건... 실제로 보여드릴 수 없기에

말만으로 전하게 되는데요.



사람 모습이 뚜렷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흐릿하다고나 할까 여하튼 그렇습니다.



세번째는 날씨입니다.



제가 귀신을 보는게 평상시 보는게 아니고

날씨가 습기가 차게 되면

제 성격상 무척 예민해지게 되는데요.



모두 그런 날씨에 귀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일을 다 볼 때까지

중년인은 저를 계속 보고있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날밤 꿈 속에 그 중년인이 나오더군요.



저한테 이렇게 얘기 하더라구요.



여기는 내 집이니깐 여기서 나가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 중년인한테

우리는 내일이면 나간다고 하니깐

그 중년인이 화를 내면서

나가 나가라고!! 하면서 제 목을 조르는 겁니다.



그래서 꿈에서 깨버렸습니다.



그런데 바닥이 축축하더군요.



보니깐 물이 불어서 텐트까지 차있는겁니다.



저 얼른 애들하고 선배들 다 깨우고

텐트고 뭐고 짐만 챙겨서 바로 도로로 올라왔죠.



그사이에도 물이 불어서 텐트 반 이상 잠겼습니다.



모두 텐트가 잠기는 거 보고

한 30분 멍하니 있는데 차가 오더군요.



낮에 재료사러 간 선배 둘이서

마을사람 차타고 온거였죠.



선배 두분이 낯선 마을이라 슈퍼 찾아서 헤매다가

슈퍼에 들렸는데 tv에서 태풍경보가 와서

마을사람 차 타고 급하게 온 거랍니다.



문득 저는 그 중년인이

우리를 구하려고 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선배한테 에쎄 담배 한갑을

5천원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라이터랑 고무줄에 묶어서 천에 던졌습니다.



금방 휩쓸려 가더군요.



그리고 그날밤 어쩔 수 없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어야했죠.



태풍 때문에 버스도 쉰다고 해서

그냥 마을사람 집에서 5만원 주고 묵었습니다.



모두 자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군요.



그 중년인이 서 있었습니다.



주머니에서 에쎄 담배를 꺼내더니

한 개비 빼서 피더군요.



그리고 저한테 웃고서는 문을 나갔죠.



그렇게 우린 결국 이틀을 그 마을에서 묵고서

태풍이 지나간 후 집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 올라온 뒤로 자취했는데

핸드폰 부재중 전화가 20통은 있었을 겁니다.



보니깐 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전화였죠.



전화해보니깐 할머니가 엄청 걱정하셨다면서

무슨일이 있을 거라고 했다네요.



할머니 바꿔보니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아이고 무사허냐.. 걱정했다." 이러시데요.



나중에 집에 가니까

할머니가 신당에서 밥도 안드시고

기도했다고 하시면서 난리도 아니였데요.



그것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저는 지금 이렇게 살아서 그 때의 경험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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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늘 항상 꾸는 꿈이 있었습니다.



뭐가 되고싶다는 그런 꿈이 아니라

자게 되면 정기적으로 꾸게되는 꿈이었는데요.



제 체질상 꿈을 잘 꾸지 않고

눈감고 일어나면 아침이기 때문에

꿈을 꾸게되면

그것에 대해 무슨일이 있겠구나 생각합니다.



전편의 글에서처럼 중년인의 꿈을 꿨듯이

제가 살아오면서 꿈을 꾸게되면

그에 연관된 일이 있었기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꿈이 드문건 아닙니다.


저도 다른 분들처럼

아무의미없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요.



어떤 사람은 예지몽인가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예지몽 그런거라곤 쥐뿔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꾸고나서

잠깐 생각하면 어느새 잊어버리거든요.



그리고 어느순간에 그 일이 닥치면

그게 기억나는데

이건 여러분이 익히 아시는..

그리고 한번쯤 겪어보셨을

데자뷰란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그런 꿈과는 달리

이건 아주 생생했었지요.



정확한 시작은 모르겠고

제가 아주 어릴때부터 정기적으로

(일년에 다섯 여섯번?) 꾸었었는데요.



꿈 내용을 묘사하자면 이렇습니다.



제가 항상 꿈에서 서 있는 곳은

어떤 절의 마당인데요.



마당 전체가 흙이 아니라

돌로 깨끗하게 깔린 곳이더군요.



바닥이 하얗습니다.



산과 바다의 경계라 산 속에 절이 있음에도

바다의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입니다.



그 절은 꿈에서 축제를 벌이는 중인데요.



저는 항상 어린 아이라 누군가의 손을 잡고서

그 절에 있더군요.



그리고 중년을 넘기신 스님이

저에게 웃으면서 뭐라고 말을 걸더군요.



그리곤 꿈에서 깨곤합니다.



하도 오랫동안 이 꿈을 꿨었기에

할머니에게 물어보게 되었죠.



할머니가 꿈이야기를 들어보시더니

이렇게 말하시더군요.



니 전생 중에 있었던 일이

환생 후에도 잊혀지지 않고서

니 기억속에 남아있는거라고요.



처음에는 그렇게만 말씀하시더군요.



그런데 제가 자꾸 꿈 내용을 계속 물어보니깐

어느 날은 할머니가 저를 신당으로 부르시더군요.



그러시면서 저한테

니가 그렇게 궁금하면 보자 하시더군요.



할머니가 저를 눕게 하시고는 방울을 흔드시더군요.



그리곤 저는 반쯤 잠이들었는데

또다시 그 절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주변 사람들 얼굴이 확실하게 보이더군요.



마치 저의 실제 인생이 꿈이고

지금 와있는 곳이 정말 제가 살고있는 생인 듯 싶었죠.



저의 손을 잡고 있던 사람은 젊은 부인이었습니다.



옷차림이 한복인데 조선시대 이전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순간

그 부인의 얼굴이 현실의 누군가와 겹치더군요.



제가 아는 누군가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분명 생김새는 완전히 달랐는데도

그 사람인걸 안다는 그런 느낌이 말이죠.



그런데 앞에 스님이 오시더군요.



스님의 얼굴은

그 누군가와 겹친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스님이 저에게 뭐라고 말을 했습니다.



꿈에서는 웅얼거림이었는데

여기선 확실하게 들리더군요.



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지금 쓰는 말과는 좀 달랐는데요.



사투리와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알아듣는 것은 제가 마치 그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듯이 알아듣게 되었죠.



"얘야, 내가 너를 보니 너는 현생에서든 후생에서든

이 곳에 다시 올 일이 있겠구나.. "



하면서 껄껄 웃으시더라구요.



"부처님의 길을 따라갈 일이로다"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꿈에서 깨버렸습니다.



할머니가 앞에 앉아계셨고 웃으시더니


"아마도 니가 중요한 말을 들었기에

니 혼이 그걸알고 그것을 기억했는갑다.

아마도 지금 이 삶을 다 살게 되면

니가 꿈 속의 그 절로 가게 될 것 같구나"



라고 하셨죠.



저는 생각했습니다.



"결국 중이 되라는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귀신을 본다거나 하는것도

그것과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긴했습니다.



이렇게 제 인생의 전생체험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한 기억을 심어주며 끝났습니다.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비록 그 절의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꿈의 내용을 알고나선 더 이상 그 꿈을 꾸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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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할아버지는 고아십니다.



일제시대 때 살기위해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셨습니다.



그러다가 저희 할머니가 살던 마을 지주의 하인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그때가 일제가 망하기 몇년전이었다고

알고있습니다.



어느날은 할아버지가 주인집 농사일을 하고있는데

마을에서 어떤 처녀가 물을 떠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도 마을에서 몇번씩이나 그 처녀를 보았는데요.



당시 마을에는 젊은 남녀를 일제가 다 끌어모아서

젊은 사람이라고는 할아버지와 그 처녀를 제외하곤

얼마 없었답니다.



할아버지는 지주댁 하인이라

징병을 면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는

매일 보이는 그 처녀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그러다 그 처녀가 산중턱에 노파와

같이 살고있던 처녀란 걸 알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모녀인줄 알았는데요.



결국 그렇게 눈치만 보고 있다가

몇년후에 해방이 되자 하인이었던 할아버지는

지주가 도망갈거란 걸 알고서는

그 지주 재산 중 일부를 자신이 빼돌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노파에게 찾아가

처녀와 결혼하겠다고 말을 했는데요.



그 노파가 하는 말이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나 신받은 어미고

저 아이도 곧 무당으로 키울 생각인데

결혼을 하고 싶냐고 말을 했데요.



그러면서 그동안 일제 눈치보느라고

무당일 제대로 못했지만

이제는 신당 차리고

다시 일할생각이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당시 사회적으로 무당이 미신 취급받았고

상당히 천한 일이었다고 하는데요.



때문에 일반 양민들도 무당은 꺼려했던 분위기였데요.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망설임없이 데리고 살겠다고 했답니다.



그때는 아직 할머니가 신을 받지 않은 때였죠.



충주에 정착하기 전에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던 때였습니다.



그렇게 신혼방 차리고 저희 아버지도 낳으시고

노파한테 일을 배우면서

몇년간 행복하셨다고 했죠.



그런데 50년에 아시다시피 6.25가 터졌습니다.



어느날 마을에 국군이 와서

남자들 모조리 징병해갔다고 합니다.



당연히 할아버지도 징병되어서

꼭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시고 떠나셨는데요.



그 며칠 후에 노파가

피난가야된다고 하면서 떠나자고 했다는군요.



결국 아버지 데리고 할머니는 노파와 함께

동쪽으로 가서 산 속에 숨어들었다고 했는데요.



왜 하필 동쪽으로 가냐고 물어보니깐

그 노파가 그 쪽 방향이 안전한 곳이라고 해서

갔다고 합니다.



아마 강원도쪽 산골짜기로 들어간 걸로 아는데요.



그 와중에 할머니께서 신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 노파가 말하길 자기 살날이 얼마 안 남아서

너한테 신을 받게 해줘야 된다고 말했다는군요.



그렇게 그 노파가 할머니 조상신을 불러서

신을 받게 해주고

다섯밤을 같이 지내고 죽었다는 군요.



할머니께선 아버지 데리고

전쟁통에 다시 그 마을로 가셨다고 했는데요.

몇년이 지나도 돌아오시지를 않더랍니다.



답답한 마음에 신한테도 물어봤지만

아무 대답이 없더랍니다.



계속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어느날 꿈에 할아버지가 나오더랍니다.



그러더니 짐을 챙기고

그 보따리를 할머니에게 주었답니다



그런식으로 몇일 꿈을 더 꾸는데

할아버지가 점점 다급해 지시더랍니다.



할머니께선 떠나라는 이야기로 알고서

그 마을을 떠났는데요.



떠난다음 2틀째 이후에 그 마을에

미군비행기가 아무 이유없이 공격을 했답니다.



그래서 마을사람 대부분이 다 죽고 초토화됐다는데

아마도 빨치산 소굴로 오해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할머니는 그때 할아버지가

전쟁에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생각이 맞았는지

그 이후로 할아버지는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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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지금 사시는 마을에 정착하게 되신 것은

전쟁이 끝날 무렵의 이야기지요.



6.25전쟁은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답지 않게

일찍 끝나버렸죠.



할머니가 지금 사시는 마을에 처음 왔을때는

외지인데다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폐쇄적이랄까 외부인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잠잘곳이 없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딱하게 여긴 아주머니 한 분이

아버지와 할머니를 재워주셨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그날 주무시는데

꿈에서 마을을 돌아다니게 되었다네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낡은 집이 한 채 있더랍니다.



거기에 들어가니깐 어떤 여자가 등을 보이고

엎드려서 울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다가가니깐

얼굴이 흉측하게 변한 여자가 노려보더래요.



깜짝 놀라서 할머니는 깨버렸다고 하네요.



비록 자신도 신을 받았지만

귀신몰골이 어찌나 흉측한지

어린 마음에 무서웠다는군요.



그후로 아주머니 도움을 받아서 몇일동안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밥을 구걸하고 잠을 자는데

사람들이 눈치를 주기 시작하고

더이상 갈 곳이 없게 되니깐

그 도와준 아주머니한테

마을 밖에 집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데요.



그러니깐 그 아주머님이 말리시면서

그 집 귀신나오는 집이라고 가지말라고 했다는군요.



하지만 더이상 신세를 질 수 없다고 생각하셔서

할머니께선 꿈에 보았던

그 낡은 집으로 가셨다고 하네요.



비록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귀신같은건 보이지 않았기에

거기서 그렇게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요.



할머니가 자고 있는데 꿈의 그 흉측한 여자가

갑자기 와서는 저희 아버지 목을 꽉 조르더랍니다.



할머니는 놀라서 일어났는데

옆에서 아버지가 열이 펄펄 났다는군요.



불안해지신 할머니는 귀신이라고 느끼시고

봇짐에서 붓이랑 종이를 꺼내서

거기에 새끼손가락 뜯어내서 피로 부적을

여섯장 그리셨다는군요.



그리곤 아버지 귓구멍두개 콧구멍 두개 막으시고

입에 부적 구겨서 넣으시고

하나는 바지벗겨서 항문을 틀어막으셨다는군요.



그리고 봇짐 싼 걸로 아버지 눈 가리셔서

절대 못 뜨게 했다네요.



그리고 방울하고 칼을 들고서

밤새도록 귀신 쫓아낼려고 했다는군요.



그렇게 정신없이 방울 흔드시다가

날이 밝아오니깐 그대로 쓰러지셨더랍니다.



다시 눈을 뜨니깐 마을 이장집에 있었다는군요.



그 아주머니가 걱정이 되서 사람들과 그 집으로 갔는데

모자가 쓰러져있어서

바로 마을 이장댁으로 옮겼다네요.



할머니가 감사하다고 하고선

밤새 있었던 일을 물어보길래 이야기를 해주니깐

이장님이


"이보게, 자네 무당인가?"


하시면서

밤새 할머님이 하신일을 납득했다고 합니다.



그러시면서 그 집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 해주시는데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전에 일제 때 일이었죠.


마을 처녀가 노모랑 살았는데 처녀가 어찌나 효녀인지

시집도 안가고 노모를 돌봤답니다.



그 처녀 이름이 영미였다네요.



지금도 마을 어르신들한테

그 이름이 간간히 나오시곤하더군요.



그런데 그 마을에 부임한 청년교사가 있었는데

도시에서 온 교사가 시골처녀의 눈에는

멋있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학교를 차리고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는데요.



처녀가 무척 좋아했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그 청년하고

좋은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는데요.



그 마을에 그 처녀에게 눈독들이던 순사가 있었다네요.



늙어서 결혼도 못하고 하인으로 있던 사람인데

일본인 지주한테 잘 보이게 되어서

순사 노릇을 하던 사람이었다는군요.



어느날 청년 교사가 일본 경찰한테

체포되어가는 일이 있었답니다.



그때 영미라는 처녀가 깜짝 놀라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그 늙은 순사가

그 처녀한테 나랑 관계를 가지면

청년을 풀어주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처녀한테 요구했는데요.



처녀는 싫다고 하면서 도망치는데

순사가 그대로 잡아서 그 짓을 했다는군요.



그게 시작이었죠.



그 처녀가 그래도 노모 때문에 어쩌지도 못하고

그 뒤로 몇번 더 당했나 봅니다.



그리곤 그 교사청년이 다시 마을에 들어왔을 때

처녀가 임신을 한 상태였는데요.



마을 사람들도 이 이야기 하시면서

다들 그 늙은 순사가 일 꾸민거라고 말씀하시는걸

제가 들었습니다.



그 청년이 그걸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마을을 떠나게 되었는데 더욱 악질적인 게

그 순사가 마을 청년이 떠난 뒤부터

영미라는 처녀가 그리워하는거 보고는

여자를 때리기 시작했데요.



그래서 유산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 후부터 이 미.친놈이 여자를 일본인 경찰한테도

노리개로 바치고 자기도 매일 그짓을 하면서

구타를 거의 일삼았다고 하는데

마을사람들은 잡혀갈까 두려워서

아무짓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년간 인간이 아닌 것처럼 대우받았다는데요.


그사이 그 노모도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영미라는 여자는 완전히 미친 여자가 되어서

마을 돌아다니는데 꼴이 못 봐줄정도였답니다.



그렇게 시간이 가고

큰마을에서 다녀온 사람들이 말하길

해방이 얼마 안남았다는 소문이 돌더라는겁니다.



마을에 소문이 도니깐 순사도 겁이 났는지

사람들 눈치를 보다가

어디론가 도망을 가버렸다는군요.



그런데 실제로 해방이 되고선 마을에서

일본인과 거기에 협력했던 사람들이

모두 도망을 갔다네요.



그리고 영미라는 처녀도 안 보이기 시작했죠.



마을 사람들은

그 영미라는 여자를 잊고서 살게 되었는데요.



전쟁이 터지고나서 마을에 국군이 들어왔을 때

군인들이 마을사람들 집을 강제로 와서 점거하고

잠을 잤다는군요.


식량도 공급해줘야 했다네요.


그러다 일이 났는데요.


마을의 집 공간이 한정되어 있으니깐 나머지 군인들이

그 영미라는 처녀가 살았던 집에서 자게 되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그 곳에서 자고있던 국군 5명이

개거품을 물고 싸늘하게 죽어버린 겁니다.



당시에 군인들이 그 집을 뒤졌는데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철수했다는군요.



그 후로 마을 사람들 몇이서 그 집을

불태워 없애려고 했는데 그 날 그 집에

불을 놨던 마을 사람 모두가 그날밤에 죽었다네요.



그래서 마을 근처에서

얼씬도 안하고 있던 처지였답니다.



그리고 이장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영미 걔를 위해서 자네가 굿을 해주게나.

마을에서 다 준비할테니

자네가 그 아이를 달래주게나.. "



할머니는 허락하셨고 몇일 후 굿을 하게 되었답니다.



굿을 하기로한 저녁날

마을 사람들이 그 집 앞에 다 모이고

할머니가 넋두리를 시작하셨데요.



대충 내용이



그 귀신이 얼마나 효녀였는데

꽃같은 처녀가 억울하게 이러저러한 일을 당했으니

얼마나 불쌍하냐.. 하면서

내가 너희 어머니랑 너 편한 곳으로 가게 해줄께

불쌍한 일이다.

라는 식이었답니다.




그런데 삼십분쯤 넋두리를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다 들릴만큼 굿하는 중간에

여자 울음소리가 들리더랍니다.



그렇게 흐느끼더니 할머니가 갑자기

집 뒤에 언덕으로 가서 땅을 파보라고 했는데요.



거기서 여자 반쯤 해골이 나왔는데

옷차림이 영미였다고 하네요.



그런데 해골이 깨진 상태로 있더랍니다.


벌레가 썩은살을 파먹는데

할머니가 얼마나 아팠을까 하고 우셨다고 하네요.



그후로 귀신이 안 나왔다는 건

다들 짐작하셨을 겁니다.



여자 시체도 마을 양지에 묻고

집도 다 불태웠다고 하는군요.



그 일로 할머니가 마을사람들한테 받아들여지셔서

새 집도 얻고

오늘까지 그 마을에서 살아오고 계십니다.



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죠.



어릴때부터 마을 어르신들한테

그 이야기가 가끔 나오곤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 일이 있고나서

할머니 일들 많이 도와줬다고 하네요.



제가 전편에 쓴 용신이야기에서 나온

폭포가 있는 곳도 그 곳입니다.



아 그리고 마을에 관한건데요.


할머니 말씀으로는 저희 마을터가

폭포에서 음기가 내려오는 곳이라

잡귀신들이 나타나기 쉽다고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마을 어귀에

할머니가 지장보살 돌상을 세우셨죠.



그게 음기를 막아준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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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때의 이야깁니다.



겨울방학을 앞둔 시점이었죠.



산이 있는곳은 겨울에 엄청 춥습니다.



저희 마을이 산으로 둘러쌓인 곳이라

말 그대로 엄청 추웠습니다.



아침에 밥먹는데 아버지가 그러시더군요.



"니 친구 관수네 할머니가 어젯밤에 돌아가셨다네.

이따가 관수네 집에 저녁에 가야겠다."



아버지에게 저는 토요일이라 일찍 끝나니깐

방과후에 관수랑 같이 가겠다니깐

그러라고 하시더군요.



밖에 나오니깐 눈이 발목까지 쌓여있었습니다.



학교가는데 고생좀 했습니다.


눈이 펄펄 내리는데 옷에 묻어서 짜증이 솟더군요.



괜히 예민해지는 거 같았습니다.



학교가니깐 관수가 있길래 가서

할머니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보니깐

간밤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네요.



하긴 그 할머니 연세가

이제 90을 바라보시는 나이였는데

자주 병치레를 하셔서

마을 사람들도 언제 돌아가시나

가끔 얘기를 하곤 했죠.



그렇지만 동네 아이들한테는

정말 끔찍하게 자기 손자처럼 잘 대해주셨었죠.



매일 관수네 집으로

가면 빈대떡도 해주시고

아이들이랑 잘 놀아주셨습니다.



저랑 관수도 어릴 때 할머니한테 빈대떡 해달라고

자주 조르던 기억이 있고

관수네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때가 있었죠.



게다가 심한 장난을 치다 걸리면

할머니만이 유일하게 감싸주셔서

할머니한테 애틋한 기억이 남아있었죠.



그러다가 중학교로 진학하고 거의 안갔는데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니 얼굴한번 뵐 걸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토요일 일정이 끝나고 관수랑 집에가는데

눈이 더 쌓여있더군요.



관수네 집까지 가는데 양말이고 신발이고

다 젖어서 찝찝했습니다.



관수네 집으로 도착하니깐 동네 아주머니들 오셔서

음식준비를 도와주고 계시더군요.



관수네 집에서 키우는 개도 혀 내밀면서 반기는데

평소에 풀어놓던 개를

장례라서 그런지 묶어놨더라구요.



인사하고 관수방으로 들어가서

가방 내려놓고 양말 갈아신으니깐

관수가 할머니 얼굴 한번 보지않겠느냐고

했었는데 싫다고 했습니다.



비록 어릴때 자주 뵙던 할머니지만

왠지 시체를 본다는 느낌 때문에 무서웠는지도 모르죠.



시골은 금방 어두워집니다.



게다가 겨울이라 얼마 안있었던것 같았는데

밖이 밤처럼 어둡더군요.



슬슬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니깐

마당에 알전구를 연결해서 켜고

드럼통에 불도 피웠습니다.



방 안에 다 들어가기에 사람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마당에 올라가서 앉는 넓은 의자라고 해야되나

그걸 창고에서 옮겨놓고 사람들이 앉기 시작했죠.




저녁이 깊어지자 사람들이 상을 다 차리고

병풍 깔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죠.



이미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도 오셨더라구요.



관수네 할머니 시체는 생전에 할머니 방에

그대로 눕혀져 있었습니다.



제사 시간내내 사람들이 제사하는걸 보고

제사가 끝나자 동네 어르신들이 할머니 방으로 가서

시체를 붕대로 감싸시더라구요.



제가 슬쩍 봤는데 삼베옷 입으신 그대로

시체를 감싸는데 뻣뻣하게 굳었는지

시체를 세워도 굽혀지거나 하지 않았나봐요.



나머지 분들은 관수네 집에서 대접한 음식으로

모여서 화투도 치시고 이야기도 나누시고 하는데요.


그다지 슬픈 분위기는 아니었죠.


나이 드실만큼 드셔서 그런지

호상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저도 전이나 먹고있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로 가게되었습니다.



기름기 있는 음식을 계속 먹다보니

탈이 난 것 같았죠.



밖에 나가니 눈이 사방에 깔렸는데

달빛이 반사되서 정말로 밝더군요.



화장실은 집 모퉁이 쪽 옆에 붙어있었는데요.



입구가 길 쪽을 향하는 화장실이었죠.



휴지 가지고 가서 큰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관수네 집은 그때까지도 푸세식이었는데

집안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서

그다지 무섭다고 생각되진 않았습니다.



한참 일을보는데 갑자기 개가 낑낑대면서

나갈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갑자기 섬찟해서 일 다보고 나와서

모퉁이를 나오는데

전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습니다.



할머니가 뒷모습을 보이신체 문앞에 서계셨죠.



삼베옷 입고서 문을 나와서

산 쪽으로 가는 방향인데

뒷모습만으로 누군지 알았습니다.



삼베옷을 입었고 느릿느릿 걸으시는데

눈 밟는소리도 안나더군요.



그시간이 엄청 길었습니다.


머리가 텅빈 느낌이었죠.


길에서 얼어서 입을 열려는데

입이 안 열리더라구요.



추운것도 잊고서 못 박은듯이 서 있는데

개는 그 옆에서 할머니한테 가려고 낑낑대고 있고

다시 할머니 부르려고 했는데

입은 안열리고 답답했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갑자기 멈추시더니 뒤를 돌아보셨죠.



할머니랑 눈이 마주치는데

전신에 소름이 쫘악하고 떨리더군요.



어릴때 축사에서 할아버지 볼때와는 다르게

이미 커버린 저였죠.



얼마나 시간이 흐른지도 몰랐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산쪽으로 가시다가

어둠에 묻히시더군요.



따라갈 엄두를 못냈습니다.



깜짝 놀라서 계속 서있는데

저희 할머니가 밖으로 나오시더니

제 이름을 부르시더군요.



정신차리고 몸이 움직이니깐

집안으로 걸어들어와서 내내 앉아있었습니다.



집에 와서 할머니한테 관수네 집에서 있던 일들을

말하니깐 할머니도 보셨다고 하셨죠.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앞으로 그런거 보면

봐도 모른척 하라는 소리뿐이었습니다.



그날 생각하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죠.



가끔 그 할머니 얼굴 생각하면

그때 뭐라고 말이라도 할걸

하고 후회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귀신을 봤다고 생각하는

4번의 경험 중에서 축사의 할아버지와 더불어

가장 생생한 경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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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말에 무척 친한 학교친구가

일본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오더군요.



일본에 있는 부모님 댁에 한달간 머물 예정이라는데

같이 관광이라도 하지 않겠느냐고 해서요.



저는 학교를 휴학한 상태로

당시 자격증 공부와 알바를 병행하고 있었는데요.



공부도 지겨워질 때였고..(게을러서 ㅎ)



알바도 몇일후엔 끝나는 거라서 기분전환도 할 겸

해외여행이라는데 마다하지 않았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승낙했습니다.



일본은 인천공항에서 하네다 공항이었나?

비행기를 이용했는데요.



비행기값이 바로 옆인데 장난이 아니더군요.



뭐 숙박비 공짜라는 생각으로 일단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부모님들께서는 교토에 사셔서

차로 한참 더 갔던 기억이 나는군요.



도착하니 3층짜리 맨션인데 참 좁더군요.



일본이란 나라가

공공시설물이나 문화시설에 많은 투자를 하지만

개인을 위한 공간은 사실 작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집값이 장난 아니라는 설명이었지요.



생활하면서도 느낀 건데 물가도 엄청 비싸서

적응이 바로 안되어 당황했던 기억들도 있네요.



일본에 도착한 지 한달 가까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몇일간 인근 도쿄를 비롯해서 교토 유적만 해도

볼 곳이 많아서 이곳저곳 돌아다녀서

어느 정도 지친 상태였습니다.



돈 없는 학생인지라

대부분 싼값을 들여서 여행했었는데요.



그런 만큼 남는것도 많더군요.



어쨌든 시간이 금방 가버려

어느 새 한국으로 돌아갈때가 되니깐

친구가 저한테 말하더군요.



심령 스팟을 가보지 않겠냐고 말입니다.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일본 애들은 잡지에서 귀신 나오는 곳을 가는 게

한때 유행이었던 때가 있고

지금도 많이 하고있다고 하면서 저를 꼬시더군요.



사실 이놈이 저랑 제 고향에도 놀러간 적이 있기때문에

저희 집이 어떤지 대강 압니다.



나중에 들으니 그것 때문에

저를 일본까지 데리고 왔다고 하더군요.



심령 스팟 체험을 몇년간 벼르던 일이라면서 말입니다.



저는 처음에 가기 싫다고 거부했습니다.



처음엔 정말로 안 갈 마음으로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근데 이놈이 한 2일 내내 저한테 사정하고 애원해서

어쩔 수 없이 가기로 했지요.



초저녁에 가기로 했는데요.



쿄토 외곽에 버려진 병원에 대해서 설명하더군요.



일제시대에 세워졌던 병원인데

한 80년 가까이 된 병원인데 오래되서

이젠 아무도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들른다는 말도 덧붙이더군요.



아마 한창때는 일본 방송에서도 나왔던 장소라고..



그녀석이 그때 일본에 있을 때 방송을 봤다고 하는데

벼르고 별러서 마침내 가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글보시는 분들도 재미로 그런곳에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장난으로 그런 체험하는 게 한국에도 카페로 있고

많이들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곳에 가는 것이 굉장히 위험합니다.



나쁜 귀신이라도 붙게 되면 집에 재앙이라던가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


절대 가시지 말기 바랍니다.



그런데 저도 사람인지라 실제로 무서움도 많이 타고

긴장도 많이 하게 됩니다.



귀신에 대한 친근감?



저희 할머니조차도 무당을 업으로 하면서

무서웠던 때가 있었다는데

하물며 저야 뭐가 있겠습니까..?



출발할때는 아저씨 차를 빌려서 둘이서 갔습니다.



두분께는 그저 술이나 하러 간다고 말씀드렸지요.



차를 몰고 도시 외곽으로 드라이브하는데

귀신보러 간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저녁바람이 시원하더군요.



도로 타고 가는데

마음이 안정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시간 정도 달리니 문제의 병원이라는...

병원이라기보다는 산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마치 초등학교를 보는 듯한

기분나쁜 건물이 서있더군요.



과연 방송에도 나올 정도로 정말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빠지는 장소였습니다.



ㄱ자형 5층 건물이었는데 입구에 주차장같은 공터가

넓게 있고 왼쪽에 병동 정면에 병동이 있더군요.



처음 입구에서 주차장인 듯한 공터에 발을 들였는데

으스스한 느낌이 전신에 돋았습니다.



단순히 무서워서인지 추워서인지는 몰랐지만

그런 것에 민감한 저로서는 좋은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친구에게 예감이 안 좋다고 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하는말이



"야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제발 돌아보자.

설마 무섭냐?

그냥 재미인데 뭘 쫄고 그래?"


그러더군요.



아무리 설득해도 안될것같은 분위기 인지라

이 녀석에서 제가 차고있던 염주를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고

제가 김군 부모님들께 신세를 지고 있어서

할머니가 주신 염주를 주었지요.



이녀석이 염주를 받더니

뭘 이런걸 다 하고 주머니에 넣더군요.



우리는 주차장을 지나서

먼저 친구놈이 잡지에서 보았다는

3층 화장실로 가기로 했습니다.



3층까지 가는 동안 누가 저를 보는 것 같아서

긴장이 엄청 되었습니다.



말그대로 전신에 소름이 돋는데

친구라고 걱정되는 놈 때문에

계속 따라가긴 했습니다.



화장실에 도착하고 같이 들어가자고 했는데

저는 싫다고 했더니 자기 혼자 보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친구가 들어가고나서 기다리는데

20분이 지나도 안 나오는겁니다.



슬슬 주위를 둘러보니깐 건너 병동에서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주위 복도에 병실 뿐인지라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불렀는데

불러도 대답이 없더군요.



아뿔싸 하고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더군요.



그런데 뒤에서 누가 툭 치는 겁니다.



기겁해서 돌아보니 친구더군요.



저는 긴장이 엄청나게 풀어져서

하... 하고 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



친구도 웃긴지 마구 웃어대더니

조금만 더 둘러보자고 말하지 뭡니까..?



저는 어이가 없었지만 친구가 벼르고 별렀다니..

설득도 안되고 다시 따라갔습니다.



친구랑 같이 이곳저곳 돌아보고 시계를 봤는데

한 1시간 반쯤 돌아봤더군요.



등에는 땀이 흐르고

계속 긴장상태에서 있어서인지 피곤해져서

친구에게 이제 그만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이렇다할 체험을 못해서인지

만족을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시시하다는 게 그 이유였지요.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뭔가 보고가야 되지 않냐고 말입니다.



친구가 저한테 조금더 돌아보자 하면서

지하병동이란 곳의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예전에 이 병원이 정신병원도 같이 있어서

지하에 정신병동과 수술실이 있었다면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돌아보자고 하더군요.



3층에 있었던 저는 친구를 따라서 지하로 내려갔는데

2층쯤 내려갔을까요..



어디선가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



긴장했던지라 그 때문인줄 알고

애써 무시하고 내려가는데 또다시 끼이익 소리가

더욱 또렷하고 가깝게 들리는 겁니다.



분명 금속성 음인데

뭔가를 미는? 그런 소리더군요.



분명히 들리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자

또다시 등에 땀이 흘렀습니다.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친구녀석은 더 둘러보자고 고집부리고 있지..


저는 분명히 뭔가 잘못된거 같은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습니다.



다른 생각 떠올리면서 곧 지하실로 내려가는데

지하층 문이 막대기로 막혀있더군요.



제가 또다시 가자고 하니깐

김군이 막고있던 막대기를 걷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때서야 저도 화를 냈습니다.



"이 *아! 여기가 무슨 놀이턴줄 아냐?

귀신한테 씌여서

너희 부모님한테 무슨일이 생길 수 있다니깐!

정신차려!"



근데 친구놈이 저를 보더니

얼굴을 찡그리고 말하더군요.



"제발 한번만 돌아보자..

00아 나 여기 오는거 엄청 기대했다.

마지막이잖아, 응? "



저는 황당했습니다.



또한 짜증도 많이 났지만

멀리 와있는지라 어떻게 하지도 못했지요.



애원하는 친구 앞에

마지막이란 단서를 붙이고 다시 갔습니다.



병동은 반지하였는데

얇은 창문틈으로 빛이 들어오더군요.



창문 옆은 일자식 복도로

창과 마주보는 곳은 병동인데

끝 복도는 막다른 곳이었습니다.



복도 중간쯤에는 큰 문이 있는 수술실이 있었습니다.



친구와 걸어가는데 몸에서 벌써

이상한 신호가 오는 듯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천천히 걷는데 긴장감이 고조됐습니다.



친구와 복도 중간 수술실 앞에 섰는데

갑자기 몸에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팔이 마비되는듯한 느낌에

저는 친구를 잡고 억지로 당겼습니다.



"가자, 더이상 안돼!"



제가 웨이트를 해서 팔힘이 좀 센데

덩치만 컸지 팔힘은 저보다 약한 녀석이

제 손을 뿌리치고 수술실 문을 열었습니다.



한순간이었습니다.



수술실 안은 수술대가 있었는데 저는 보았습니다.



간호사와 의사가 있고

주위에 환자들이 몇몇 서있는 모습이었지요.



"나가야 돼."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식은땀으로 얼굴이 범벅된 상태에서

그들이 절 쳐다보는데

그들의 동공 속에 빨려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 자신도 모르게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외워지더군요.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친구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저랑 친구는 계단을 올라와

병원 밖 차에까지 뛰어와

차를 몰고 정신없이 달렸습니다.



새벽 2시가 되어서 집에 도착했는데요.



둘이서 앉아서 말 그대로 덜덜 떨었습니다.



친구도 무서웠는지

아무말도 못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새벽까지 떨다가 피곤 때문에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친구가

저한테 그러더군요.



어제일이 도저히 기억이 안난다고 말입니다.



화장실까지 들어갔던건 기억나는데

그 이후로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정신없이 차를 몰고 있었고

저는 계속 차로 오는 동안에도

나무아미타불을 연신 외웠다는군요.



그러면서 제게 염주를 주는데

줄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말없이 제 짐에서 pmp 꺼내들고

천수경을 틀었습니다.



제가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듣는 경인데

이 경이 귀신을 쫓는다고 해서 자주 들었던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은 사실 이 천수경 안에 나오는 것이지요.



며칠 후 저와 친구는 한국으로 왔습니다.



아마 몇번씩이나 그때 천수경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저와 제 친구가 본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참으로 아찔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지금 자취방에서 글을 쓰는 저는

그 후로 다시는 그런 장소에 가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위험하다는 것도 알거니와

한번 실수했다는 것도 후회하기 때문이죠.



어쩌면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도

그런 곳에 가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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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코트에 중절모를 쓴 아저씨 (by 햄찌녀) 야 이거 밟아도 안 죽는다니깐 (by 햄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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